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륜있는 두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한양도성길을 걷다

그녀를 만나기 100m 전에 가기 전, 남편과 나는 산행을 하기로 했다. 한양도성탐방길 제 1코스인 혜화문에서 와룡공원을 지나 말바위 안내소, 숙정문, 백악산, 창의문으로 내려가서 그녀가 있는 청와대 100m 앞으로.....

와룡공원을 막 지나는데 경찰이 공원에 버스를 주차하고 내려서 말바위 안내소 방향으로 줄 서서 나란히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 가보다 했다. 그런데 말바위 안내소에서 주민증을 제시하고 명찰을 받고 나오니 경찰이 쫙 깔려 있었다.

▲ 말바위 휴게소에서 어느 한사람 때문에 느닷없이 보초를 서게 된 경찰

경찰은 가방검사를 하겠다고 했다. 숙정문부터 창의문까지는 시위금지 지역이라서 시위용품이 있는지 확인해야한다며 가방을 열어보라고 했다. 남편 가방에서는 전기촛불이 나왔고, 내 가방에서는 전기촛불과 ‘박근혜 퇴진’ 손 피켓이 나왔다. 우선 한 경찰이 손 피켓을 꺼내 압수했다.

▲ 손피켓 압수 당하다

우린 여기서 시위할 생각이 없다며, 피켓과 손전등을 압수하면 인터넷에 올릴 거라고 항의했다. 그랬더니 돌아올 때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반대편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책임자 같은 사람이 어디론가 전화를 한참 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은 듯 했다. 나는 그 장소에서 빨리 뜨고 싶었다. 하여 손 피켓은 저 아래 내려가면 쌔고 쌨으니 필요 없다고 압수하라고 하고 우린 일정대로 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촛불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촛불은 우리가 어렵게 산 귀한 거라서 못 내준다고 했다.

다시 전화를 하고 의논을 하더니 두 경찰이 우리와 동행해서 같이 간다고 했다. 우리가 중간에 청와대 뒷산에서 시위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감시하겠다는 거다. 우리는 산행 중 시위할 생각이 없다고 누차 말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보면 모르나? 나는 선글라스를 썼으니 모른다고 쳐도 울 남편 얼굴 보면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란 걸 보면 모르나?

▲ 왼쪽 두 사람이 우리와 동행하게 될 경찰, 오른쪽 경찰이 어디론가 계속 전화하던 책임자

결국 두 명의 경찰이 우리와 함께 갔다. 가다 가만히 생각하니 가방을 열라하고는 뒤져보고 시위용품이라며 손 피켓을 압수하는 것.. 이거 합법적인 건가? 법을 세세히 알지 못하니 경찰이 하자는 대로 한 것 같아서 속에서 열불이 났다. 살짝 공격적인 태도로 경찰 한 명과 걸어가면서 대화를 나눴다. 두 경찰은 용인경찰서에서 출장 나온 박모 경위와 김모 경장이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던 책임자의 이름을 물었더니 더 이상 묻지 말라고 했다.

처음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같이 걸었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어떤 4-50대 여자 분이 박모 경위가 든 빨간 손 피켓을 보더니 필요하다고 달라고 했다. 박모 경위는 당황한지 순간적으로 말을 못했다. 내가 박모 경위가 피켓을 갖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 분이 “왜 피켓을 압수 하냐? 별일이다” 하면서 나대신 항의하고 가버렸다.

▲ 숙정문

숙정문을 지나 길이 좁아지면서 경찰은 우리 뒤에 바짝 따라왔다. 감시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우리 앞에 가라고 했다.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좀 떨어져서 오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경찰은 우리 뒤를 따라왔다. 생각보다 두 경찰은 권위적이거나 일방적이진 않았다. 그저 우리를 호위하라는 명령에 충실할 뿐... 아님 광장에서 보여진 국민의 힘에 찔끔해서 나긋나긋해진 걸까?

▲ 백악산 전망대를 향해......
▲ 소나무와 도성 성곽이 잘 어우러진다.
▲ 도성 성곽 틈새로 자란 끈질긴 나무

백악산 정상에 가기 전 중간 전망대에서는 같이 쉬기도 했다. 두 경찰은 먼저 전망대에 오른 우리와 좀 떨어져서 있었다. 우리 있는 곳이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라고 와서 보라고 했더니 왔다. 온 김에 네 명이 사이좋게 인증사진을 찍자고 하니 질색을 하고는 떨어져 가버렸다. 그렇게 말하면서 내 감정도 사그라졌다. 경찰이 무슨 죄가 있으랴?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그런데 두 경찰은 한양도성에 처음 와보는 것 같았다. 나름 멋진 구경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경찰에게 “우리 때문에 복 터졌어요. 이렇게 좋은 구경을 하잖아요?” 그랬더니 경찰도 "그러네요. 여기 참 좋네요."하고 동의했다.

▲ 전망대에서 보이는 북한산

백악산 꼭대기에 올랐다. 경찰이 10명 이상 모여 있었다. '박근혜 퇴진'을 뒷산에서 외칠까봐 겁이 어지간히 나는가 보다. 박모 경위와 김모 경장이 경찰들 사이로 들어가 수군수군 왜 우릴 따라왔는지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 백악산 정상에서, 경찰 감시 와중에도 남편이 멋지게 찍어 주었다.

백악산을 하산하면서 두 경찰에게 “이제부터는 계속 내리막길이에요. 경사도 심해요. 내려갔다 올라오려면 굉장히 힘들 겁니다.” 라고 말해줬다. 이제 그만하면 가도 되지 않냐는 암시를 준 것인데.. 경찰은 “괜찮습니다. 운동도 되고 좋습니다.” 하고 씩씩하게 따라왔다.

무릎이 썩 좋지 못한 나는 계속 내려가는 코스를 힘들어 해서, 내리막 중간 지점인 백악마루 휴게소에서 항상 휴식시간을 갖는다. 두 경찰에게 이것도 인연인데 넷이서 나란히 앉아 빵을 먹자고 했다. 괜찮다고 하며 10m 떨어져 서 있었다. 아마 근무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는지 절대로 앉지 않았다. 우리만 먹기 미안해서 빵 2개와 코코아를 탄 보온병을 갖다 주었다. 빵을 극구 받지 않아 도로 갖고 왔지만 코코아는 아예 컵에 따라주고 왔다. 휴게소에 모인 사람들이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그래서 같이 쉬는 사람들에게 경찰과 동행하게 된 사유를 말해주었다. 박모 경위는 빨간 손 피켓이 눈에 띄는 것이 불편했는지, 아니면 내가 이런 일 하려고 경찰이 되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는지, 웃옷을 벗어 피켓을 둘둘 말아 감추어 버렸다.

▲ 멀리서 우리를 따라오는 경찰. 오른쪽 박모 경위가 피켓을 옷에 둘둘 말아 들고 내려온다.

그렇게 나는 꼬인 감정을 풀면서, 두 경찰은 멋진 서울도성 구경을 하면서 내려왔다. 창의문에서 손 피켓을 전달해주는 인증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런 사진은 여태 본 적이 없다며 로이터 통신에 날 사진이 될 것이라고 꼬셨는데도 손사래를 치며  창의문 관리사무소에 손 피켓을 두고 도망가듯 가버렸다. 그렇게... 성실해 보이는 박모 경위와 선해 보이는 김모 경장과의 인연은 아쉽게 끝났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 경찰이 배달해준 손 피켓을 들고 창의문을 뒤로 하고 인증 사진 한 장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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