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을 보내야 꽃을 피우는 야생화 이야기

화초를 기르는 취미를 갖게 된 것은 우리 엄마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지만, 남편의 취미에 편승하게 된 결과이기도 하다. 2011년 1월에 결혼해서 일산에서 살게 되면서, 남편이 좋아하는 화초기르기를 허락(?) 해주다 보니 틈이 나면 고양 하나로클럽 화훼센터를 드나들게 되었고 각종 화초들을 들여놓게 되었다.

▲ 백매화 분재. 최근에 선물로 들어온 분재인데, 이렇게 예쁜 꽃을 피웠다. 내년에 다시 꽃을 보기 위해서는 정말 잘 관리해야 한다는데 부담 백배다.

처음에는 잎이 풍성하고 푸르른 열대 화초들을 많이 길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사랑하게 된 것은 야생화였다. 크고 화려한 꽃과 잎사귀는 아니지만 이 땅의 산과 들에서 자라나는 야생화의 독특한 특성들에 매료된 까닭이다.

▲ 물을 엄청 좋아하는 단정화. 정말 거의 매일 물을 주다시피 해야 한다.

일단 야생화는 자신을 아무 곳이나 두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물론 모든 화초는 볕을 얼마나 더 보고 덜 봐야 하는지, 물은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실내의 공기청정 효과를 이야기하는 화초들은 오염물질에 강하다고 보면 된다. 사람이 호흡하기 어려운 공간에서 독성물질을 잘 분해해내는 기특한 아이들이다.

야생화는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실내에 들여놓으면 벌레가 끼고 그냥 죽어 버린다. 야생화를 기르려면 야생화의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 회사 사무실의 내 책상을 멋지게 꾸미기 위해서 야생화를 활용하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햇빛이 좋아야 하고 통풍이 잘 되어야 한다. 최대한 자연의 상태에 가깝도록 해주면 된다. 이런 고고함에 매료되었다. 

▲ 겹동백. 6년을 한결같이 꽃을 피웠는데 올 여름 폭염을 못견디고 말라 죽었다. ㅠㅠ
▲ 겹동백을 떠나보내고 새로 들여놓은 동백. 노란색 꽃술이 뚜렷한 전형적인 동백이다.

두번째로는 야생화 꽃을 해마다 보려면 베란다 월동을 해야만 한다. 겨울 추위를 피하게 해준다고 따뜻한 실내에서 겨울을 보내게 하면, 다음 해에 꽃을 볼 수가 없다. 너무 추운 날에는 창가에서 좀 떨어뜨려 놓거나, 밤에 신문지 한 장 덮어 주는 정도면 야생화들은 끄떡 없이 추위를 견뎌낸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을 보내야 하는 우리 자연, 우리 계절, 우리 꽃들의 특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다. 베란다에서 추위를 잘 견디며 봄을 맞이한 야생화들이 봄꽃을 피워내는 장면을 바라다 보는 것처럼 행복하고 즐거운 일은 없다. 

▲ 2월이면 피어나는 군자란의 위용. 겨울을 실내에서 보냈다면 2월에라도 빨리 내놓는 게 좋다. 그러면

겨울이 되고, 우리집 열대식물들은 모조리 거실로 들어왔다. 커피나무, 고무나무, 스킨답셔스, 다육이, 스파티필름, 아메리칸 블루..... 그렇지만 야생화들은 씩씩하게 베란다 월동 중이다. 명자나무, 백매화, 동백, 남천, 군자란, 동양란... 그리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인장 천년초도 월동중이다. 바람을 덜 받으려는 의지의 반영일까?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서 자라는 우리 선인장 천년초는 유일하게 베란다 월동이 가능한 선인장이다.

▲ 여름을 보낸 후에 가을에 일제히 꽃을 피워 올리는 동양란 철골소심. 누군가 기르다가 내버린 동양란을 이리저리 모으다 보니 화분만 이십여개가 되었다. 난초를 잡초처럼 키우는데 꽃은 매년 정말 잘 핀다.

겨울은 깊어가지만, 베란다에서 월동하는 우리 야생화들이 피워낼 봄꽃들을 기대하며, 그리고 이미 겨울 안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우리 야생화들을 응원하며, 이 겨울을 기다림과 소망의 시간으로 갈무리한다. 12월 22일은 동지. 가장 밤이 긴 날이 지나고 나면, 봄은 다가오기 시작한다.

▲ 역시 매년 꽃을 피워주고 있는 명자나무. 근데 이 녀석도 올 여름 폭염에 많이 상했다. 내년에 꽃을 볼 수 있을까? 날이 덥고 목이 마른데 물을 더 챙겨서 줬어야 했는데 하던 대로 했더니 몸이 약해져서 병충해를 심하게 앓았다.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조정미 주주통신원  neoech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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