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거취 문제를 국회 합의에 맡긴다는 내용의 제3차 대국민담화를 낸 뒤 열린 지난 3일 제6차 촛불집회는 전국적으로 232만 명이 참여했다. 이날 서울 광화문 일대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약 190여 만 명이 모였다. 광장 어디든 환한 LED전광판과 쩌렁쩌렁한 스피커에서 나오는 촛불집회 진행자의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큰 길을 물 흐르듯 옮겨가는 인파,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사이다’ 시민발언대, 골목골목 자발적인 시민들의 퍼포먼스, 유모차 탄 아이부터 구순 어른신 등 시민의 물결이 광장을 덮었지만 우왕좌왕하지 않았다. 저녁 7시 ‘1분 소등’ 행사를 함께 하고 나면 시민의 자부심이 절로 샘솟는다.

[영상 보기] http://youtu.be/ujbYktifxSs

도대체 이 거대한 촛불바다를 누가 움직이는가. 바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이다지난 7일 <한겨레:온>은 ‘국민행동’ 언론 담당을 맡고 있는 한선범 한국진보연대 정책국장을 만났다. 제대로 쉬지 못한 그의 얼굴은 피곤함이 가득했지만 그의 답변은 명료했고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은 어떤 단체인가?

원래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11월 12일을 ‘민중총궐기의 날’로 잡고 준비했는데 최순실 국정농단 규탄 국면으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10월 29일 급하게 집회를 열었다. 시민 2~3천 명이 참석할 거라 예상했는데 5만 명이 광화문 집회에 모였다.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전담 단체 구성이 필요하다고 합의하고 11월 5일 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9일 민주, 진보적 시민사회단체 1600여개가 참여한 ‘운동본부’를 출범했다. 운동본부의 첫 촛불집회는 12일(토) 오후 7시30분 광화문광장서 열린 ‘박근혜정권 퇴진 3차 범국민행동’이었다. 이후 지난 3일 제6차 촛불집회까지 ‘국민행동’이 주도했다.

[관련기사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73548.html

매주 대통령 담화, 여야 정당들의 입장 변화에 따라 민심이 요동쳤다. 민심의 흐름이 어떠했나?

광장에 나온 시민의 요구는 박 대통령이 매번 담화를 발표할 때마다 더 강해졌다. 대통령 담화에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를 받겠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거부해버렸고, 물러나겠다던 3차 담화에는 꼼수가 가득했다. 국민의 명령은 계속 거부당했고, 분노는 커져 ‘박근혜 하야’ 요구는 ‘즉각 퇴진과 구속’ 요구로 더 강해졌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방치한 집권 여당에 대한 목소리도 점점 변해갔다. “새누리당도 공범이다”에서 “새누리당 해체하라”로 발전했다. 권력과 유착관계인 재벌에 대한 구호도 강도를 높여갔다. “재벌도 공범이다.”가 “재벌을 해체하라”로 바꿨다. 날이 갈수록 시민의 분노가 더 커져갔음을 알 수 있다.

정작 야당들은 시민의 요구와 동떨어졌다고 하는데

국정농단 사태와 3차에 걸친 대통령 담화에 대한 시민의 요구와 입장은 분명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야당들은 입장 정리를 제대로 못 하고 이랬다저랬다 하거나 아예 입장을 내놓지 않는 등 답답한 모습을 보여서 광장시민들의 따가운 질책을 받아야 했다. 어느 당은 질서 있는 퇴진을 원한다 하고, 어느 당은 즉각 퇴진하라 하고, 탄핵은 신중해야 한다고 하거나 즉각 탄핵을 추진하자는 등 중구난방이었다. 광장민심은 세 번의 대통령 담화에도 변하지 않았다. “박근혜 즉각 퇴진”이다.

경찰이나 법원의 대응도 예전에 비해 상당히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경찰이나 법원은 권력 변화에 민감하다. 지금은 광장에 힘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집회시위 때 신고한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무리하게 막는 건 오히려 위헌 소지가 크다. 그동안 경찰은 자신들이 정한 가이드라인을 지키도록 강압했지만 지금은 다소 유연해진 것 같다.

1600개 단체의 의견과 이해관계가 모두 다를 텐데 어떻게 의견을 모아가고 일사분란하게 집회를 진행해 가는지 신기하다.

촛불시민광장의 요구는 하나로 모아진다. ‘박근혜 퇴진’. 이 대전제에 대해 어느 누구도 토 달지 않는다. '국민행동' 운영위원회는 몇 시간씩 치열하게 논의하지만 이 대전제가 같기 때문에 지엽적인 이견들은 어렵지 않게 조정할 수 있다. 이견으로 집회에 차질이 생기면 촛불광장으로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과 책임이 고스란히 돌아올 것을 알기에 합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사실 집회를 진행하면서 모두 느끼는 건데 지금 시민행동은 집행부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광장시민이 직접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광장의 요구를 잘 받들어 시민의 힘을 효과적으로 잘 보여주도록 판을 깔고 지원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평화집회’로 변화가 가능하겠냐고 하는 분들도 있다.

평화집회는 옳고 폭력집회는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 있나. 그럼 3.1운동, 4.19, 5.18, 6.10시민항쟁은 모두 폭력집회니 잘못된 것이라 말 할 수 있나. 문제는 어떤 방식의 집회가 더 효과적이냐 하는 거다. 지금까지 국면에서는 경찰과의 충돌을 피하는 평화집회가 좋았다고 본다. 유모차를 끌고 오는 엄마도 있고, 어르신들도 오고, 초등학생들도 광장에 온다. 모든 국민이 오는 광장이 과격하게 변하는 것은 여러 가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시민의 안전이 집행부의 통제 밖에 있게 된다. 그러나 대통령이 계속 버티고 시민의 분노가 더 커질수록 경찰의 방패라인을 넘어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커지게 될 것이다.

지난 6차 촛불집회에는 사상 최대의 시민이 참여했다. 그런데도 집회는 차분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진행되었다. ‘국민행동’의 리더십이 돋보인다.

나라가 어수선하고 수많은 이슈들이 터져 그동안 시민단체들은 많은 집회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집회를 매주 진행한 적은 없었다. 초반에는 좀 문제가 많았다. 서울시청, 광화문 집결을 위한 교통편 및 하차 정류장 등 문제부터, 행사 전광판 화면이 꺼지는 등 행사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여러 차례 집회를 진행하니 이젠 시민들도 알아서 잘 찾아오고 진행차량이나 전광판 등도 잘 준비되고 있다. 고마운 건 시민이 집회 집행부의 안내에 아주 잘 따라준다는 거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회와 행진을 기획하고 자리를 마련한 것은 ‘국민행동’이지만 그날 행진을 리드하는 것은 바로 시민이다. 시민 스스로 구호를 정하고 외치면서 중심을 잘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의 의견을 잘 반영해 진행하는 것이 집회를 세련되고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나보다.

광장에서 만난 시민들의 생각과 행동은 어떠한가.

2008년 광우병 집회와 지금 집회가 가장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광우병 집회는 성공적이었으나 승리하지는 못했다. 그 당시는 이명박 정권이 막 출범한 때여서 정권의 힘이 강했다. 보수 언론들도 모두 정권의 편에 섰다. 하지만 지금은 정권말기다. 보수언론까지 촛불의 열기를 보도하고 심지어 국정농단의 진실을 파헤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집회도 즐거운 거다. 사람들이 적으면 기운이 안 나는 거다. 시민들이 다 같은 뜻으로 나왔기 때문에 집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 동지라고 생각한다. 서로 적극적으로 배려한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구호는 강경하지만 광장의 동지들과 함께 같은 목소리를 내기에 즐거운 것이다. 시민들은 알아서 집회에 참여한다. 집행부에게 특별히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찾아오고, 알아서 촛불 들고, 알아서 공연하며 광장에서 길에서 놀고 있다. 정치는 구태의연하지만 이미 시민들은 광장에서도 멋지게 잘 하고 있다.

지난 6차 집회는 행진 위주로 집회를 운영했다

언론보도나 SNS 등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들어온다. “엉덩이가 차가워요”, “오래 못 앉아있겠어요”, “우리가 공연 보러 왔냐? 싸우러 왔지.”라는 분들도 있다. 날도 추워진 면도 있고, 이런 의견들을 반영해 무대공연이나 발언을 좀 줄이고 행진을 늘렸다.

9일 탄핵안이 표결 이후의 계획은?

탄핵안 통과 되더라도 시민들의 ‘즉각 퇴진’ 요구는 계속 될 것 같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할 경우, 이는 박근혜 정부의 연장이다. 시민들이 이를 인정하겠나. 내각이 총사퇴하고, 적폐 청산이 이뤄져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헌법 질서’를 이야기하지만 국민의 명령이 헌법 위에 있다고 본다. 사람이 법을 만든 것이다.

탄핵의결 후 헌재 판결이 날 때까지 '국민행동'은 어떻게 이 불꽃을 이어갈 계획인가?

시민들이 이제야 자신의 힘을 실감하게 되었다. ‘어? 우리가 행동하니까 대통령이 사과하고 물러난다 하고, 특검도 생기고, 청문회도 열리네’ 라고. 시민들 자신이 주인이란 걸 실감한 거다. ‘국민행동’이 아니라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촛불과 횃불을 이어가는 것이다.

수십 년의 적폐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친일, 독재세력 청산, 자본, 권력, 언론 등 과제가 많지만 세월호, 백남기 농민, 위안부, 사드문제, 한일군사보호협정, 국정 교과서 등 시급히 청산해야할 것들이 많다. 시민들도 이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시민들의 요구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

집회문화가 시민문화축제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보나.

지금 골목마다 벌어지고 있는 공연이나 퍼포먼스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열고 있다. 집행부가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집회라는 게 즐거운 축제는 아니다. 분노해서 집회에 참가하는 것이다. 집회는 적을수록 좋은 거다. 분노한 문제가 해결되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이번에도 빨리 해결돼서 시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더 좋은 거라 본다. 근본적으로 집회문화가 광장문화축제로 발전하는 건 한계가 있어 보인다. 다만 진행하는 집회의 형태나 방식으로 시민의 요구에 맞게 운영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르신들이나 아기엄마를 위한 무개 차 같은 것을 운영할 생각은 없는지?

트럭에 사람을 앉히는 방법은 좀 위험할 것 같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서울시에서 제공해주었다. 광화문광장 주변의 건물들도 야간에 화장실을 열어주었다. 예전엔 광화문 사용허가를 받는 것도 어려웠다. 이번 국면에서는 서울시가 시민이나 집행부에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 있다.

매 회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광화문 대로를 메우니 차량 통제가 불가피한데 시민의 항의는 없나?

다들 이해하고 참아주시는 것 같다.

지방 집회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가?

주요 기조는 전국대표자회의에서 합의한 내용으로 통일한다. 하지만 행사 방식 등 모든 부분은 지역에서 자율적으로 진행한다. 행사 필요경비는 지역별로 모금과 후원을 통해 충당한다.

대형 집회를 여러 번 진행하려면 경비가 많이 필요하겠다.

무대 및 음향 설치비용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11월 26일 경우 무대비용만 2억 원 정도 들었다. LED 화면과 차량 8대 정도 배치하는 것에 돈이 많이 든다. 그래도 그렇게 해서 현장의 시민들이 답답함 없이 큰 화면을 통해 집회에 참여하고 실감나게 지켜볼 수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많아 행사진행 요원 인건비는 많이 들지 않는다. 경비는 현장모금과 후원계좌입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광장에서 모금바구니가 돌 때 시민들이 내주시는 후원금으로 행사를 치룬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모금바구니가 다 돌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지만 큰 문제는 없다.

결산내용을 공개할 수 있는지?

현재 ‘국민행동’ 홈페이지에 가면 결산내역을 볼 수 있다. 10월 29일 1차 집회를 한 날부터 11월 30일까지의 결산이 공개되어 있다. 다음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bisang2016.net/b/board04/148 )

끝으로 시민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이번에는 죽 쒀서 개주지 말자’ 온통 그 생각뿐이다. 승리할 때까지 함께 하자.

박 대통령은 시민의 '즉각퇴진' 요구를 거부했다. 아무래도 주말마다 광장에서 추운 겨울을 지내야할 것 같다. 이렇게 시민이 자신의 메시지를 분출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국민행동’에 감사한다. 이들을 응원할 후원계좌를 안내한다.

농협 302-1066-1087-11(예금주:이승철)

사진, 편집 : 이동구 에디터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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