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 목숨을 내놓고 기사를 쓰면, 국민은 목숨을 내놓고 그 신문을 지킨다.

신문이 목숨을 내놓고 기사를 쓰면, 국민은 목숨을 내놓고 그 신문을 지킨다.

연극쟁이의 삶

방은미씨는 연극쟁이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국립극단> 배우로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극단 <현장>을 거쳐 1991년 만 30세 되던 해에 극단 <아리랑>에 입단하여 46세까지 몸담았다.

그녀가 많은 극단 중 <아리랑>에 적을 두게 된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아리랑>은 달달한 연애나 소소한 일상보다는 민족의 문제, 역사의 문제, 이 사회의 문제 등에 초점을 맞춘 극단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극단 <나비>를 창단하여 ‘안중근’ 같은 공연도 제작하였다.

작품성과 흥행성 두가지를 거머쥐었다는 평을 받던 연극연출가 방은미씨, 그런 그녀가 6년 전 홀연히 서울의 연극계에서 사라졌다. 우연히 제주도 강정마을을 방문했다가 그곳에 주저앉아버린 것이다. 그녀는 현재 강정에서 천주교평화활동가로 살고 있다. 2012년 고궁뮤지컬 <천상시계>를 연출하고, 2014년 <이녁>의 대본과 연출 작업을 한 적이 있지만, 대부분 매일 강정해군기지 앞에서 진행되는 11시 미사를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다.

그런 그녀가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했다. 바로 극단 <아리랑> 30주년 프로젝트 '연극 만세 아리랑 도큐먼트 연극적 인간’에 출연하기 위해서다.

▲ 극단에 입단한 지 3개월 밖에 안되는 신입단원부터 10년 넘는 단원들의 토크쇼

그녀는 극단 <아리랑>에서 있었던 일을 대화하듯 가볍게 털어놓는다. 초청 배우로 시작하여 바로 연출가로, 제작자로 극단 아리랑을 16년간 이끌었던 이야기다. 또 그녀에게 연극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아주 조금만 들여다보자.

그녀가 <아리랑>에 몸담고 있으면서 가장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공연은 ‘정약용 프로젝트’다. ‘정약용 프로젝트’는 연극불황시대에 앵콜공연을 한데다 유료관객 98%라는 기록을 세운 공연이다. ‘정약용 프로젝트’가 인기를 끈 이유는 뭘까? 바로 '토리극'이어서다. 토리극이란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극형식으로 특히 대사를 노래처럼 하는 극이다. 배우들은 우리말을 갖고 논다. 꺾기, 흔들기, 올라갔다 내려가기, 늘어졌다 달려가기 등 장단에 맞춰 노래하듯 대사를 읊는다. 공연 내내 관객들은 자연스러운 전통가락과 타악기의 장단에 몸을 들썩이며 공연에 몰입하게 된다.

▲ 왼쪽이 방은미님.

다음은 2005년에 광복 6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연극 ‘나비’다. 재미한국인 극작가 김정미가 쓰고 미국에서 공연된 '위안부'를 연출했다. 한국공연에서는 '위안부'를 '나비'란 이름으로 바꾸었다. 수년간 전국순회공연을 가졌고 미주에서도 원정 공연을 가진 바 있다. ’나비‘를 제작하면서 배우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비밀스런 이야기도 털어놓는다. 또 그녀를 '독사'라 부르며 진저리쳤던 연극배우도 알려준다.

한겨레에 대한 생각은?

잠시 연극을 쉬고 육아에 집중하던 28세에 한겨레 창간주주가 되었다. 그 전 해, 대선이 있던 87년에는 공정선거감시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국가를 믿을 수가 없었고 언론 또한 신뢰하지 못했다. 국민 각자가 스스로 나서서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87년 대선에서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절망했다. 이대로 국가를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때 한겨레신문이 창간된다고 했다. 넉넉지 않았는데 20만원 어치 주식를 샀다. 창간 후 신문을 열심히 보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한겨레를 많이 권했다. 지금도 주변에 한겨레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

초창기 한겨레는 시대적 소명을 잘 이끌어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확히 언제 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겨레가 좀 무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는 경향신문이 더 낫지 않나 그런 생각도 했다. 신문을 매일 챙겨보지는 못하지만 인터넷으로 중요한 뉴스를 찾아보다 보면 오히려 경향이 한겨레보다 날카롭다는 느낌이 든다.  한겨레가 '칼날이 무뎌졌구나', '녹슬었구나', '몸을 사리는구나', '첫 마음을 잃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강정마을에서 보는 종이 신문은 한겨레밖에 없다. 한겨레가 강정에 대한 기사를 자주 써준 것을 알고 있다. 덮어질 뻔한 최순실 사건을 다시 살려내어 보도해준 것도 고맙게 생각한다. 다시 날을 갈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앞으로 한겨레는 더욱 비판적인 시각으로 목숨을 내놓고 기사를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신문이 목숨을 내놓고 기사를 쓰면 국민은 목숨을 내놓고 그 신문을 지킨다.

강정에 간 이유는 ?

연극을 내려놓고 강정에 간 것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연극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다. 나에게 연극은 독립운동 같은 거다. 잠자고 있는 진실을 밝혀내고 이를 퍼트려서 대중의 인식을 깨우고, 그런 깨움으로 인해 사람들이 작더라고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면 세상은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독립운동이고 대중예술이 일정 부분 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영화보다는 그 기능이 좀 떨어지겠지만 연극은 직접적으로 그 역할을 해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지금까지 제작한 작품 모두는 사람들이 공연에 감동을 받고 세상을 바꿔나가는 데 촛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이유로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것 또한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한다. 해군기지 건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연극 <이녁>으로 만들어 제주도와 서울에서 공연했다. 2014년에 공연된 <이녁>은 강정마을에 사는 모녀의 이야기다. 4·3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12살 소녀가 칠순이 되어 강정의 해군기지건설을 마주치며 옛 기억을 떠올린다. 제주도의 비극, 강정마을의 참담함을 판소리, 춤, 노래로 보여준 공연이다.

 

지금 제주는 해군기지 뿐 아니라 공군기지까지 들어서려고 한다. 또한 난개발에 제2공항 건설 등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다. 제주도는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 생각한다. 그 천혜의 땅인 제주도가 무너져 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이미 우려했던 일이다. 제주도를 하와이 처럼 만드는 것에 반대하는 제주시민들의 목소리가 벌써 25년 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그 중심에 제주도특별개발법을 반대하여 항의 분신한 양용찬 열사가 있다. 이 양용찬 열사의 절규를 담은 연극을 만들고자 지금 대본 작업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정약용의 ‘시란 무엇인가’를 읊었다. 어느날 우연히 이 시를 접하고는 머리가 쿵했다. ‘시’라는 단어에 ‘연극’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 보았다. 연극이 가야할 길, 연극의 추구해야할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준 시라고 소개했다.

 

시라는 것은 사상의 표현이다.

사상이 본디 비겁하다면 제아무리 고상한 표현을 하려 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사상이 본디 협애하다면 제아무리 광활한 묘사를 하려 해도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때문에 시를 쓰려고 할 때는 그 사상부터 단련하지 않으면 똥무더기 속에서 깨끗한 물을 따라 내려는 것과 같아서 일생토록 애를 써도 이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천인 성명의 법칙을 연구하고 인심 도심의 분별을 살펴 그 때 묻은 잔재를 씻어 내고 그 깨끗한 진수를 발전시키면 된다. 《정약용 丁若鏞/증언 贈言》

 

이 공연은 11월 17(목) - 11월 20일까지 열린다. 주말은 오후 3시에 시작한다.

그녀가 촬영한 미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54W5v_bEgNYaJej4Lgl6fQ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