복수의 화신 오자서와 평왕!

복수의 일념 하나로 군웅이 할거하던 전쟁터를 거침없이 누볐던 전쟁의 신 오자서! 가슴속 원한만큼이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던 오자서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태평성세도 3대를 넘어가기 어려운가 봅니다. 춘추오패의 한 자리를 차지했던 초 장왕의 5번 째 손자인 평왕이 13화에서 언급을 한 바와 같이 형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심성이 나쁜 인간이 개과천선을 해서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했다는 이야기는 그저 공상이거나 확률이 거의 없는 이야기입니다. 설혹 그런 말을 한다면 또 다른 사기를 치기위한 방편이니 각자 방비를 해야 마땅하지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다보니 간교한 사기꾼들은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혼군과 간신은 유유상종하는 법입니다. 초 평왕에게도 구미에 딱 맞는 간신 비무기가 있었습니다. 평왕은 비무기를 진나라에 보내 공주 백영을 태자의 부인으로 데려오게 하였습니다. 가서 보니 공주가 절세의 미인인지라 잽싸게 돌아와 평왕에게 속닥입니다. 백영을 왕이 취하고 태자에게는 다른 여자를 골라주라고. 그리하여 비무기는 왕의 신임을 얻게 되지요. 언젠가는 태자에게 보복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비무기는 평왕을 꼬드겨 태자 건을 변방으로 보냅니다. 다음 수순은 위협적인 권력자들을 제거해야 하지요.

비무기는 수시로 왕에게 태자가 역모를 꾀한다고 고합니다. 그리하여 태자의 스승인 오사를 불러 역모에 대해 캐묻습니다. 오사는 “왕께서는 어찌하여 간신배의 말에 현혹이 되어 친 혈육을 멀리하시렵니까?”

그러자 비무기가 나서 “오사도 태자와 한 통속이다.”고 고하여 가두게 하지요. 그래도 불안은 가시지 않습니다. 오사의 두 아들이 워낙 쟁쟁하다보니 장차 초나라의 큰 우환이 될 것이라며, 오사를 시켜 두 아들을 불러들이게 한 다음 함께 죽이라고 합니다. 왕이 두 아들에게 사신을 보내 들어오라고 합니다. 들어오면 아버지 오사를 살려주고, 들어오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형 오상이 따라가려고 하자 오자서가 말립니다. “우리 형제를 부르는 것은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 삼부자를 죽이려고 하는데 우리가 모두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함께 도망가서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주자.”

하지만 형 오상은 생각을 바꾸지 않습니다. “내가 가도 결국 죽는다는 것을 안다. 아버지가 부르셨는데도 가지 않고, 나중에 원수도 갚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게 될 터인데 어떻게 하겠느냐. 너라면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들어갈 테니 너는 도망을 가서 후에 우리의 복수를 해다오.”

아버지와 형의 처형을 듣게 된 오자서는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합니다. 얼마나 비분강개로 몸을 떨며 밤을 꼬박 새웠는지 아침이 되자 머리가 하얗게 세었답니다. 오자서의 머리는 어디에서나 백발로 나옵니다.

오자서는 태자 건이 먼저 피해 도망을 간 송나라로 찾아갑니다. 송나라에서 난이 일어나자 정나라로 옮깁니다. 태자 건이 정나라에서 역모에 연루되어 살해되고 맙니다. 오자서는 초와 인접한 더 남쪽 오나라로 향하지요. 추격대를 피해 낮에는 숨고 밤에는 길을 재촉하다가 병마와 굶주림에 거지가 되어 겨우 오나라로 탈출에 성공합니다.

오나라에 도착한 오자서는 이복동생에게 왕위를 뺏긴 공자 광을 섬깁니다. 공자 광은 역모에 성공하여 오왕 합려가 되지요.

오자서는 당대 최고의 병법가 손무(손자병법의 저자)를 발굴하여 원수(장군)로 삼고 합려를 도와 오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었습니다. 도중에 초나라 평왕이 병사를 했다는 소식에 땅을 치며 한탄을 합니다.

기원전 506년 오자서는 드디어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로 쳐들어갑니다. 복수의 일념으로 평생을 살아온 오자서의 칼끝에 추풍낙엽. 수도는 함락이 되고 평왕의 무덤은 파헤쳐집니다. 오자서는 평왕의 시신에 구리 채찍을 들어 300대를 때렸다고 합니다.(掘墓鞭屍,굴묘편시)

▲ 사진출처 : wapbaike.baidu.com

비록 아버지와 형을 살해한 왕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죽은 자를 다시 욕보이는 행위에 대하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초나라 친구였던 신포서가 오자서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자네의 복수가 너무 심하다. 병사들이 많으면 어쩌다 하늘도 이길 수 있지만 결국은 소용이 없다. 시신을 욕되게 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어긋난 행동이 아닌가?”

오자서가 사과를 합니다. “日暮途遠(일모도원), 倒行逆施(도행역시), 몸은 늙어가고 할 일은 많다보니 도리에 어긋난 짓을 했다고 전하게.”('도행역시'는 2013년 박근혜정부 출범후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입니다.)

당시 오나라 합려는 오자서와 손무의 계책으로 서쪽으로는 초나라를 무찌르고 북쪽으로는 전통적인 강국 진나라와 제나라 같은 과거 패자의 위치에 올랐던 강대국들을 위협했으며, 남쪽으로는 월나라를 굴복시키는 등 오나라를 신흥 강대국으로 만들었습니다.

후에 오왕 합려는 월왕 구천과의 전쟁 중에 부상을 입고 그로인해 죽음을 맞이합니다. 합려의 뒤를 이어 태자 부차가 왕위에 오릅니다. 부차는 왕위에 오른 후 백비를 재상에 앉히고 군사를 훈련시킵니다. 아버지 부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월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둡니다. 월의 뇌물을 먹은 재상 백비의 주장을 받아들여 월나라의 모든 군신이 부차의 종이 되는 조건으로 강화를 맺지요. 당시 손무는 이미 은퇴를 하였고, 오자서는 구천을 죽이고 월나라를 멸망시켜야한다고 주장을 하지만 오자서의 간언은 무시가 됩니다.

부차는 아버지 합려와 자신의 왕위 등극에 간여를 한 늙은 영웅 오자서를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권력의 속성상 한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빛을 낼 수는 없지요. 그렇다고 명분도 없이 죽일 수도 없어 오자서를 제나라 사신으로 보냅니다. 사신으로 출발할 때 오자서는 아들에게 “아무래도 오나라는 곧 멸망을 할 것 같다. 너까지 함께 망하게 할 수는 없겠구나.” 하며 함께 데리고 가서 제나라에 맡기고 옵니다. 부차의 의도는 무리한 요구를 해서 제나라 왕이 오자서를 죽이게 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간파를 당해 오자서는 융숭한 대우를 받고 멀쩡하게 귀국을 합니다.

그러자 재상 백비가 부차에게 아들을 두고 온 걸 빌미로 오자서가 다른 뜻을 품고 있다고 간언을 하지요. 부차는 즉시 오자서에게 칼을 내리고 이번에는 직접 자결을 하라고 명합니다.

오로지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온 오자서. 합려가 나라를 나누어 주겠다고 했을 때도 사양을 했던 오자서는 이제 그의 아들 부차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하는 처지에 왔습니다.

“내가 죽거든 내 무덤위에 가래나무를 심었다가 부차의 관을 만들 때 쓰고, 내 눈알은 빼내어 성문에 매달아 두어라. 내 꼭 월나라 군대가 쳐들어와 오나라가 망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볼 것이다.”

그리고는 자결을 합니다. 기원전 559(?)년 초나라에서 태어나 기원전 484년 75세의 나이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자서는 그렇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부차가 무덤도 만들어주지 않았고, 시신은 가죽주머니에 넣어져 강물에 던져집니다. 이 사건이 단오의 유래라고 지난 글에 기술했지요. 

스스로 역행임을 알면서도 분노의 매질을 멈출 수 없었던 오자서. 왕의 권위에 맞서 나라를 좌지우지했던 복수의 사신인 풍운아 오자서의 결말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오자서의 예언대로 월나라 구천이 와신상담하여 쳐들어오자 부차도 결국 자결을 하지요. 저승에 가서 오자서를 볼까봐 무서워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서.

중국에서 굴묘편시가 있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채찍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아예 참수를 하는 부관참시가 있었지요. 연산군 4년 신진사림을 제거하기위해 훈구파 유자광 일당이 일으킨 무오사화로 신진세력이 대거 숙청을 당하고 이미 죽은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합니다. 연산군 10년 갑자사화에서는 연산군 생모 윤씨의 폐비 사건을 막지 못한 책임으로 죽은 한명회가 또 부관참시를 당하지요.

권력은 잡기도 힘들지만 내려놓기는 더 힘이 드나봅니다. 나이가 들면서 지혜로워져야 함에도 욕심에 눈이 어두워 물러날 때를 놓치면 아무리 후회를 해도 소용없지요. 살아생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섬돌위에 하얀 고무신 한 켤레와 누더기 가사 한 벌 남기고 홀연히 떠난 분의 뒷자리에는 존경과 감탄이 남습니다. 하지만 부와 권력을 이승에 남겨두고 떠나려는 사람의 미련과 고통은 얼마나 클 것이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또 얼마나 클까요? 그런 죽음은 힘도 들고 길기도 합니다.

사회가 어렵고 힘들수록 언어가 거칠어지고 행동이 사나워집니다. 미움과 복수는 더 큰 폭력을 부르고요. 자신의 밝은 미래와 행복 그리고 건강한 삶을 원한다면 마땅히 미움도 성냄도 내려놓아야지요. 부드러운 언어, 밝은 미소가 넘실대는 대한민국을 기원합니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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