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뉴스타파 정기 후원회원이다. 회원에게는 <자백> 시사회 티켓을 준다. 다음스토리펀딩에도 참여해서 남편과 9월 말에 <자백>을 보았다.

<자백>은 불법감금과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간첩이 되었던 또는 될 뻔 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뉴스타파 최승호 PD가 감독했다. 최승호 PD는 MBC에서 26년간 탐사전문 PD로 활동하다가 2012년 해고되었다. 이 후 뉴스타파 간판 앵커가 되었다. 최승호 감독은 ‘유우성’ 간첩 조작사건을 40개월 동안 추적하여 방영했다. 2015년 10월 유우성씨는 대법원에서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는다. 뉴스타파의 보도가 큰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 <자백>의 기본 내용은 유우성씨의 간첩조작 사건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수차례 뉴스타파 보도를 본 나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긴장을 풀 수 없었던 생생한 영화였다. 그 이유는 스토리에 있지 않다. 영화 속에서 최승호 감독은 간첩으로 조작하려했던 국정원 직원, 원세훈 전 국정원장, 유우성을 기소했던 검찰들, 그리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민낯을 보여준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어떤 사고방식이 머릿속에서 회전하고 있기에 간첩이 아닌 사람들을 간첩으로 만들려 하고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큰소리치며 당당할 수 있을까? 국정원은 이미 ‘국가조작원’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라 더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검찰은 도대체 뭔가? 비하적 표현으로 '견찰(犬察)', ‘개검’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국정원 직원하고는 좀 다르지 않을까? 어려서부터 똑똑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웠을 사리분별력이 분명한 이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 똑똑이들 누구도 유우성을 기소한 것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그들은 “재판에서 모든 걸 말하겠습니다.” 라고 했다. 대법원 재판에서 졌어도 그들은 유우성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 자체가 없어 보였다. 한 인간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그 인생을 망가뜨려놓고도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저들끼리 시시덕거렸다. 마치 '이번엔 재수 없이 뉴스타파에 걸렸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런 검찰을 보면서 남한에 먼저 정착해서 적어도 간첩조작은 당하지 않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아 유우성씨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저들도 양심이란 것이 있을 터인데 도대체 그 양심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기에 저렇게 상식을 저버린 사람들이 되었나?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몰상식해도 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마음이 착잡했다.

최승호 PD는 세월을 뛰어 넘어 1975년 발생되었던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한민통 간첩사건)>을 취재하면서 유우성을 기소했던 것과 똑같은 과거의 검사를 찾아낸다. 바로 박근혜정부에서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기춘’이다. 그는 일본으로 가는 공항에서 김기춘을 만난다. 김기춘은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에 대하여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한다. 어떤 객관적인 정보를 들이밀어도 모르쇠와 묵묵부답이다. 그도 이제야 부끄러움을 안 것일까? 그래서 애써 입을 다물고 만 것일까?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은 지난 1970년대 초 서울대 법대, 한양대 의대 등에 유학 와 있는 재일동포 학생들을 영장 없이 불법 감금, 구타 등 가혹행위를 하여 간첩으로 기소하여 처벌한 사건이다.

<자백>에서는 김기춘이 간첩으로 몰아 잡아넣은 재일동포 유학생 이철, 류영수, 김승효가 나온다.

이철씨는 약혼자 강종헌씨와 함께 구속되어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간첩, 간첩방조 등 혐의로 둘 다 1977년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10여 년 넘게 수감되었다가 감형으로 일본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40년이 지나 재심을 통하여 무죄선고를 받았다.

류영수씨도 40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김승효씨는 1974년 5월 4일 중앙정보부에 잡혀가 간첩이 되었다. 그는 고문의 후유증이 심각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빨리 석방되었다. 이어 일본으로 돌아와 평생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살았다. 그는 그 때에 겪었던 일을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때의 기억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듯 재심도 청구하지 않았다. 그는 같이 간첩으로 몰렸던 친구 류영수씨를 알아봤다. 친구 류영수는 김승효씨에게 재심을 청구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죄야.”, “한국은 나쁜 나라입니다.”, “ 박정희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았어.”

1970년대나 지금이나 꼬투리를 잡히면 조작간첩이 될 수 있는 시대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도 <여고생 가족 고정간첩단>이 될 수도 있지 않았나 싶다.

1975년 고 1 때 나는 장기집권과 단기집권의 장단점에 대해 선생님께 질문했고, 연속된 몇 번의 날선 질문으로 인해 부모님은 호출을 받았다. 선생님은 엄마에게 “아이가 할 수 없는 질문이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냐?”라고 물으셨다. 엄마는 “갸는 학교하고 집밖에 모르는 아이다. 우리는 먹고 사느라고 암 것도 모른다. 갸가 학교에서 들었겠지 어디서 들었겠냐?” 라고 답하고 오셨다.

평소 유신헌법을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대통령 하려고 만든 법’이라고 비판하셨던 엄마는 "선생님이 형사냐?" 라며 부모님 호출을 무척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 하지만 학교 선생님께는 입도 벙긋하지 않고 내 발언의 책임을 학교에 돌리고 오셨다. 만약 엄마가 평소처럼 유신헌법에 대하여 비판적인 말을 하셨다면 어찌 되었을까? 선생님은 우리를 용공분자로 몰아 고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김일성대학 입학을 앞두고 월남한 분이고, 친할아버지는 해방 전 만주에서 활동한 공으로 북한에서 큰 감투를 쓰셨다가 김일성이 싫어 월남한 분이라고 하니 충분히 엮으려면 엮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닐까?

고문으로 인한 자백에 의해 간첩혐의가 씌워진 사람들에게 '그럴만한 무슨 일을 했겠지'라고 쉽게 생각하기도 한다. 아니다. 그들은 그저 조작자들의 레이더망에 재수 없게 걸려들었을 뿐이다. 친척을 만났다는 작은 꼬투리만으로도 엮고 엮어 간첩으로 조작했으니 말이다. 유우성을 기소했던 검찰과 국정원 직원들의 생각과 태도로 볼 때 언제든지 ‘꼬투리 간첩 조작질’은 계속 될 것만 같다. <자백>에서 보이는 그들에게서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라던가 부끄러움이라던가 하는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해서는 자신들의 행위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사고에 함몰된 사람들이 공권력이라는 것을 갖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참으로 암담하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 ‘꼬투리 간첩조작질’의 희생양이 될까?

<자백>은 상영이 불확실했다.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다음에서 스토리펀딩을 했는데 목표액의 2배 이상인 약 4억 3천만원이 걷혔다. 스토리펀딩 661개 프로젝트 중 단일 프로젝트로는 최초로 스토리펀딩 첫날 3,000만 원, 일주일 만에 1억 원, 열흘 만에 2억 원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시민의 자발적인 힘이다. 이 힘이 암담한 대한민국을 밝히는 또 다른 한줄기 빛이라고 생각한다.

후속 관련기사 : 간첩조작 알린 영화 '자백' 김승효, 재심서 무죄https://newstapa.org/43858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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