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곳을 응시하는 남자

---건축가 승효상

지난 6일 토요일 오후 2시, 그가 경주에 왔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거주풍경'이라는 제목의 특강을 했다. 소금을 한 줌씩 뒤집어 쓴 듯 땀이 밴 사람들이 주말의 박물관을 메웠다. 강의실에는 보조의자조차 차지하지 못해 서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강의가 흔한 일상이 된 현실이다. 깊은 기억을 남기기 위한 강사들은 특징적 인상을 남긴다. 그는 예외였다. 평범한 외모와 편안해 보이는 옷, 친근한 말투와 자연스러운 움직임, 이 모두가 '가짜' 아닌 '진짜'로 보이는 신뢰를 주었다. 무엇보다 목에 힘주는 권위주의가 없어보여서 일단 마음이 놓이는 강의였다. 너무 편했던지 내 앞의 어떤 아저씨는 코까지 골며 오수를 즐겼다. 뭐든 작위적인 것은 이내 탄로가 난다. 나는 오랜만에 달콤한 지식의 솜사탕 같은 시간을 부풀렸다.

___학자는 배운 것을 이야기 하고, 작가는 느낌을 이야기 한다.

그는 건축을 배워, 건축의 느낌을 깨달은, 경지를 말했다.

___건축의 본질은 공간에 있다.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건축은 공간을 채우는 실질적 형태에 머무른다.

그는 건축물로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갚을 길 없는 공간의 일부를 빌어서 건축물을 세우는 미안한 건축가였다.

___21세기의 건축은 미학이라는 단순 논리에서 벗어나 윤리를 추구한다. 공간과 건물, 건물과 생활, 생활과 자연의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건축은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중요한 과정인 동시에 자연을 기반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사물이다. 그는 기능의 편의성에 편승하기보다 건축이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는 것에 주목했다.

전문가들이 건립하는 건축의 변모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건축가들은 날로 달라진 지구의 풍경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인간이 지구에 출현한 그 때 땅과 인간은 하나였다. 개미나 두더지와 다를 바 없이 흙이 곧 거주지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높이 솟을수록 능력을 인정받는 권위적이며 위협적인 건축이다.

강의에서 받은 유인물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___거주풍경(Domestic Landscape)

도시에 초고층으로 솟은 건물을 마천루(摩天樓)라고 부른다. skyscraper라는 영어로도 그 뜻이 똑같은 이 단어의 직설적 뜻은 참으로 오만하기 그지 없다. 얼마만큼 자신 있기에 하늘을 닦을 정도인가? 염원이었을까? 그러하였다. 저 높은 하늘 끝에 도달하겠다는 인간의 의지는 지독한 숙명이었다. 인간은 태어나자 말자 서서 걷기를 원한다. 우리를 다른 동물과 구별하게 하는 이 직립의 의미는 중력의 순리를 거역한다는 것이다. 모든 만물은 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만유의 질서를 거스르면서 높은 곳에 도달하려고 하는 의지가 인류 역사의 시작이며, 문명의 출발이었고, 그 결과의 기록이 기술의 발달사였다. 그러나 그러한 성취를 위해서 우리는 항상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했다.

우리나라는 서울을 중심으로 “높이 더 높이 더 더 높이” 오르는 건축이 성행되고 있다. 그는 서울 ‘백사마을’의 현재와 재건축모형사진을 보여주었다. 개발이란 원주민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중요한 패러다임이라 강조했다.

___마을의 역사성을 보존하는 동시에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발의 중요성은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지형에 따른 길의 보존과 원주민이 소유했던 필지를 보존해야 한다. 지형에 맞춰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원주민 삶의 방식이 보존되는 개발이 역사성을 지닌다. 원주민이 개발업자들에게 밀려나지 않고, 새롭게 정착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까지 수용한 것이 보존개발이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에게 곡진히 건의한 그의 보존개발의지는 통과되었다. 나는 이쯤에서 열렬한 박수를 치고 싶었지만 강의실 분위기는 진지하여 무거웠다. 이런 특별한 강의를 들어 본 적이 없었는지 아주 엄숙했다. 이 분위기에 어울리는 슬프고도 장엄한 탑 이야기가 펼쳐졌다.

___1986년 독일 함부르크 근교의 하르부르그(Harburg)라는 곳의 작은 광장에 파시즘에 대한 저항을 기념하기 위해 요헨게르츠(Jochen Gerz, 1940∼)라는 작가의 당선안으로 기념탑이 세워졌다. 사방 1m의 정사각형에 높이 12m의 단순한 형태로 설계되었지만, 그가 제시한 놀라운 개념은 1년 마다 2m씩 땅 속으로 침하하여 종국에는 소멸되도록 이 탑을 계획한 것이다. 기념탑이란 어떤 사건을 기억하도록 영구불변을 목적으로 솟은 구축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 탑은 사라지는 것이다. 하르부르그 시민들은 이 탑이 꺼져 들어가는 동안 그 탑의 표면에 파시즘으로부터 받은 박해와 고통을 낙서로 기록하곤 했다. 모든 슬픈 기억들이 그 투박한 탑 위에 새겨지면서 그 고통들은 그들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땅 속으로 파묻히고 있었다. 정확히 6년 후인 1992년 이 탑은 완전히 땅 속으로 들어가 소멸하고 그 땅위에는 그 탑이 있었다는 기억만 남았다. 그리고 하르부르그 시민들은 화해하고 용서할 수 있었다.

 

소설가인 나는 이 부분에서 전신에 전율이 돋았다. 하나의 탑이 수 백 편의 소설을 대신할 수 있고, 무기물인 물체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음에 경탄했다. 그리고 이내 위안부할머니들의 문제가 연계되었다. 다분히 비밀스럽고 자존감 상실의 졸속적인 합의를 끝낸 한국과 일본, 두 국가가 정작 이런 꿈을 꾸어야 했었다. 받은 10억 엔으로, 어린 소녀의 자궁이 난도질당한 위로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 일본은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바로 저런 탑을 이 땅에 세워 깊은 한을 삭히도록 했어야 한다. 우리가 용병이 되었던 월남전에서 그랬듯,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끝내 증오만한다고 잘못한 사실이 되돌려지는 건 아니다. 다만 반성의 진실한 언행이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이끈다. 사나운 짐승들 앞에서 비명을 터트렸던 어린 소녀들은 너무 늙었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저 소멸하는 탑, 이 땅에도 세워졌으면......이런 모방은 아름답지 않은가.

그는 터무니/지문(地紋)/지문(地文)/LANDSCRIPT에 관한 생경한 얘기를 했다. 글을 쓰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내게도 ‘터무니’의 뜻풀이는 생소했다.

___우리 말 ‘터무니’라는 단어는 직역하면 ‘터에 새겨진 무늬’라는 뜻이다. ‘터무늬 없다’라는 말은 근거 없고 이유가 없음을 뜻한다. 놀라운 의미다. 적어도 우리 선조가 가진 삶에 대한 생각은 근본적으로 땅에 새겨진 역사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중략)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mo, 1903∼1969)는 ‘문화풍경/Kulturlandschaft’라는 단어를 만들어 쓰면서 땅에 새겨지는 역사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랜드스케이프의 의미를 땅과의 엄격한 관계에서 떠나 도시성에 대한 이해의 전통 속에서 해석할 때만이 과학적 한계와 범주 너머에 놓여있는 실체를 발견할 가능이 있을 것이다......아마도, 문화풍경이 가지는 가장 깊은 저항력은 부득불 미학적으로 표현되는 역사이며, 그 역사는 과거의 실제적 고통으로 각인된 것이기 때문이다......역사적 기억 없이는 아름다움도 없을 것이다. 과거와, 그 과거와 같이 있는 문화풍경은 명백히도 우리의 휴머니티와 특히 총파주의로부터 우리를 자유케한다.’ 땅 위에 각인된 역사......그게 우리를 진실하게 하는 풍경이라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이 정지된 폐허는 화석화된 근사한 문화풍경이다.

‘땅 위에 각인된 역사’ 이 부분에서 ‘한겨레사옥’이 떠올랐다. <한겨레>가 창간하기까지 역사의 질곡은 어두웠다. 군부가 민중의 진실을 짓밟고, 장기집권으로 버틴 짙은 어둠 속에서 횃불로 일어선 발기인과 창간주주들은 탈옥을 감행했다. ‘한겨레’는 독재탄압의 탈출에서 벗어나 떠난 것이 아니라, 역사에 남을 감옥을 짓고 진실을 투옥했다. 바티칸 감옥을 본 뜬 ‘한겨레사옥’에서는 진실이 진실끼리 부대끼며 산다. 한 시대, 우리의 역사에 각인된 죄와 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그는 노무현을 말했다.

___변호사답지 않은 변호사, 대통령답지 않은 대통령, 죽음답지 않은 죽음...변호사면서 운동권 현장에 더욱 심취해 휩쓸린 이력, 최고의 권위를 내려놓고 낮은 자세로 임하다가 5년 내내 욕이나 실컷 먹은 대통령, 대통령이었음에도 현충원을 마다하고 고향 땅에 남기를 원한 그런 사람... 그는 자신을 항상 경계 밖으로 추방했다. 끊임없이 자신을 객관화시켜 사회를 정당하게 평가한 그는 오리엔탈리즘을 철저히 실천한 사람이다.

나는 목이 메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편안한 여건에 안주하지 않고, 더 힘든 무엇을 찾아 전부를 던질 자신이 나에게는 없다. 인생은 흉내로 닮지 못한다.

___그래서 그의 무덤은 길 위에 놓였다. 종묘의 월대처럼 아름다운 마당의 기능을 살렸다. 무덤은 죽은 자를 기억하며 추모하는, 산 자의 장소다. 그의 무덤에는 1년에 약 70만 명의 추모객이 다녀간다. 그들은 보고, 가지 않고, 서성인다. 그것은 묘지와 함께 놓인 마당의 공간이라서 가능하다.

어느 해 백일장에서 ‘마당’이라는 시제를 냈더니 아이들이 어리둥절 놀랐다. “마당이 뭐예요?” 몇몇 문인들의 입에서 ‘아차!’라는 후회가 나왔다. 아파트와 자동차와 교실과 학원과 놀이터를 오가는 아이들이 마당을 모르니 터무니도 알 리 없다. 터무니가 된 어느 대통령, 그 무덤이 주는 낮음의 의미도 알 리 없다. 건축가 승효상, 그가 건강히 오래 살아 더 많은 강의를 방방곡곡에 심었으면 바란다.

편집: 최홍욱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이미진 편집위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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