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박근혜 대통령은 '불통 대통령' 이미지가 강하다. 1일 국정농단을 질타하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무수석 11개월 동안) 대통령과 독대한 적 없다.”고 말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 김규원 <한겨레> 기자

기자회견 때 질문 안 받는 것이 관례가 돼버린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민을 상대로 첫 사과를 했는데 이때는 녹화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이런 대통령 기자회견을 보는 국민의 마음은 답답함 그 자체다. 하지만 이게 기자회견에 임하는 대통령 자신의 취향 문제는 아닐 것이다. 김규원 <한겨레> 기자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 대통령 기자회견 취재에 임하는 청와대 출입 기자들을 향해 소회를 밝혔다. 본인의 허락을 받고 글을 소개한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에 대한 불만이 기자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나도 청와대 출입 기자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바란다.

첫째, 대통령 기자회견을 할 때 질문을 받지 않는 기자회견을 거부해야 한다. 질문을 받지 않는 기자회견은 기자회견이 아니라 담화나 성명 발표다.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을 것이면 왜 기자회견장에 가서 앉아 있나? 기자들이 들러리인가? 배경 화면인가? 병풍인가?

둘째, 사전에 질문과 대답이 정해진 기자회견을 거부해야 한다. 기자회견이 무슨 드라마인가? 대통령과 기자들이 배우들인가? 사전에 각본 짜서 하는 기자회견도 기자회견인가? 그것은 시민들과 시청자들을 속이는 일이다. 기자들은 시민들을 대신해 자유롭게 물을 권한이 있고, 대통령은 대답할 의무가 있다.

셋째, 문답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대통령의 머리 발언을 빼고 최소한 1시간 이상 질문과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자회견이라는 것이 대체로 중요한 사안이 있는 시기에 이뤄지는데, 질문 몇 개로 끝날 수 있나? 질문 몇 개 받지도 않고 "일정상 한 질문만 더 받겠다"고 하는 헛소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넷째, 녹화방송으로 하는 기자회견을 거부해야 한다. 모든 기자회견은 당연히 생방송으로 보도돼야 한다. 기자회견을 녹화방송으로 한다면 어떤 중요한 질문과 대답이 수정되거나 삭제될 수 있다. 시민들은 대통령의 발언이나 대답, 기자들의 질문을 날 것 그대로 보고 듣기를 원한다.

다섯째, 기자들 수십명이 노트북 갖다놓고 대통령 발언을 받아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기자들이 무슨 타자수인가? 기자회견이 타자 대회인가? 발언이나 문답은 청와대 속기록을 받아보거나 기자 중 두어명 당번을 정해서 받아치게 하면 된다. 그렇게 열심히 받아치면서 자신이 할 질문이나 대통령의 답변에 대해 무슨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특별히 바쁘고 힘들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뭔가를 그냥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기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좀 더 용기를 내주길 바란다.

편집: 이동구 에디터

김규원 <한겨레> 기자  che@hani.co.kr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