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대천의 원수 吳나라와 越나라

한국 사람들이 중국을 떠올리면 수도인 북경보다 상해가 더 익숙하리라고 봅니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만들어졌던 곳, 유행가 가사로도 친숙한 이름이 상해이지요. 중국어로 상하이(上海)! 중국에서 가장 큰 상업도시이며 항주와 소주 남경 등지를 여행하기 위해서 들리는 관광지이기도 합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상해는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다릅니다. 대부분 상해 야경을 보러 와이탄(外灘,외탄)에 가지요. 김정일이 이 와이탄을 보고 ‘천지개벽’이라며 놀랐습니다.

상해는 창장(長江=양자강) 하구의 삼각주에 자리를 잡아 비옥한 토지와 따뜻한 기후로 인구 유입이 늘면서 춘추 오패의 마지막 오와 월이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상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서쪽으로 가면 유명한 소주(蘇州)가 나오는데 바로 오나라의 도읍지입니다. 또한 상해에서 남서쪽으로 두 시간 정도 가면 항주(杭州)가 나오고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소흥주(紹興酒)로 유명한 소흥이 나오는데 여기는 월나라의 수도였지요. 바로 남북으로 이웃한 나라였으며 과거에는 중원 사람들이 남만으로 오랑캐 취급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초나라에서 오자서가 오나라로 건너가 합려를 도와 신흥 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오자서와 손무의 책략에 힘입어 당시 패권을 차지하고 있던 초나라를 침공 대승을 거둡니다. 이에 기가 오른 합려는 오자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월등한 군사력으로 월나라를 치러갑니다.

당시 월나라에는 대부 문종의 추천으로 참모가 된 절정의 지략가 범려가 있었지요. 군웅이 할거하던 춘추전국시대는 중국역사와 사상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웅들뿐만 아니라 제자백가가 나타난 시기이기도 합니다. 노자 장자, 공자 맹자, 묵자 등의 사상가와 법가, 그리고 달변의 소진과 장의 등 쟁쟁한 인물들이 활동을 합니다.

그 중에서도 오나라와 월나라간의 전쟁이 극적이다 보니 정사뿐만 아니라 야사에서도 많이 다룹니다. 그 중에 범려도 신비로운 행적으로 여러 사람의 입에 많이 오르내립니다.

오나라의 막강한 군사가 월을 치기위해 군을 일으키자 같은 신흥국이면서 아직은 열세였던 월나라의 범려는 결사대를 조직하여 적군 앞으로 나가게 합니다. 오나라 군사들이 잔뜩 긴장하여 주시를 하는데 적군 앞에 다다른 월나라 결사대가 칼을 뽑더니 자신의 목을 치고 자살을 해버립니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이???

얼마 후에 또 월나라 결사대가 오더니 똑같이 오나라 군 앞에서 자살을 해버립니다. 완전 어이상실! 그리고 얼마 후에 또 결사대가 나타났습니다. 오히려 겁먹은 표정으로 또 무슨 기괴망측한 일이 벌어지나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오군의 머리를 내려치자 오나라 대군이 혼비백산 달아나기 바쁩니다. 그러자 매복했던 군사들이 튀어나와 마음 놓고 살육을 하지요. 그 와중에 화살을 맞은 오왕 합려가 태자 부차를 부릅니다. “구천이란 놈의 손에 이 아비가 당한 걸 보았느냐?” 그리곤 아들 부차에게 복수를 부탁하며 그날 죽고 맙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를 이어 원수를 갚으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합려 자신도 왕이었던 아버지가 죽고 둘째 작은 아버지가 왕위를 이은 다음 그 왕위를 작은 아버지의 아들이 차지하자 자객을 보내 죽이고 왕좌를 차지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지요. 이웃 집안의 대소사를 많이 알면 알수록 다정한 관계가 되기보다는 좋은 거 나쁜 거 다 알게 되어 오히려 불편해지는 게 인지상정인가 합니다. 그래서 담을 쌓게 되면서 서로 모르는 척 살아가지요. 이웃 간에 소음이나 쓰레기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갑니다. 어른들 싸움이 자녀들에게 그대로 이어지면서 하늘아래 함께 살 수 없는 원수가 되지요. 국가 간에도 이웃끼리 사이좋은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군신의 확실한 위계질서가 성립이 된 국가끼리는 그래도 조금 낫지만 대개의 국가들은 호시탐탐 침략할 기회를 봅니다. 그래서 먼 나라와는 친하고 가까운 나라는 공격을 하는 ‘원친근공’이 외교정책의 주를 이룹니다.

고구려를 당나라에 다 줄지언정 이웃 간에 꼴을 못 보았던 것이 우리 조상들이었고, 천년이 넘은 지금도 서로 원수가 되어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습니다. 같은 민족끼리는 쌀 한 톨 나누기 싫고 그 너머 나라들에게는 아부하기 바쁘지요. 먼 나라 미국에서의 차별과 업신여김은 삭일 수 있어도 가까운 일본이 그러면 본때를 보여주지 않고는 못 견딥니다.

아버지의 유언을 물려받은 부차는 복수를 다짐하며 편안한 이부자리를 걷어내고 섶에서 잠을 자며 복수를 할 그날을 기다립니다(臥薪,와신).

월나라의 구천은 한 번 이긴 싸움에 자만심이 생겨 범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3만의 군을 끌고 오나라를 치러 갑니다. 그러다 오히려 대패를 하고 포위되어 죽기 직전에 몰립니다. 그러자 범려가 많은 금은보화와 미녀를 재상 백비에게 보내서 화친을 맺지요. 월나라의 모든 군신은 오나라 부차의 노비가 되는 조건으로. 그렇게 월나라까지 수중에 넣은 부차는 4번 째 패자가 됩니다.

대부 문종은 월나라에 남아 왕이 자리를 비운 월나라를 다스리고, 범려는 구천을 수행하여 오나라에 들어갑니다. 구천은 오나라에 들어가 마부가 되었지요. 오왕 부차가 병을 앓자 의술에 정통한 범려가 구천에게 부차의 변을 찍어서 맛을 보고 곧 낫게 된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병이 나은 부차는 구천과 범려를 3년 만에 돌려보냅니다.

▲ 서시 (사진출처 : zh.wikipedia.org)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매일 곰의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합니다(嘗膽,상담). 범려는 중국 4대 미녀의 하나로 알려진 서시를 부차에게 보냅니다. 오자서가 말희와 달기 포사 때문에 나라가 망한 사실을 언급하며 서시를 내치라고 하지만 이미 서시의 미색에 빠진 부차는 새로 궁전을 짓게 하고 서시가 행차할 때는 왕비에 준하게 하였지요. 서시의 별칭이 그녀의 미모에 부끄러워 물고기가 물속 깊이 들어갔다는 의미의 침어(沈魚)로 불립니다. 야사에는 이 미녀 서시가 배앓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병명도 다양한데 어쨌든 한 손으로 배를 잡고 이마를 찡그린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고소성(현 소주성)안의 모든 여자들이 배를 잡고 이마를 찡그리고 다니더라는 이야기.

토목공사로 국력은 약해지고 주색으로 혼미한 부차가 제나라를 치겠다고 대군을 끌고 원정에 나서자 텅텅 비다시피 한 고소성으로 구천이 쳐들어가 태자를 죽이고 오나라를 접수합니다. 부차는 자결을 하지요. 참, 오나라 간신 백비, 오자서를 시기하여 죽게 만들었던 그 백비는 월나라와 내통한 죄를 물어 목을 칩니다. 간신의 영화 역시 길지 않습니다.

부차를 죽이고 여세를 몰아 북상한 구천은 모든 제후국을 소집하여 패자가 됨을 선포합니다.

월나라를 멸하고 구천이 패자가 된 후 범려는 자기를 추천해준 대부 문종을 찾아갑니다. “누구나 고생은 함께 할 수 있지만(同苦),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는 없다(同樂). 구천이 이제 패자가 되어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데 자신의 치부를 낱낱이 아는 우리들을 그대로 두지는 않을 거다.”라며, 더불어 '사냥을 할 토끼가 없어지면 나중에 사냥개를 삶는 법' (토사구팽, 兎死狗烹의 유래)이니 물러나자고 하지요.

하지만 문종은 오늘의 영화를 위하여 그토록 고생을 해서 이제 좀 살만해졌는데 그럴 수 없다며 남지요.

▲ 야사에서 가장 빈번하게, 어쩌면 은둔을 택한 범려가 잘되기를 소망해서 만든 이야기. 서시와 아들을 낳고 태호(太湖)에 은둔해서 살았다는 전설.

범려는 원래 자기의 연인이었던 서시와 배를 타고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었으며 아들을 낳아 태호(소주 부근의 호수)에 숨어 여생을 보냈다는 해피엔딩의 야사와, 오자서를 흠모했던 서시가 오나라가 망하자 자살을 했다는 설, 구천이 꼭 서시를 품겠다고 데려오게 하자 강물에 뛰어들었다는 설 등이 있는데 어쨌든 그 이후 서시의 행적은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범려의 예상대로 대부 문종은 모반을 도모했다는 누명을 쓰고 자결합니다. 몇 년 안 되어 구천도 병사하고 월나라는 초나라에 의해 멸망을 당하면서 춘추 오패의 역사가 끝납니다.

역사에서 원수지간과 오월은 동의어처럼 사용이 됩니다. 吳越同舟(오월동주)라고 하면 원수가 한 배를 타고 있는 형국을 의미하지요. 오와 월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적이 되어 마주한 그들은 자신의 원한과는 상관이 없는 부차와 구천의 복수놀이에 희생이 되어간 백성들이지요. 오나라와 월나라 누구도 승자가 아닙니다. 몇 년 가지 못하고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졌으니까요.

역사는 또 반복이 됩니다. 욕심이 지혜를 가리지요. 약 3백년 후 한 고조 유방이 초패왕 항우를 물리치고 새로운 나라인 한(漢)을 세웁니다. 한나라 3대 개국공신 중의 한명으로 권세를 누리고자 했던 한신은 왕이 되었다가 결국 황제인 유방에게 죽음을 당하며 토사구팽을 언급합니다.

미움과 증오 그리고 복수심을 물려주지 않아도 세상살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함께 동고동락하며 대대손손 잘 살자고 하는 이야기도 예나 지금이나 그리 신뢰할 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성장과 분배가 말처럼 그리 잘 된 적 있던가요? 기대를 접는 것이 바로 지혜로운 처신이며 좀 더 오래 살아가는 길이 아닌가 합니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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