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서 남편과 내가 최고 비경으로 꼽는 곳이 있다. 방학능선에서 우이암으로 곧장 올라가는 길인데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다. 몇 년 전에는 위험구간이란 표시가 되어 있었다. 바위가 많고 험하다고 노약자는 우회로를 택하라고 쓰여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통사를 끼고 돌아 우이암으로 가는 길을 택해서 다녔다.

가끔 깎아지른 절벽 길을 기어 올라가다가, 이도 저도 잡을 것이 없고 너무 힘에 부쳐 기진맥진해 바위를 잡은 손을 탁 놓아버리고는 허공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곤 할 정도로 험한 바윗길을 무서워하는 나도 무조건 우회로만 고집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부터는 길 표시가 없어졌다. 위험구간이라는 표시도 없고, 금지구간이라는 표시도 없었다. 그저 예전부터 그 길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만 갈 수 있는 비밀의 길이 되었다.

올 봄부터 이런 저런 일로 남편이 혼자 산에 가는 날이 많아졌다. 남편은 나 몰래 그 길을 다니기 시작했다. 수차례 갔다 오고 나서는 그리 위험하지 않다며 북한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행이 될 거라며 같이 가자고 졸랐다.

드디어 지난여름 그 길을 갔다. 딱 한 곳만 빼면 조심조심 가면 그렇게 위험하다고 볼 수 없는 길이었다. 남편의 말대로 북한산의 가장 아름다운 숨겨진 비경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 길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해치를 가지고 와서 걸어 놓고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곳은 올라갔다 내려가는 등산을 택하는 사람들이 아닌 여유 있게 북한산과 함께 실컷 쉬면서 노닐다 가는 사람들이 택하는 곳 같았다. 우리도 이런 비경이 없다면서 놀멍 쉬멍 그 능선을 즐겼다.

방학능선의 끝에서 우회로와 만나는 곳으로 가는 길은 아주 좁은 바위틈을 지나서 밧줄을 잡고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웬걸? 그 길 끝에 통제구간이라는 표시가 있었다. 남편에게 통제구간을 왔다고 막 뭐라 하니까.. 하산 시에 더 위험한 길일 수 있어서 다니지 못하도록 표시해놓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까 올라가는 것은 오케이, 내려가는 것은 금지?

 

10월 초에도 남편은 혼자 그곳엘 다녀오고는 함께 가자고 또 졸랐다. 슬슬 단풍이 들기 시작하니 더 멋있어졌을 거라면서 같이 보고 싶어 했다. 나도 한 번 가본 터라 그 비경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흔쾌히 동의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 그 길은 아래와 같이 ‘탐방로 없음’으로 아예 철저히 막아버렸다.

남편은 2주 전에도 막지 않았는데 갑자기 막아버렸다며 무척 아쉬워했다. 아마도 누군가 사고를 당해서 막아버리지 않았나 하고 짐작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길을 영영 못 본다고 생각하니 남편이 가자고 할 때 자주자주 따라갈 걸 하는 후회가 되었다. 그 길은 자연휴식기 길이라서 통제한 것이 아니고 위험해서 통제 했으니.. 앞으로 영영 개방하지 않을 거다. 작은 설악산을 보는 느낌이었는데... 지난여름 찍은 사진으로 그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 양지꽃
▲ 색이 선명한 나리 꽃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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