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을 기리며

11월 5일 광화문에 사람들이 모였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살인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지 358일만에 “백남기농민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졌다.

▲ 백남기 농민 노제

그가 요구한 것은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쌀값 21만원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뒷일은 남은자의 몫으로 남기고 그는 그렇게 떠나갔다.

▲ 운구차량이 빠져나간 자리에 시민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민중총궐기대회가 이어졌다. 시민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앉기 시작했다. 백남기 농민을 태운 영구차가 빠져나간 자리에 하나둘씩 시민들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중고생들도 기꺼이 참가를 했다. 애초에 무장한 경찰병력 2만 명이 배치될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있었고, 궁지에 몰린 정권이 어떤 대응으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청소년들이나 아이들과 가족단위로 나온 평범한 시민들이 눈에 띄게 많았던 것이 특이한 집회였다. 그만큼 현재 시국이 엄중하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는 절박함에 모두들 기꺼이 참가했을 것이다.

▲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가는 길에
▲ 문화예술인들의 텐트시위
▲ 통신원을 만나다
▲ 문화.예술인들의 소리

시민들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세종로를 모두 차지하고 말았다. 외곽에서 안전관리를 하던 경찰들도 모두 시야에서 사라졌고, 모든 참석자들의 이목은 한군데로 집중되었다.

▲ 민중총궐기대회
▲ 인산인해

행사는 차분했고 질서정연하였다. 그러나 구호는 단호하고 강력하였다. '하야'는 점차 사라지고 퇴진, 몸통, 구속, 공범, 배후 등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 이목집중
▲ 다양한 구호와 깃발
▲ 입추의 여지가 없다
▲ 중고생연대

시위대는 종로 쪽으로 행진을 시작 하였고 경찰들과의 충돌은 없었다. 경찰에서는 시위행진을 허가하지 않았지만, 법원에서 시위대의 손을 들어주어 행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 다양한 구호와 피켓
▲ 들리는가? 분노의 함성
▲ 질서정연, 단호한 요구
▲ 종로행진
▲ 차분한 행진, 끊임 없는 구호
▲ 구호는 단호했다. "퇴진하라"
▲ 가자. 종로로

광화문에 재집결 했을 때에는 시위대가 더 많이 늘어나 있었다. 주최자 측에서 말하기를 덕수궁에서부터 광화문까지 20만여 명이 모였다 한다. 차도 인도 할 것 없이 모두 차분히 앉아 문화제를 이어갔고 시민들의 발언에 환호하고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밤은 깊어 갔다.

▲ 광화문 재집결
▲ 2부 문화제

29년 전 서슬 퍼런 독재시절에 목표는 오로지 하나였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철옹성 같았던 독재를 무너뜨린 것은 대학생, 그리고 소위 넥타이 부대로 불리었던 회사원들이었다. 우리는 독재를 무너뜨렸고 대통령을 내손으로 직접 뽑을 수 있는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해 냈다. 우리의 역할은 거기까지만이라고 생각했거나 그 이후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지 모른다. 당시에는 정치거물들이 많이 있던 시절이라서 아마도 그들이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는지 모른다. 대부분 그렇듯,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직장에 들어가고, 군대에 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우리의 부모님들이 걸었던 것처럼 묵묵히 살아왔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이 자리에 우리 시민들이 다시 서야만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

잠시 희망이 보이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해외에 나가서도 당당하게 활보하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고, 외국 친구들에게서 부러움과 존경을 받으며 어깨 으쓱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리되었을까? 법과, 제도 그리고 정치와 행정이 우리들의 일반 국민들의 삶과 동떨어진 채로 운영되어 왔던 것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젊은이들의 꿈이 '공무원' 혹은 '대기업 취업'에 지나치게 몰려 있다면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 꿈조차 꿀 수 없는 처지의 젊은이들이 “헬조선“을 외치는 현실은 더욱 가슴 아프다.

출세지향주의, 천박한 배금주의, 정경유착, 기복신앙 등 이 모든 것들이 편법이든 불법이든 남을 밟고서라도 1등만을 권장하는 이 사회의 현실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다양성은 존중받지 못하고, 다름을 틀림으로, 편법을 능력으로 용인 받는 사회에서 어쩌면 젊은이들의 꿈이 ‘안정적’인 것에 만족하려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지인이 우스갯소리로 한 “아마도 50년쯤 후에는 우리나라에 공무원과 교회 성직자만 사는 나라가 되는 거 아냐?" 라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만은 않는다."우리의 자손들이 중국에 취업하기 위해 밀항선을 탈 날이 올 것이다" 라는 10여년 전 농담 같았던 대화가 현실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오늘의 시위는 불법과 부정부패를 저지른 정권에 대한 분노이자 심판이기도 하지만 그 바탕과 이면을 들여다 보면 심판 후의 앞날이 더 걱정이다. 이 사회의 오랜 병폐이자 뿌리 깊게 박힌 문제를 일거에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문제의 배후에는 거대자본이 있으리라는데 확신한다.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의 고혈을 쥐어짜내고,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권력자들과 그 집단을 돈으로 관리하고, 권력 집단은 또다시 그 권력을 이용해 사적으로 치부를 하는 순환구조에서 일반 서민들과 젊은이들의 설자리는 없어 보인다.

연사로 나선 도올 김용옥 선생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러분은 단지 정권 타도 투쟁을 하려고 여기 모인 것이 아니다. 여러분 모두가 혁명을 해야 한다. 새로운 삶, 학문, 철학, 제도, 의식, 문화를 혁명해야 하며, 곳곳에 꽉차있는 낡아빠진 삶을 지속시키려는 사악한 무리들을 처리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라고 역설하였다. 여기모인 모든 젊은이들과 일반 시민들이 삶속에서 실천해야 할 방향과 과제를 제시한 연설이었다.

30년 후에 또다시 이 자리에 서서 "이러려고 내가 30년 전에, 60년 전에 그리 목소리를 높였나? 자괴감이 든다"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 평범한 생활 속에서 의식을 혁명하고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 새벽까지 자리를 지킨 문화.예술인 및 시위대들

잘못하면 벌을 받고, 잘하면 상을 받는 초등학생들이 이해할만한 그런 당연한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 그리고 지속 가능한 정의, 누가 지도자가 되더라도 그 시스템은 신뢰를 받는 그런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놓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이자 진정한 혁명이 아니겠는가? 입으로만 민주주의의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는 없는 일이다. 전 국민이 참여하고 공부해서, 공유하고 실천하면 그 목표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이번 집회는 매우 희망적이었다. 젊은이, 어르신, 직장인, 노동자 그리고 어린이까지 가족이 모두 모인 진정한 생활 혁명이고 정치혁명의 시작이라고 느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어른들이 나서야 한다. 이 거대한 역사적인 변곡점에 우리 모두 일어서야 한다.

다음주 집회가 벌써 기다려진다. 다음번엔 큰아이와 같이 손잡고 가야겠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진표 주주통신원  jpkim.internationa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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