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더

나약함인가? 과욕인가? 의지·의탁한다. -필자 또한 그렇다. 反動코자 한다. 종교를 빗댔지만 핵심은 ‘더’다. 참 종교인들께 감사한다.- 소원성취라면 거리낄 게 없다. 천지간에 日月, 산천, 짐승 빌지 못할 게 없다.

이젠 人神에게 별짓을 다한다. 선인·현자에게 배울 수 있지만 신으로 모심은 우매하다. 오히려 애니미즘이 순수하다. ‘이것저것주세요. 키워주세요.’ 막무가내다. 약자들은 그렇다지만 부귀영화를 다 누리는 강자들은 무엇인가? 더 달라고? 불가하고 꼴사납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많이, 더 크게, 성공과 승리를 주소서!’ 준다함은 없고 달라고만 하니 신께서 듣고

신: 뭘~ 또 달라느냐? 웬 만큼 해라. 사지육신과 생명까지 주었잖느냐. 내가 침묵하니 니들 맘 대로구나. 오늘은 말 좀 해야겠다.

사람1: 오~ 하늘님! 이번만입니다. 제발 이번 한번만... 기원합니다.

신: 니들은 늘 그러더라. 이번만, 한번만이라고. 손 좀 그만 비벼라. 볼썽사납고 냄새난다. 내가 그렇게 무섭냐? 그럼 바르게 살아라. 난 선택·차별을 않는다. 그렇다면 가짜신이다. 신이 무슨 好不好하겠느냐? 지켜볼 뿐이다. 가진 것이나 제대로 써라.

사람1: 만능한 신이시시여! 빌고 또 빕니다. 부족한 저희를 보살펴주소서!

신: 어허! 또 그런다. 내가 할 수 있으면 너희도 할 수 있다. 굽실대지 마라. 꼴사납다. 부끄럽지도 않느냐? 내가 너희 수준이냐? 존엄을 주었는데 어찌 그리 천박하냐? 자존감 좀 가져라.

사람1: 저는 신(상제님, 하늘님, 하느님, 하나님, 부처님, 알라님, 조상님 등)밖에 없습니다. 하늘님! 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신: 알았다. 알았다니까. 여기 조금 남아있으니, 다~ 가져가라. 언제까지 주랄 것이냐. 염치 좀 있어라.

사람1: 하늘님! 감~사합니다. 하늘님! 고~맙습니다.

신: 뭐가 감사? 그 입 좀 다물어라. 시끄럽다. 가라는데도 아직 알짱대느냐. 누가 굽실대고 찬양·경배하라 했느냐? 가서 니 할 일을 해라. 일 없으면 휴지라도 주어라. 그게 내가 바라는 바다.

사람1: 오! 하늘님~ 오! 상제님~ 오! 전능하신 주님~

신: 아직도 있느냐? 징징대지 마라. 날 신이라고 불렀으면 합당하게 행해라. 어찌 그 모양 그 꼴이냐? 누가 기도하면 다된다고 했느냐? 에이~ 나쁜 놈들. 또 신을 팔아 못 된 짓을 했구나. 다 거지근성 때문이다. 너희 힘으로 해라. 그럴 능력이 충분하다. 내가 약장수 보따리냐? 맨날 달라고만 하게. 생업에 전념해라. 그러면 빌 일도 없어질 것이다.

사람1: 하늘~님! 정말입니다. 오오! 제발~ 기원합니다.

신: 알았다. 알았어. 이제 그만 가라니까.

사람1: 감사합니다. 오~직 하늘~님~을 경배합니다. 오~직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직~ 상제님~ 뿐이옵니다.

신: 찬양·경배 좀 그만해라. 신이 그까짓 찬양·경배를 원하겠느냐? 어리석은 것이냐 아니면 뀀에 빠진 것이냐? 그리고 내가 왜 하늘님이냐? 누가 작명했느냐?

사람1: 높고 높은 분이시라...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분이시라...

신: 허허! 난 낮고 천하지도 않지만 높고 귀하지 않다. 신이 어찌 한곳에만 있겠느냐? 니들이 하늘위에 사느냐? 땅위에 사느냐? 난 니들 발밑에 있다. 공자, 석가, 예수가 어디서 태어났느냐? 난 니들의 손발이고 밥이고 졸이다. 땅과 밥 없이 살 수 있느냐? 내가 바로 그렇다.

사람1: 어찌 그런 말씀을... 저희가 잘못했나요? 하늘님! 용서하소서! 노여움을 푸소서!

신: 아직도 못 알아듣는구나! 고얀지고. 그러니 교대로 와서 칭얼대지. 난 대접을 바라지 않는다. 니들이 잘 사는 게 진정 나를 대접하는 것이다. 가서 일해라. 그러고도 틈나면 그냥 편히 쉬어라.

사람1: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 주신 하늘님! 감사합니다.

신: 난 심판이나 구원을 않는다. 그냥 지켜본다. 권한은 너희에게 다 주었다. 죄짓고 못된 짓을 했으면 응당 벌을 받아야지 무슨 죄 사함과 구원을 바라느냐? 공짜면책은 없다. 세상이 합당하게 줄 것이다. 죄와 벌은 짝이다. 같이 받아야 한다.

사람1: 하늘님~ 감사의 재물을 바칩니다. 오늘도 食住衣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신: 재물을 가져오지 마라. 神이 무슨 재물이 필요 하겠느냐? 이는 나를 능멸하는 것이다. 난 너희 수준이 아니다. 食住衣를 해결하고 남거든 가난한 이웃에게 주어라. 그게 진정 내게 주는 것이다. 食住衣는 생명유지 선에서 그쳐야 한다.

이러는 중에 한 사람이 와서 말한다.

사람2: 신이시여! 더 이상 의지·의탁하지 않겠습니다. 선택·구원을 원치 않겠습니다. 제 주도로 살겠습니다. 험하고 멀지라도 혼자 가겠습니다. 누구 탓과 책임전가도 않겠습니다. 이해득실보다 다수가 유익토록 하겠습니다. 눈을 들어 만물을 보고, 귀를 열어 만물의 소리를 듣겠습니다. 팔을 벌려 만물과 손잡고, 발을 내딛어 만물과 동행하겠습니다. 작은 것도 이웃과 나누고, 기쁨과 즐거움은 공유하면서, 슬픔과 고통을 나누겠습니다. 겸손한 몸과 맘으로 정성을 다해 살겠습니다.

신: 옳거니~ 고맙구나. 그렇게 살아라. 내가 진정 바라는 바다.

‘더’는 환경을 파괴하고 생명을 죽이지 않을까? 도덕경에 ‘죄막후어심욕(罪莫厚於甚欲) 화막대어부지족(禍莫大於不知足)-죄는 심한 욕심이 가장 크고, 화는 만족을 모르는 것이 가장 크다’라 했다. 죄 중의 죄는 과욕이요, 禍중의 화는 족함을 모르는 것이다. 불평등, 차별, 빈곤, 전쟁원인은 ‘더’가 아닐까? 종교는 ‘더’를 부추길 게 아니라 그치게 해야 하지 않을까? ‘더’를 통한 성공과 승리보다 만물과의 어울림이 아닐까? 인생의 苦海와 樂海는 ‘더’에 있지 않을까? 첨단과학기술과 선진문명이 만생명의 공멸을 재촉치 않을까? 이쯤 발전과 진보를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가면 어디로 갈 것인가?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태평 주주통신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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