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이 꽁꽁 얼고 빰이 따가울 정도로 눈바람이 매섭다 해도, 겨울 산은 다시 가고 또 가고 싶은 산입니다. 어떤 계절의 산도 만물을 뒤덮은 백색 고귀함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을 보여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갑니다. 그 산을 보러, 그 산을 담으러, 나도 그 산 속 아주 작은 한 점이라도 되고 싶어서...

▲ 예의없이 곤도라를 타고 올라가면 나타나는 멋진 설천봉 누각

상고대는 순우리말입니다. 나무나 풀에 습기가 얼어 얼음꽃이 피었다 하지요. 하얀 꽃이 핀 것 같다고 눈꽃이라고도 하지만 눈이 수북히 쌓여 생기는 눈꽃과는 아주 다릅니다. 펑펑 내리며 잠시 피었다가 뚝 떨어지는 함박 눈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추위 속에 숨어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한 겹 한 겹 아프게 꽃망울을 터뜨린 인고의 얼음꽃이지요. 그래서 더 깨끗하고, 아름답고, 신비하고,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 순백색 화려함 속에서도 애잔함을 느끼게 해주는 상고대

상고대 숲이 바다 속 산호초 숲 같습니다. 아름답다 못해 황홀함이 느껴집니다 .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 홀로 그 외롭고 적막한 세월을 어찌 견디고 있을까요? 덕유산은 죽은 주목에 핀 아름다운 상고대로 유명합니다. 고사목도 겨울에는 외롭지 않을 겁니다. 상고대가 함께 해주니 말이지요. 고사목과 상고대의 처연한 어울림을 보니 왠지 백년 인간 인생이 가볍다 느껴집니다. 

상고대가 터널을 만들었습니다. 이 터널을 나와 인간세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김미경  mkyoung60@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