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어떤 단어나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걱정들이다. 이름이나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것은 치매와 관계가 없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 성씨가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특히 김씨와 이씨가 헷갈리곤 한다. 그 사람이 성실씨는 성실씨인데, 김성실이었나 아니면 이성실이었나? 너무 흔한 성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모음이 같아서 일까? 성씨 중에 헷갈리는 성씨들이 또 있다. 바로 정씨와 장씨이다. 그 때 만났던 사람이 정모모였나? 아니면 장모모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 경우는 모음이 아닌 자음이 똑같고, 받침까지 똑같아서 생기는 현상일 것이다. 그렇게 단어에 이어 성씨마저 헷갈리는 것이 요즈음의 폭염 탓은 분명 아닐 것이다.

아침부터 무덥던 어느 여름날 아침, 조간신문을 펼쳐 들고 깜짝 놀랐다.

신문 중간의 박스기사 소제목 때문이었다.

"날뛰는 박근혜 정부 (운운)" 하는 기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날뛴다는 표현은 좀 심하지 않은가? 이제 중앙일보마저도 박근혜 정부에 등을 돌린 걸까? 신문면이 좁은 것으로 보아 분명 한겨레는 아니었다. 예전에 직장에서는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같이 보았지만, 퇴직한 후에는 집에서 중앙일보와 한겨레를 같이 구독하고 있는 중이었다. 균형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중동이 어쩌다가 박근혜 정부에게 이런 거친 표현을 쓰게 된걸까? 몹시 궁금해졌다. 의아스러운 마음이 들어 다시 기사를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널뛰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운운)" 하는 기사였다.

잠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다. 그러면 그렇지, 그래도 중앙일보인데, 그럴 리가 있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글자 한 자의 착시로 인한 해프닝이거니 하며 혼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 마음속 무의식중에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 '널뛴다'고 보기보다는 박근혜 정부가 '날뛴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까지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단순한 글자의 착시 현상일 뿐이다.

그러다가 곰곰 생각해보니 일상생활에서의 헷갈림과 착시는 정치적 인물과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기업인 출신의 이명박 서울시장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 대표적인 착시 현상의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이런 경우는 단순한 착시라기보다는 '환상을 동반한 착시'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른다. 그는 기업을 경영하는 전문 경영인으로서는 성공한 인물이었고, 서울시장으로서는 그런대로 괜찮은 시장이었는지 몰라도 대통령으로서는 부족한 면이 많았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그가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었고, 젊은 층들도 그가 되면 청년실업을 해소해 줄 거라며 많은 표를 몰아주었다. 그는 기업을 활성화시킬 줄만 알았지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는 문외한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은 나중에야 알았다. 기업과 경제를 동일시한 착시현상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경제에서도 무능했고, 꼼수의 대가로서 임기 말기에 자신의 무능을 덮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고 독도를 방문함으로써 아베의 술수에 말리게 되는 우를 범했다.

현재의 박근혜 정부도 잘못된 착시효과로 인해 탄생한 정부이다. 여당의 지도자로서 '선거의 여왕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여당을 살리는 데에는 기여를 했는지 모르지만, 한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으로서는 경륜과 지혜가 부족한 캐릭터라는 것을 왜 국민들은 몰랐던 것일까? 여당 프리미엄과 박정희 프리미엄이 있었다고는 해도 실체에 대한 분석에 있어서 전 국민이 게을렀거나 안이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선거과정에서 일부 야당은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부각시키며 이미지를 깎아내리려고 시도했으나 그것은 전략적 실수임이 드러났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에 잠긴 사람들과 그 세력들을 결집시키는 역효과를 낳았으니 말이다. 야당에서 대선주자를 잘못 선택한 탓도 일정부분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가뜩이나 폭염으로 인해 온 국민이 열 받아 있는데, 위안부합의에 이은 사드배치 결정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들끓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더위 먹은 건 아닐 테고, 대책 없이 -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기야 했겠지만 그게 영 못미더워서 하는 말이다 - 덜컥 사드배치를 발표한 박근혜 정부를 보며, 비난하기보다는 안쓰러운 마음마저 드는 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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