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촛불 든 사람들도 대단한데 안내려오는 대통령도 정말 대단하다"

지난 19일 '박근혜 퇴진' 제4차 민중총궐기에 참가해 자리에 앉았는데 옆에 젊은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 앉았다. 초등학교 어린아이와 함께였다. 그런데 아이가 들고 온 피켓, 삐뚤빼뚤 글씨로 쓴 피켓이 눈을 잡았다.

▲ 아이는 들고 있는 피켓과 뒤에 아빠가 들고 있는 피켓

궁금했다. 아이가 진짜 저렇게 말했을까? 집회현장이라 말 걸기라 좀 불편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아이 어머님과 나눈 녹음 대화 내용을 옮겨본다.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인 8세입니다. 남양주시에 살고요. 이름은 ‘가온’입니다. ‘가온’이란 말이 생소하지요? ‘가온’의 뜻은 ‘가운데’ 혹은 ‘세상의 중심’ 이라는 의미의 순 우리말입니다. 

요새 TV만 틀면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어느 날 가온이가 묻더라고요. ‘엄마 저거 왜 그래?’ 그래서 간단히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TV에 이 사건이 나오니까 그제야 실감을 했는지 ‘엄마 박근혜가 도대체 누구야? 엄마 이게 우리나라야?’ 라고 묻더라고요. 그렇다고 답해주면서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만화책을 같이 보았습니다. 가온이는 좀 놀라기는 한 것 같지만 이해한 것 같았습니다. 민주주의가 무너진 우리나라 현실을 설명을 해줘야 해서 가온이에게 좀 창피했습니다.  

지난 주 100만 넘는 인파가 모여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뉴스를 보면서 가온이가 또 말했습니다. ‘엄마, 아직도 반성을 안했대? 100만 촛불 든 사람들도 대단한데 대통령도 정말 대단하다.’ 라고요. 그래서 민주주의를 바로잡는데 우리 가족이 동참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 생각해서 가온이와 같이 나왔습니다. 실제로 가온이가 든 피켓은 가온이가 직접 쓴 거고요. 제가 프린트한 내용도 가온이가 말한 내용 그대로입니다. 

▲ 엄마가 들고 있는 피켓

여기 와서 보니까 가온이 연령의 아이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많이 왔네요. 피켓도 들고요. 8세면 부모가 가자고 해서 무조건 따라 나오거나 억지로 피켓을 들 나이는 아니거든요.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충분히 이야기 하고 아이들이 이해해서 나온 거라고 생각해요. 가온이 친구들을 비롯해 요새 그 나이 아이들도 많이 알고 있다고 하네요. 씁쓸하지요. 

박근혜 대통령도 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 밖에 없으니까 저렇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박대통령이 돈도 많아 생계 걱정도 할 필요도 없고, 봉사나 하면서 삶을 보냈으면 좋은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욕심이 과해 저리 된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시국 집회는 처음 나온 거라 어떨까 걱정했는데 평화집회라서 맘 편하게 동참할 수 있어서 참 좋아요. 그런데 발언이 2시간 넘게 이어지니까 아이가 좀 지루해 하네요 ‘언제 집에 가‘라고 물었어요. 아빠가 ’행진은 하고 가야지‘ 그랬는데... 우리는 종로3가에 내려서 걸어왔는데 거기는 조용해서 별일이 없는 줄 알았어요. 뉴스에서 아무리 100만이 모였다고 해도 종로3가만 가도 체감이 잘 안 됩니다. 국민들이 체감하려면 여기 모인 사람들이 노래하고 행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걷는 사람도 신이 나고 구경하는 사람도 쉽게 동참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잠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뜬 사이 가온이네 식구들은 떠나고 없었다. 따뜻한 날씨라고 하지만 광화문 광장은 밤바람이 차다. 춥고 지루해서 먼저 일어난 것 같았다. 그 많은 시민들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뜨거운 가슴을 앉고 먼데서 어렵게 마음먹고 온 가온이네 식구들이 마음속 열기를 다 터트리지 못하고 떠난 것만 같아서 좀 아쉬웠다.

여덟살 된 가온이, 그 나이에 벌써 대한민국의 못난 모습을 알아버린 가온이, 그리고 그 해결방법도 간단히 알고 있는 가온이, 어른보다 낫다. 26일에 가면 또 만날 수 있을까? 100만 이상을 헤치고 찾아야할 것 같은데..... 어렵겠지 싶다. 그래도 혹 모르니까 따뜻한 코코아 한잔 타서 가지고 가야겠다.

* 사족 : 가온이 어머님은 아이 사진과 녹음대화를 한겨레:온에 게재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감사드린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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