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명의 식객을 거느렸던 맹상군(1)

[대만이야기 10화] 단오의 유래'에서 언급을 했던 맹상군(孟嘗君?~BC279)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알고 있던 식객(食客)이란 단어가 어느 날 TV에 등장을 하더니 음식경연장이 되었고, 최근에는 ‘맛집’ 혹은 ‘먹방버라이어티’ 같은 생경한 조합어도 탄생을 했습니다.

▲ 허영만 화백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SBS 드라마.

요사이는 냉장고 문을 열고 ‘왜 열었지?’ 생각을 하는 나이가 되다보니 혹시 내가 잘못 알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에 사전을 뒤적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제가 아는 그대로이군요. -식객: 세력이 있는 집에 얹혀서 문객 노릇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맹상군은 전국4군(전국시대 유명한 4명의 제상)의 한명으로 설지(현재의 山東지역)에 영지를 갖고 있던 제나라 왕족의 일원입니다. 맹상군(본명:전문)은 제나라 위왕의 아들이며, 선왕의 이복동생인 전영의 아들로 음력 5월 5일 단오에 태어났습니다. 아들을 버리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여러 명의 첩들 중에서도 신분이 미천했던 어머니는 아들을 몰래 키우지요. 아들이 40여명이나 되어서 그랬는지 관심 밖에서 자랍니다.

아들이 장성하자 어머니는 친부를 찾게 합니다. 맹상군을 본 아버지가 놀라 ‘왜 죽이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지요. 단오에 태어난 아이가 커서 방문 높이를 넘어서면 부모와 극성이라 그 아비를 죽이게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자 맹상군은 ‘인명은 하늘이 정하거늘 어찌 방문이 좌우합니까? 그러면 문 높이를 높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전영은 문득 깨닫는 바가 있어 아들을 집안에 들여 함께 살게 됩니다.

총명함을 인정받은 맹상군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안에 머무는 식객들을 관리합니다. 오늘날 언론기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식객들의 좋은 평판에 힘입어 전영의 후계자가 되지요.

한 번은 식객 중에서 내실에서 식사를 하는 맹상군을 향해 ‘아마도 안에서 혼자 맛있는 것을 먹고 있나보다.’고 불만을 표시하며 일어서 나갑니다. 그러자 맹상군이 문을 열어 식객들과 똑같은 밥상을 보여줍니다. 비록 주인임에도 그들과 같은 밥상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맹상군의 명성은 전국으로 퍼져나갑니다.

맹상군의 명성을 들은 진나라 소양왕(법가인 상앙을 죽이고도 그의 개혁정책을 계승 더욱 부강한 국가를 만들었던 혜문왕의 서자. 소왕이라고 불리기도 함)이 재상으로 그를 초청합니다. 소양왕은 맹상군이 진나라에 들어오자 걱정이 생겼습니다. 맹상군이 고국인 제나라를 매사 앞서서 챙긴다면 진나라가 걱정이고, 돌려보내자니 제나라가 강성해져 후환이 되리라 여기고 죽이기로 작정을 합니다.

이를 눈치 챈 맹상군은 구명을 위해 소양왕의 총애를 받는 후궁 연희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자 연희는 그 대가로 흰 여우가죽 옷을 요구하지요. 이미 소양왕에게 진상한 그 옷을 달라고 하자 개처럼 위장을 하고 흉내를 낼 줄 아는 말석의 식객(狗盜)이 나서서 궁궐창고에 들어가 흰 여우가죽옷을 훔쳐와 후궁에게 바치고 도망을 칠 수 있게 됩니다.

마음이 바뀐 소양왕이 추격대를 보냅니다. 맹상군 일행은 부리나케 도망을 쳐서 국경인 함곡관에 이릅니다. 뒤에서는 추격대가 쫓아오고, 관문은 굳게 닫혀있었지요. 그러자 말석에서 한 식객이 나서서 닭울음소리를 똑같이 내자 여기저기서 닭들이 울어댑니다(鷄鳴).

이윽고 성문이 열리고 위조에 능한 식객이 만든 가짜 통행증을 제시하고 유유히 진나라를 빠져나갑니다.

이 고사를 계명구도(鷄鳴狗盜)라고 합니다. 천한 재주라는 의미도 있고, 이런 천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식객으로 받아준 맹상군의 그릇됨을 칭송하는 의미로도 사용을 합니다.

대통령과 여당대표가 국민의 세금으로 송로버섯에 철갑상어 알, 금지품목인 상어지느러미 요리 등을 먹었다지요. 아침 첫 인사가 ‘진지 드셨습니까?’ 일 정도로 우리 민족에게 먹는 문제는 단순한 먹을거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박근혜정권의 콘크리트 지지는 일반인들이 들어보지도 못한 호화 식단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예로부터 널리 사랑받고 읽히는 춘향전! 만약 남원사또 변학도가 춘향이의 미색에 빠져 수청을 들라고 채근을 하였고, 어사 이몽룡이 연적을 때려잡기 위해 마패를 사용하였다면 삼류소설의 치정극으로 치부되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이몽룡 어사가 거지로 변장을 하고 변학도의 호화판 주연에 참석을 합니다. 수청을 거부하는 춘향을 처형하는 자리이기도 하였지요. 거지꼴을 한 이몽룡이 들어오자 내보낼 심산에 아전이 시나 한 수 지어보라고 하자 쓴 한시입니다.

金樽美酒 千人血/ 玉盤佳肴 萬姓膏/ 燭淚落時 民淚落/ 歌聲高處 怨聲高 (금준미주 천인혈 / 옥반가효 만성고 / 촉루락시 민루락 / 가성고처 원성고)

‘금동이 안의 향긋한 술은 백성들의 피요, /옥쟁반의 맛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구나.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흘러내리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의 소리 드높도다.’

변학도를 포박하여 한양으로 압송하는 당위성은 백성들의 피와 기름을 짜서 혼자 잘 먹고 잘 산 탐관오리에 대한 처벌이었던 것이지요.

프랑스혁명을 야기했던 황실의 사치와 방탕한 생활, 먹을 빵이 없어 허기진 군중을 향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는 성난 민중에게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습니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실제로는 상냥하고 다정다감했으며, 저 유명한 ‘빵’이야기도 그녀가 했던 말은 아니랍니다.

그렇다고 해도 궁 안에서만 생활을 하며 세상 물정 모르고 평상시 살아온 삶이 사치였고, 또한 지혜롭지 못했음도 사실인지라 민중의 분노는 혁명을 일으켰고, 그녀는 단두대의 형틀 아래 죽음을 맞이하지요.

▲ 단두대(기요틴) : 프랑스 혁명 당시 사용된 사형기구. 사형수의 고통을 줄이자는 기요탱 박사 등의 제안으로 고안되었습니다. 루이 16세와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처형하므로서 프랑스 왕정은 무너집니다. 마리 앙투아네트 처형장면. 사진 출처: 위키백과

나라 경제를 파탄 직전까지 몰고 갔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 하루아침에 숱한 가장들이 길거리로 나앉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김영삼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전임 대통령에 대한 처벌이나 군부 내의 사조직 척결, 금융실명제등의 뛰어난 업적도 있었지만, 아마도 청와대로 초청한 손님들에게 칼국수를 대접하는 소탈함이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을까?

권력과 세도를 남부럽지 않게 누려왔을 김종필 전 총리가 최근 기사화된 글에서, 고 육영수 여사의 이중적 성격을 언급하면서 고집불통에 타인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는 성품이라고 묘사를 하던데, 맏딸을 낳고 먹지도 못하고 있는 부인 박영옥을 챙겨주지도 않고 안에서 달그락거리며 자기들만 밥을 먹더라는 부인의 하소연이 90을 넘긴 지금까지도 김종필의 가슴에 남아있다는 뜻이겠지요.

따뜻한 밥 한 끼가 평생 고맙게 오래도록 기억이 되기도 하고, 먹는 문제로 한 번 상한 마음의 상처가 영원히 남기도 합니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