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현실을 바꿔보겠다는 푸른 꿈을 꾸던 청년이 있었다.

김창욱. 그는 늘 진지했고, 항상 또래들보다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하며,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개혁할 생각들을 노트에 언제나 빼곡하게 정리해오던 치밀하고 성실한 대학원생이었다. 그런 그가 한줌의 재가 되어 오늘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가난했다. 그래도 함께 열심히 독서모임 활동을 했다. 허름하고 더러워진 옷차림에 녹색의 야구모자는 언제나 변치 않는 그의 상징과 같았다. 

석사 학위를 위해 매진하던 대학원생이지만, 그에게 학업을 위해 연구할 시간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의 압박이 그의 삶 전반을 짓눌렀다. 그는 늘 위축된 모습이었고, 소심했다.

어느날엔가 그가 치킨 배달을 하다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 몸이 망가졌지만 보상은 받지 못했고, 오히려 아르바이트에서 짤렸다. 이런 부조리는 그의 삶을 관통한다. 중학생 시절, 뇌혈관이 터져 죽은 동생의 시신을 발견한 충격도, 군입대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부고를 받은 아픔도, 그의 그늘을 더욱 짙게 만드는 하나의 층(layer)이었다.

사회에 대한 그의 꼼꼼하고 우직한 인식은 논문 준비의 무게를 더했고, 설상가상 애써 준비한 논문 제안서는 쉽게 통과하지 못 했다. 벌써 10년 가까이 석사생으로 지내며 더이상 물러설 곧 없는 궁지에서 신음했다. 그리고 지난 7월 말 실종 4일만에 한강 하구 어느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복지문제를 연구하던 한 단체가 얼마전 주관한 ‘기본소득’에 관한 세미나 자리였다. 

낮에는 아버지 가게 배달 일을 비롯한 각종 아르바이트를 했고, 밤이면 학교 도서관에서 밤샘을 하며 지내왔기에 그의 실종을 알아챈 이는 없었다. 친구들이 뒤늦게 찾아본 결과, 그가 SNS 개인계정에 올린 글의 주제는 모두 절절한 ‘외로움’이었다. 그는 늘 큰 소리로 외로움을 호소해왔지만, 우린 그를 보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정치학 책을 읽었고, 독서모임, 연구소 토론에 나와 미처 참석 못한 이를 위해서 강연노트와 후기를 꼼꼼히 작성해 단체 채팅방에 올렸다. 그렇게 그는 늘 제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그래서일까? 보이지 않았다. 물처럼, 공기처럼 우린 그를 ‘당연히 그렇게 존재하는 존재’로 인식했다. 투명한 그는 위축됐다. 

학교 바자회에서 물품 사진을 찍어, 독서모임에 알렸다. 모임 회원이 원하는 책이 있었다. 한여름에 그 두껍고 무거운 책을 짊어 매고 와 전달했지만, 돌아온 것은 ‘정말 사올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길을 가다 현금 다발을 주운 운 좋은 사람이기도 했다. 돈다발을 주운 후, 곧장 경찰서로 갔다. “어디선가 애타게 찾고 있을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말하고 바로 뒤돌아서 늦은 일당 알바를 하러 달려갔다. 일정기간 주인을 찾지 못하게 되면 신고된 현금의 일정 비율은 신고자에게 돌려주는 제도가 있다. 그는 백만원 가까운 돈을 되받았고, 그 자리에서 의미있는 곳에 쾌척한다. 그렇게 자기규제와 책임의식이 강한 사람이었다. 

정부의 임대아파트 분양 공고가 나면 친구들의 개인 상황에 일일이 맞춰 당첨전략을 제시해주곤 했다. 그리고 얼마전 그 또한 임대아파트에 당첨돼 아버지와 함께 새 아파트에 당당히 입주했다. 그날 그는 묵묵히 이삿짐만 날랐다.

오늘은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된 날이다. 그의 사진을 보며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되새기던 친구들은 속 깊은 그의 진심을 뒤늦게 깨달았고, 눈물을 흘렸다. 그의 ‘안 그래도 무거운 삶’에 바윗덩이를 하나씩 얹어준 기분이었다.

지도교수의 책임도, 소심한 그의 성격 때문도, 너무나 빈곤했던 그의 삶 때문도 아니었다. 외로운 그는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늘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고, 누군가 그 손을 잡아주기만 했다면, 너무나 강인한 그 본연의 모습으로 극복해 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오늘 우리 모두는 그에게 빚을 지게 됐다. 우리가 은연중에 가난한 그를 경원하며 비웃었듯이, 이제 그는 우리의 채권자가 되어, 우리를 다그치고 있는 듯 하다.

“왜 더 가진 너희는 못하는가?”
“왜 더 풍족한 너희는 안하는가?”

갓 대학을 졸업해 머리숱이 풍성한 영정사진 속 20대의 그가, 8수 끝에 낙오하며 마지막까지 이루고자 했던 그 꿈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Are You Serious?"

 

[편집자 주] 1981년생 김창욱씨는 2008년 서울 ㄱ 대학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 진학한후 7년간 석사 논문에 도전하던 중 7월말 한강 하구둑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국과수 부검 결과 사망 시점은 4일전으로 추정했으며 4일, 벽제 승화원에서 장례가 치러졌다. 그는 이대원 주주통신원과는 함께 독서토론 모임에 참여해왔다. 

편집: 이동구 에디터

 

이대원 주주통신원  bigmot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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