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청소년에게 언론인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한국언론재단의 위탁을 받아 진행한 ‘한겨레 일일기자체험’이 지난 5월 4일부터 7월 20일까지 약 세 달 간 진행되었다. 서울, 경기 지역 30개 중·고등학교 900여 명의 학생들이 하루 동안 한겨레를 방문해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글쓴이는 이번 행사의 현장책임을 맡았다.

 

“오늘도 감사편지가 도착했네요.”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께 ‘잘했어요!’ 라고 찍힌 도장을 받은 듯한 뿌듯함과 그 시절을 일찌감치 지나쳐 버린 현실 자각에서 오는 낯간지러움. 하루 일정이 끝나고 선생님들의 한결같은 감사인사가 겉치레가 아닌 것은 학생들이 보내오는 편지로도 확인된다. 거기에는 한겨레에 대한 고마움이 듬뿍 담겨있다. 꽃과 하트를 그려 넣고 꾹꾹 눌러쓴 감사편지에서 난 '한겨레'의 밝은 미래를 본다. 이곳을 방문한 청소년들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한겨레를 만나고 가길 바란다. 진심을 담은 환영과 메시지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옮겨진다고 믿는다.

일일기자체험 첫 순서는 현재 한겨레에 근무하는 기자들의 강의다.

외부인으로서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기자들을 만나고 강의를 들을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다. '기자'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그들에게서 사회와 사람을 향한 깊은 애정과 우려 그리고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매 시간 프레젠테이션을 정성껏 준비하는 분, 인생의 연륜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분, 유일한 여성강사로 폭풍 같은 감동을 주는 분, 인자한 스승처럼 삶의 지혜를 풀어주는 분도 있다.

▲ 장혁준 기자와 부평고등학교 학생들
▲ 양선아 기자와 월곡중학교 학생들
▲ 김보근 기자와 대경중학교 학생들

두 번째 시간은 한겨레 사옥 투어다.

특색있는 한겨레 건물이 프랑스 대혁명의 시발지가 된 감옥을 모티브로 했다는 것도 아이들에겐 흥미로운 것 같다. 현관에 새겨진 한겨레신문 창립발기선언문을 읽는 소년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건물을 울린다. 때론 엘리베이터 문 앞을 막아선 탓에 사람들의 통행에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장차 우리 한겨레의 주인이 될 소중한 학생들입니다.“ 라고 이해를 구하면 대부분 흐뭇한 미소로 회답한다.

5층 '한겨레 TV' 견학은 신문사에 방송국도 있다는 것 외의 의미가 있다. 그곳에서 프로듀서로 혹은 카메라나 음향을 다루는 엔지니어로도 근무할 수 있다. 신문사에 기자 외에도 다양한 분야가 필요하며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외의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당연하면서도 사뭇 놀랍다.

사옥투어 중 마지막은 2층 윤전기 견학이다. 안전상의 문제로 항상 긴장되지만 가장 재미난 장소다. 1000Kg에 달하는 거대한 종이 롤이 위로 길게 늘어져 천이 염색되듯 인쇄되며 조각나서 신문이 된다. 그 후 천정의 캐리어를 타고 공간을 이동하는 모습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그곳의 큰 소음과 강한 잉크냄새조차 압도적인 분위기에 한 몫 한다.

그리고 기다리던 점심식사시간에 최고의 감사인사를 받는다. 열심히 도시락메뉴를 고민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 수락중학교와 한천중학교 학생들. 사진제공: 강유리 선생님
▲ 도규만 방송부문장과 함현고등학교 학생들
▲ 이용기부장과 당산중학교, 중평중학교 학생들

세 번째 시간은 7층 편집국 견학이다.

수많은 기사들이 신문에 배치되는 것을 직접 확인하며 아이들의 눈은 놀라움으로 빛난다. 와~ 하는 학생들의 추임새가 설명하는 강사의 말끝마다 붙는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모습이 신문 1면에 사진으로 올려진 것을 보는 순간 흥분과 환호를 감추지 못한다. 일정이 끝난 후 출력물을 선물로 나누어 주는데 선생님들이 누구보다 기뻐한다.

▲ 이천우 부장과 아주중학교 학생들
▲ 한천중학교 학생들 단체 사진을 신문에 얹은 모습
▲ 청암홀 벽면을 장식하다

마지막으로 기자직무체험시간으로 일일기자체험교실은 종료된다.

인터뷰에 관한 풍부한 경험담, 교정과 교열에 관한 따뜻하고 솔직한 이야기 그리고 취재와 글쓰기에 관한 실용적인 강의로 개인적으로도 많이 배우는 시간이다. 이 시간 난 행운아라고 느낀다.

▲ 차성진 이사와 동일여자상업고등학교, 용문고등학교 학생들
▲ 박선애이사와 당산중학교, 중평중학교 학생들
▲ 오상석기획위원과 고명중학교 학생들

사실 중학생 교육 시간이 관심과 신경이 더 쓰인다. 강의가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통해 사라진다. 학생들은 기자 강사의 출신학교나 연봉 등에 관한 직설적이며 구체적인 것들을 순진무구하게 때론 기자처럼, 정치가처럼 능수능란하게 질문한다. 오히려 당황해하는 쪽은 기자들이다. 더 준비를 하고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 점심시간 고명중학교생의 피아노 연주
▲ 청암홀 앞 부곡중앙중학교 학생들

독일에선 초중고 교과과정 13학년 중 9-10학년(중 3)때 담임선생님에 의해 각 학생들의 진로가 결정된다. 장차 아이가 인문계 학교(김나지움)를 거쳐 대학에 진학할지 혹은 실업계학교를 간 후 바로 사회로 나갈지 결정되는 것이다. 이렇듯 유럽에선 일찌감치 학생들의 적성을 살펴서 미래의 직업을 결정하는 일이 일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로에 관한 체험은 상당히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독일대학은 평준화되어 있다. 즉 일류대라는 것이 없다. 예비 대학생들의 대학선택 기준은 학교가 아니라 학과이다. 선생들은 학우들 간의 경쟁보다 함께하는 학습을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그런 이유로 독일은 지난 수년간 나라별 학력평가에서 순위 안에 들지 못했다.

그들은 대외적 경쟁력보다 학생들의 삶의 질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그런 독일에서 9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는 것이 놀라운 일일까? 참고로 유럽연합의 28개국(영국을 포함)을 리드하는 나라 역시 독일이다.

청소년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더 나아가 인간성을 잃게 만드는 무자비한 경쟁은 지양돼야 한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뒤떨어지거나 불행해지지 않고 잘살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 신문 1면 사진에 영원중학교
▲ 나루고등학교 학생들 단체사진

3층 현관 앞에는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이라는 한겨레신문사의 사명이 새겨져 있다. 독일의 교육 정신과 상통함을 느낀다. 거친 세상을 이겨나가는 강함이란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되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굳건함을 키우는 것이며 그 단단함으로 세상을 리드하는 것이다. 내 주변인을 경쟁자가 아닌 동료로 여긴다면 삶은 더 행복할 것이다. 이렇게 한겨레 정신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리고 한겨레를 찾는 청소년들이 끊이지 않는 한 한겨레의 더 큰 도약의 기회는 현재진행형이다.

▲ 윤전실에서 김종태부장과 김상효 교사
▲ 기자교실을 마치고 귀가 중 한천중학교 사진: 강유리 선생님

내가 한겨레에서 만난 학생들은 모두 특별하다. 제각기 다른 에너지를 발산하는 청소년들이다. 그 총기와 패기, 발랄함과 기발함은 우리의 미래다. 한겨레에서의 경험과 기억이 그것에 보탬이 되길 기원해 본다.

편집: 이동구 에디터

윤은수 주주통신원  herrstern1@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