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2016년 제38회 윌리엄존스컵 국제초청 남자부 농구대회가 7월 23일부터 7월 31일까지 대만에서 열렸고, 8월 3일 여자부 경기가 시작을 하여 8월 7일 끝이 났습니다.

제 기억에 한국은 해마다 남자팀은 국가대표를 파견합니다. 올해는 허재감독이 대표팀을 인솔하여 참가를 했고, 여자팀은 한국여자 프로농구 3위를 차지한 신한은행이 참가를 했습니다.

한국인에게 어떤 종목이던 국제경기에 나서면 유독 신경을 쓰는 국가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이지요. 대부분의 한일전은 무슨 대첩이라며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합니다. 이기고 오면 개선장군처럼 환영을 받고 지기라도 하면 큰 죄를 지은 양 풀이 죽습니다. 일본인들은 한일전을 우리만큼 생각할까요?

우리가 일본을 꼭 이기고 싶어 하듯 우리를 이기고 싶어 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대만입니다.

대만 사람들은 농구를 많이 좋아합니다. 작은 마을에 가도 야외 농구 코트가 거의 다 있습니다. 적은 인구임에도 한국과 가장 대등하게 경기를 할 수 있는 종목이 야구와 농구입니다.

윌리엄존스배 국제농구대회는 아마도 대만이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유일한 국제대회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국제농구연맹(FIBA) 창설자중의 한명인 윌리엄존스의 이름에서 유래되어 1977년부터 개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만약 존스배에 한국이 참여를 안 한다면 흥행은 그만두고 문을 닫아야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매번 마지막 게임이 한국 팀과 대만 A팀이 치르도록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과 경기를 하면 관중도 많이 오고 언론의 관심도 매우 높아집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존스배에서 한국남자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참가를 안 하고 필리핀이 외국인을 귀화시켜 우리를 앞섰고, 이란이 NBA에서 활약하는 하다디를 앞세워 아시아 정상을 넘보는 상황입니다. 작년에는 김동광 감독의 인솔 하에 한국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들을 내세우고도 대만A팀에 져서 4위를 했었습니다. 여러번 재방송을 보여주면서 많이 좋아하더군요.

이번에 허재감독은 젊은 선수들로 국가대표팀을 꾸렸습니다. 농구대통령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선수나 감독으로 국제대회에서 우승과는 거리가 있었지요. 국가상비군 감독을 맡아 첫 대회에 참가를 해서 그런지, 젊은 선수들이라 그런지 첫 시합인 이집트와의 경기에서 초반 큰 점수를 내주며 뒤지더니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1점 차이로 아쉽게 집니다. 다음날 미국 대학팀을 맞아 큰 점수 차이로 이기고, 5명 전원이 흑인인 필리핀 팀에게는 또 속수무책으로 당하더군요. 그 이후 인도 이란 일본 대만 B팀들을 쉽게 이겼습니다.

7월 31일 마지막 날 대만 A팀과 경기를 티브이로 시청하는데 작년과는 사뭇 다릅니다. 김종규 선수의 실력이 일취월장을 했더군요. 대만의 귀화 흑인선수 데이비스를 앞에 두고 인 유어 페이스 덩크를 꽂았습니다. 빠른 김선형이 내 외곽을 넘나들며 슛을 날리고, 허웅도 빠른 돌파와 정확한 외곽 3점 슛으로 큰 도움이 됩니다. 강력한 방어와 외곽 슛까지 겸비한 이승현이 무릎부상으로 물러났습니다.

이번 존스배에서 최대 수확은 허재감독의 둘째 아들 허훈이군요. 대만 중계진이 키도 제일 작고 20살에 대학 3학년이라고 소개하는데, 장대 같은 선수들 사이에서 작은 키임에도 시야도 좋고 농구 센스도 뛰어납니다. 마치 농구대통령 허재 감독의 젊은 모습을 느끼게 합니다. 전혀 기가 죽거나 머뭇거림이 없네요. 빠르게 치고 들어가다 수비가 붙으면 외곽 슈터에게 정확한 타이밍에 패스를 하고, 아니면 수비가 자기에게 몰리게 하면서 뛰어 들어오는 김종규에게 어시스트, 상대가 잠시 멈칫하면 그대로 뛰어 들어가 레이업 슛. 워낙 빠르고 다양한 공격옵션을 구사해서 상대 팀이 애를 먹더군요. 3점 기회가 오면 주저 없이 던집니다. 어차피 확률. 안 들어가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또 던집니다. 대만 중계진이 계속 허훈을 언급하며 부러워합니다. 전승의 필리핀에 이어 대만 A팀을 누르고 2위로 마감했습니다.

대만에 대한 첫 인상은 외교적으로 고립이 되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저는 민족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참으로 친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겨울 난방비 부담이 없어서 그런지, 따뜻한 날씨로 풍부한 농수산물 덕분인지 모든 사람들이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어떤 전집을 보았는데 각 나라를 소개하는 책이었습니다. 1권은 대만, 2권 한국, 3권 미국, 4권이 아마 일본이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한국을 그만큼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1970년대 미국과 일본이 대만에 등을 돌리고 중국과 수교를 합니다. 한국과 중국은 각자 북한과 대만 문제로 서로 수교의 필요성을 못 느꼈지요. 중국은 자국과 수교를 할 때 첫 번째 요구사항이 대만과 단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나 중남미 몇 개국 외에는 대만은 대사를 파견할 수 없지요.

1992년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로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기까지 대만이 대사급 외교를 펼 칠 수 있는 무대가 바로 한국이었습니다. 명동 중국 대사관이 그 전에는 자유중국(대만) 대사관이었지요.

1992년 중국과 수교를 하면서 명동 대사관을 몰수해서 중국에 넘겼습니다. 대한민국의 입장을 모르니 자세하게 쓸 수는 없고, 명동의 화교학교나 영사관등 대만이 관리하던 다른 재산들도 외교적인 내용이라 모릅니다. 그 무렵 대만에 갔다가 여권 문제로 한국대사관에 갔는데 시위대가 시위를 하고 대사관 문은 닫혀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냥 멀찍이 구경만 하다 돌아왔습니다.

당시 대만신문의 논조와 대만사람들의 반응은 한국이 자기들을 너무 무시했다는 겁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대만과 단교를 하고 중국과 수교를 한다고 해서 마음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은 대만을 배려했다’는 거지요. 예를 들어 미국은 대만이 사용하던 대사관을 그대로 대만영사관으로 사용하게 하였고, 중국에게는 새로운 대사관 자리를 제공했답니다. 일본은 형식상 1달러에 대만에 매매를 했다고 하는데, 한국은 그냥 내보냈다고 울분을 토로하더군요. 그래서 명동에서 쫓겨난 대만 대표부는 광화문 빌딩으로 이전을 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대만은 그저 제주도보다 좀 더 큰 섬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고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관심도 없지만 2000만 대만인들은 매우 큰 타격을 입었고, 그 섭섭함은 아직도 가시지 않는 혐한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차이잉원총통 취임식에 미국에서 몇 명, 일본에서 몇 명 등 경제 사절 내지는 친 대만 인사들이 축하차 참석을 했는데 한국에서는 한 명도 참석을 안했고 오로지 대만에서 돈만 벌어간다는 악성 글들이 돌고 있습니다.

다시 존스배 농구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여자부 대회가 8월 3일 저녁 7시에 개회식을 했는데 저녁 5시 개막식에 앞서 한국과 대만 여자부 B팀이 경기를 치렀습니다. 제가 마침 개막식 한국과 대만 전을 티브이로 관전했고, 8월 7일 마지막 경기인 한국과 대만 A팀 경기도 시청했습니다.

▲ 경기 내내 언론의 관심을 받은 이번 대회 최우수 선수 김단비(왼쪽)선수와 1984년 LA올림픽 은메달의 주역 문경자 선수의 딸 양인영 선수. 모두 동경올림픽 출전을 바란다고.(사진출처 : 聯合報)

앞에서 언급을 했듯이 한국과 시합을 해야 관중이 모입니다. 첫 경기에서 카메라가 김단비 선수를 따라다닙니다. 한국에서 최우수 선수로 뽑혔던 기록과 국가대표에 단골로 뽑힌다며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선수로 평가를 하는데 여유 있게 대만 B팀을 이기고 개막전을 승리합니다. 존스배 여자팀 최다 우승국이 한국이랍니다.

8월 7일 대만 A팀과의 마지막 경기에 관중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중계 팀은 ‘臺韓大戰’을 언급하며 한국을 이기고 우승하기를 염원하지만 카메라의 집중 조명을 받는 김단비 선수가 시작과 동시에 3점 슛을 깔끔하게 성공을 시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3점, 2점 슛을 연거푸 집어넣습니다. 전날에는 한국 팀이 일본에 3쿼터까지 21점 차로 지다가 4쿼터 10분 동안 김단비 선수가 12점을 몰아넣는 등 24점을 넣고 2점을 일본에 내주어 결국 57대 56으로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고 마지막 시합을 한답니다.

10여점 내외로 꾸준히 리드를 하면서 손쉽게 우승을 할 것 같던 시합이 3쿼터 들어 점수 폭을 줄이더니 4쿼터에는 동점을 반복하는 시소게임으로 경기장을 후끈하게 달굽니다. 49초를 남기고 기어이 대만 A팀이 3점 슛을 넣어 한 점 앞서갑니다. 63대62, 수비만 잘하면 그토록 이기길 열망하는 한국 팀을 꺾을 수 있는 감격을 맛볼 텐데 한국의 마지막 공격을 하필 김단비가 또 하는 군요. 김단비 선수 공을 치고 골밑으로 들어가는데 순간적으로 두 사람이 에워싸는 더블 팁이 들어와 시야를 가리고 공격을 못하게 막습니다. 노련하게 뒤로 빼주는 척 속이고 오른쪽 수비수를 끼고 옆으로 돌아 그대로 공을 날리자 깨끗하게 림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결국 64대 63으로 대만 A팀을 이기고 신한은행이 이번 대회 우승을 했습니다.

▲ 존스배 마지막 한국과 대만 전. 20점을 넣은 대만의 펑스칭(彭詩晴,팽시청) 종료 49초전 3점 슛을 성공시켜 역전을 시켰던 주역입니다.(사진출처: 聯合報)

대만은 1점차로 우승을 놓치고 일본에 이어 3위를 했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모양입니다. 이번 대회 여자부 MVP는 김단비 선수이고, 이번 우승으로 한국은 존스배 연패를 했다고 보도를 합니다.

그 보도를 접한 대만인의 마음은 어떨까요? 아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축하의 박수를 보내기도 할 겁니다. 일본을 싫어하는 한국도 존재하면서 또 일본만화나 일본제품에 열광하는 한국이 있는 것처럼, 한류를 좋아하는 대만도 존재하고 혐한의 대만도 존재하니까요.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