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건을 바라보며

 

곳간을 지키라고 맡겨놨더니 곳간을 지키기는커녕 곳간을 어떻게 탈취할 것인가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구한말 친일파들이 나라를 팔아먹을 때와 너무 닮아 있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은 망령처럼 되살아나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대통령과 그 권력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자들 얘기다.

그들은 최순실 사건에 깜짝 놀랐다며 놀라는 시늉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 그동안 일반인들 시선으로 보아도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은 이상한 징후들이 그렇게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는데 말이다.

원인과 결과도 없고 계획과 실행이라는 일반적 형식 논리와 상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4년간의 국정 수행, 국가예산들이 불쑥불쑥 뜬금없이 아무 곳에나 쓰여지는가 하면, 대통령의 해괴한 연설 내용이나 언어구사에서부터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위안부 협상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보편적 상식으로부터 격리당한 채 10년 가까이 살아가고 있다.

정상적인 나라,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도저히 드러낼 수도 나설 수도 없었던 자들이 너무나 비정상적인 권력을 향해 개미떼 모이듯 모여 한바탕 해 먹고 있는 형국을 보고 있는 것이다.

01 청산대상의 망령은 되살아나 어느덧 국정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저 한바탕 굿판에 놀아난 것이다. 어떻게 이런 망신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적어도 400조 원의 예산으로 돌아가는 작지 않은 나라에서 말이다. 그러나 누굴 탓할 수 있을까. 그들의 굿판을 깔아준 것은 우리들인데.

친일의 역사, 독재정권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는 다시 지금과 같은 국정농단의 한가운데 있다. 지금의 국정 농단이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상황이 아니다.

우리 민족을 그토록 잔인하게 수탈하고 핍박했던 일본의 앞잡이로 부역하면서 자기 민족을 향해 해서는 안 될 잔인한 짓들로 배 불린 친일파들이다. 그들은 이후 국가를 재건한다는 이름으로 국민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고 나라를 공포 분위기로 몰아가면서 수많은 목숨을 희생시켜온 자들이다.

이들 세력들의 후손들이 여전히 정부조직에, 국회에, 검찰에, 정치권에 포진하고 있으니 기회만 오면 같은 행태가 반복될 요인들은 늘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겐 국정을 농단하고 나라를 팔아치운 피나는 역사조차도 제대로 청산을 한 경험이 없었다. 이들의 죄 값을 청산하지 못한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려는 움직임조차 끊임없이 방해받고 있었다.

청산되지 않은 독재정권의 망령은 살아서 그 독재자를 역사의 주인으로 회귀시키려는 국정교과서 논란을 불렀고 우리가 알 수 없는 움직임이 여전히 음지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그 자손들은 여전히 국정의 한가운데 있다.

민주화 과정에서의 광주학살의 주역 역시 많은 부를 축적한 채 건재하게 잘 살고 있다. 이뿐인가. 이 나라에 해악을 끼친 무수한 인물들이 언제 제대로 죄 값을 치른 경험이 우리에게 있었던가. 오히려 나라를 찾겠다고 자신과 가족들까지 희생시키면서 분투한 애국지사들과 그 후손들이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이다.

02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교훈을 그들이 먼저 알고 있었다

이처럼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고 청산한 경험이 전혀 없으니 역사의 패악을 저지른 망령들은 이러한 교훈을 잊지 않고 고질적으로 집요하게 그런 패악을 계속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야 그 후손들 역시 떵떵거리며 이 사회 주류로 살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일반 국민들조차도 그런 역사적 패턴이 학습효과로 다가와 그들의 행태에 합류하게도 한다.

청산의 경험이 없는 우리 역사는 다시 그들의 손에 놓여 있었다. 이런 굿판을 깔아준 일등공신은 언론이었고 그 굿판을 선택한 것은 우리 국민이었다. 그 굿판을 허락했으니 그들은 신나게 굿판을 벌인 것이다. 굿판을 중심으로 몰려든 자들은 굿판을 벌이는 동안의 어수선한 틈을 이용해 하나둘씩 달려들어 한 자리씩 권력을 꿰차고 자기 집 곳간 채우느라 참으로 바빴다. 검찰, 경찰, 국정원, 행정관료, 하다못해 더러운 굿판을 기웃거리는 무리들까지. 완장 차고 힘없는 국민을 향한 그들의 패악질은 친일파들과 얼마나 닮아 있었던가. 언론, 기업도 가세했다. 그들은 일개 사이비 교주 딸이 최고 권력의 뒤에서 쥐락펴락 하고 있었다는 것을 정말 몰랐을까. 알고도 그런 짓들에 가세했다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은 어떠한가. 왜 저렇게 이상한 행동과 무리수를 두는지 항상 궁금했다. 누군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무성했지만 저 정도까지 일 줄이야. 국민을 향한 그 많은 메시지와 국정운영 전반의 어느 것 하나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없고 지시에 의했다는 증거들이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옷 하나 입는 것까지도. 이쯤에 이르고 보니 한 인간으로서 가엽단 생각까지 든다면 넌센스일까. 마치 줄 달린 목각인형이 오직 주인의 줄 당김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모습처럼.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재래시장을 방문해서 상인들로부터 물건을 사고 계산할 때 제일 행복해 보였다고 누군가 말했던 기억이 난다.

희대의 사기행각에 한 국가가 놀아난 것이다. 그 사기행각에 조직이 필요했고, 그 조직에 시정잡배들이 몰려들었으며 한바탕 해 먹는데 가세했다.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조금이라도 낌새가 있었다면 진작에 외부에 폭로될 수도 있었겠지만, 몰려든 그들은 먹잇감이 있는 한 철저한 침묵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그들의 망령이.

그러나 그런 징후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드리워진지 오래되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보편적 상식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기 시작했다. 예상할 수 없는 해괴한 행동과 분위기가 난무하고 있었다. 세월호 사건, 경주의 대지진과 원전의 안전성 문제 등 국가의 커다란 재난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어도 사태를 파악하고 해결에 나설 것이라는 일반적 상식을 뒤엎고 오히려 국가기관이 그 시스템을 총동원하여 오로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는 모습들을 질리도록 보아 왔다.

아무리 작은 조직일지라도 하나의 조직이 운영되고 있다는 의미 뒤에는 기본적 운영체계가 함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물며 하나의 국가가 유지되는 데 있어 그 운영자들이 이런 최소한의 법적 기준은 물론, 운영 규정이나 매뉴얼조차 무시한 채(인지하지도 못하고 있는 경우도 다반사) 그야말로 이 나라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런 시스템을 운영할 수조차 없는 능력 밖의 사람들이 운영주체로 나선 것에서부터 시작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상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으니 갈수록 국민들의 아우성조차(특히 젊은이들) 잦아들어가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 대한 희망은커녕 희망의 작은 씨앗조차 잦아들어가고 있었던 무서운 상황이었다. 소리가 없는 사회는 죽어가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권력 주변의 누구도 문제의식보다는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더 해먹을 것이 없는가 혈안이 되어 있었다. 무지함을 넘어 파렴치했던 이 정부, 그 뒤에 지금과 같은 굿판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되고 보니 이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03 이젠 정말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청산해야 한다

최순실 사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긴 하지만, 한편 명쾌해지는 면도 없지 않다. 그들이 아무리 잘못을 해도 강력한 공권력 하에서 잦아들어만 갔던 스스로의 외침이 얼마나 많은 순간 우리 마음을 짓눌렀던가. 이제 더 이상 용인할 수 없을 정도의 국정 농단을 전 국민의 눈으로 확인했으니 더 이상 회유당하거나 그들의 단골 메뉴였던 국민들 간 대립구도에 휘말릴 일도 없을 것이니 말이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그야말로 제대로 된 죄 값 청산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와 달리 그들의 역사를 철저히 파헤치고 청산한 독일의 경우를 보자. 그들은 청산 이후 통일의 아픔까지 겪어내면서 지금과 같은 부국으로 다시 우뚝 서지 않았는가. 다각적인 방법으로 히틀러의 망령을 잘라내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혹독했던 역사의 반복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사회를 운영하는 법률, 제도, 사회 분위기 등 모든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반면 우리는 역사의 거대한 아픔이 있었음에도 이를 청산하고 치유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게 덮어버렸으니 항상 안에서 곪아 때만 되면 터져 나오는 것 아닌가. 친일파들을 척결하기 위해 구성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다시 친일파들에게 척결되고, 민주화 투쟁으로 민주화를 이룬 우린 다시 독재자의 후손에게 넘어가 지금의 국정농단이 벌어졌다.

즉,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로 인해, 이 전쟁터와도 같은 세계 사회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계속 제자리에 있거나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를, 이 사회를 개인의 주머니를 채우는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주무르고 있는 한, 국가의 모든 재원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지 못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우리의 그 많은 예산이 이 나라가 안정과 번영으로 나가기 위한 곳에 쓰였는가 말이다.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는 대신 미화하는 목적의 국정교과서 부활로 수많은 예산과 교육부가 동원되었고, 문화예술인들을 길들이는 곳에, 말도 안 되는 각종 홍보사업에, 실체도 없는 창조경제 사업에, 오늘 우리에게 녹조라는 대명사로 익숙하게 다가오는 4대강사업에 쏟아붓지 않았는가.

그런 눈먼 사업들에 파리 떼 꼬이듯 모인 면면들이 과연 무엇을 해낼 수 있었겠는가.

우린 항상 제때 제대로 된 청산을 하지 못해 끌려 다니느라 많은 시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친일, 독재, 그 망령들 속에서 오랜 시간 왜곡된 진실을 되돌리지 못한 채 고전하면서 살아왔다. 이번 최순실 사건에서 충격이라는 표현 이상의 상황이 우리 앞에 놓여 있지만, 머리가 띵할 정도로 제대로 맞았으니 이번에야말로 그 과오들을 제대로 청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이 글은 브런치계정(brunch.co.kr/@chaos)에도 실린 글입니다.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김진희 주주통신원  kimjh119@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