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 달 간, 뉴질랜드로 보내달라는 아들의 날이면 날마다 볶는 성화에 못 이겨 수속을 밟은 지 한 달도 안 돼 아들은 뉴질랜드로 떠났다. 말 꺼낸 지 두 달도 안 돼 가버린 거다. 어떻게 수속과정이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을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더 신기한 것은 아들이었다.

울 아들이 어떤 아들이냐?

미국에서 지 누나를 1년간 교환학생으로 맡아주셨던 고마운 호스트 가정에서 아들이 교환학생으로 오기만 한다면 맡아주겠다고 하셨음에도 “내가 왜 거기에 고생하러 가냐? 왜 내가 남하고 사냐?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싫다”라면서 단호히 거절한 아들이다. 물론 학교성적도 부족해서 지원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중학교 2학년 여름에는 사회성을 좀 길러주고 싶어서 대안학교 여름캠프에 신청해서 합격했다. 하지만 보내지 못했다. “왜 엄마 맘대로 신청해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지내게 하냐?” “시골 학교라서 모기가 많아서 안 간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는 말하기 싫다.” “거기 가서 나만 왕따 되면 어떻게 하냐?” 등등 정말 속 터지는 갖은 핑계를 대며 완강히 고집을 피워서 어렵게 합격한 대안학교 캠프도 취소했었다.

그렇게 새롭고 낯선 환경에 거부감을 보이고, 새 친구들을 사귀는 것에 대하여 자신감이 없던 아들이 뉴질랜드 교환학생에 대한 설명을 들은 며칠 후부터 보내달라고 조르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 가면 눈물 젖은 빵을 먹을 수도 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영어 때문에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 그 이상 피눈물 나게 공부해야 한다. 잘 생각해봐라. 처음에는 정말 고생하러 가는 것이다.”라고 환상의 도피길이 아니며 가시밭길이라는 것을 누차 강조하며 이야기 했음에도 한번 굳게 먹은 아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정말 신기했다. 아직도 자다가 무서운 꿈을 꾸었다면서 베개를 들고 기어들어오는 여린 아들이 아닌가? 무엇이 아이의 마음을 저렇게 강하게 바꾸어 놓았을까? 아이가 그동안 성장했나? 그런 생각을 언뜻 해봤지만 결론은 지금 아들의 학교생활이 너무나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친구들과는 잘 지내지만 공부영역에서는 누구에게도 대접받지 못하고,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학교를 다니고, 공부 때문에 매도 자주 맞고, 늦은 밤까지 성과도 없는 학원에 의존하는 무기력한 자신에 대하여 변화를 가져보길 강력히 원하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시절, 무슨 기타리스트를 흉내내가며 기타를 배운다, 복싱을 배운다는 둥 놀기도 하면서 공부도 잘했던 남편은 아들이 공부에 취미가 없는 것에 대하여 잘 이해하지 못했다. 늘 ‘언젠가는 하겠지’, ‘늦게 틔는 놈일 거야’ 라며 못내 아이의 특성과 상황을 외면하곤 했다. 하지만 옆에서 아이를 지켜본 나는 이대로 둔다면 되돌릴 수 없는 길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이 반대를 해도 '별거'를 무기로라도 삼아 담판을 져서 보내겠다는 생각으로 아이의 의견을 말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리 아들 문제에 관해서는 내 말을 안 들어주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아이를 떨어뜨려 놓기 싫어하던 남편이 뉴질랜드행을 적극 찬성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한번 기회를 줘봐. 이젠 나이도 있는데, 변화를 갖고 싶다는데 저렇게 맘먹었을 때 기회를 주지 않으면 언제 줘보겠어? 짜식 용기 있는데?” 라고 흐뭇해하며 아들의 선택을 '용기'라며 격려까지 해주는 것이 아닌가?

아들도 가겠다고 하고 남편도 찬성을 하니 수속과정은 신속하게 진행되었지만 사실 내 속마음은 편치 않았다. 아들에 대한 믿음과 걱정이 하루에도 수차례 교차하며 나를 이리저리 흔들어 놓곤 했다. 아들도 사실 속마음은 그러했으리라.

그래 그랬는지 프로그램 비용을 납부하기 전 날, 희한한 꿈을 꾸었다. 정말 특이한 꿈이었다.

나는 어린 아들과 둘이 손을 잡고 걸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세상이었다. 우리 머리 위로 물고기가 막 지나갔다. 아주 아름다운 은빛 비늘을 가진 물고기들이었다. 물고기들이 지나가는 푸른 길은 마치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 거렸다.

그곳은 바다 속이였다. 우리는 바다 속을 걷고 있었다. 너무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물고기들과 바다 속 빛깔에 취했다. 잠시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세상일을 다 잊어버리고 바다 위를 쳐다보면서 걸어갔다. 그러다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왜 우리가 바다 속을 걸어갈까? 우리는 사람인데 바다 속을 걸어갈 수 있나? 우리가 죽었나? 아니면 내가 물고기인가?’

불안한 생각에 주위를 돌아보았다. 발밑으로 뭔가가 뚜렷이 보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육지의 빌딩 숲이었다. 육지의 모습이 뒤집혀서 보이는 거였다. 우리는 물속으로 들어가서 수면을 발판 삼아 거꾸로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물고기들의 세상 속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바다 속을 걸어가며 아들과 나는 손을 꼭 잡고 마주보고 웃었다. 마치 한마디라도 소리를 내면 그 바다가 깨져버릴까 봐 그 순간을 오래 간작하고 싶어 서로 눈으로만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머리를 감고 출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가던 길옆에는 큰 개울이 있었다. 짙푸른 녹색 개울은 바다 속에 육지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 무섭도록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저 강물에 머리를 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살이 너무 세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엎드려서 머리를 감다간 떠내려갈 것 같았다. 아들이 먼저 그 개울로 내려갔다. 흙이 조금 남아 있지만 점점 무너져 내리는 야트막한 곳으로 갔다. 그러곤 "엄마, 여기서 머리 감아. 내가 잡아줄게." 라고 나를 불렀다.

아들이 밟고 선 흙이 센 물살에 무너져 아들이 떠내려 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 와중에 무슨 머리를 감는다고 그러나? 하면서 아들에게 소리치며 불렀다. "이리 와!!!! 너 그러다 물에 빠진다." 그러다 잠을 깼다.

아들을 새로운 세상에 보내는 것이 몹시 불안해서 저런 꿈을 꾸었나? 아들이 겪을 새로운 생활이 아들에게 정말 저런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줄 수 있을까? 아들의 한국 생활을 고집한다는 것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개울에 자식을 세워둔다는 의미인가? 내 품을 떠나보내도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잘 지낼 수 있을까?

떠나기 전날까지도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지만 아들은 막상 떠날 순간이 오자 아무 미련이 없다는 듯 "엄마, 바바이~" 하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아들의 발뒤꿈치라도 찾고 있는데 말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인생에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없는 법인데... 어린 나이에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도 잘 안 통하는 이국에 가서 얼마나 고생을 하게될꼬... 그리고 그 고생을 어떻게 잘 견뎌낼꼬...

뉴질랜드에 도착하자마자 반지의 제왕을  찍은 곳에 놀러갔답니다. 교환학생 담당 선생님께서 찍어서 보내주셨습니다.
뉴질랜드에 도착하자마자 반지의 제왕을 찍은 곳에 놀러갔답니다. 교환학생 담당 선생님께서 찍어서 보내주셨습니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미경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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