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공자는 <주역>을 읽은 지 3년 만에 '지천명', 즉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원리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주역은 동양학의 뿌리라고도 합니다. 동양의 가장 오래된 경전이란 뜻이죠. 주역은 유학에서 말하는 '삼경' 중 하나입니다. 원래 이름은 <역경>인데 '주(周)나라시대의 역(易)’이란 뜻에서 <주역>이라고 부릅니다. 한겨레 주주인 김상학 주주님은 현재 대학 교육원에서 주역 노자 장자 역학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요즘 동양철학 특히 주역에 대해 관심 갖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막상 호기심에 책을 들추면 너무 어려워 곧 덮어버리곤 할텐 데요. 이번 기회에 주역을 쉽게 접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김상학 주주의 '쉬운 역학(易學)'을 2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불교의 교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고(염화시중의 미소. 이심전심의 묘법), 바이블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하는 말이 있지요. 이것은 언어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자리를 자연 공부에서는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노자 1장), 마음공부에서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공부법으로 전승되어지고도 있는 것이지요(연재물 1회).

개구즉착(開口卽錯) -입만 열면 착오가 생긴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염화시중(拈華示衆),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 공적영지(空寂靈智), 성성적적(惺惺寂寂), 삼처전심(三處傳心)=1)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2)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3)사라쌍수곽시쌍부(沙羅雙樹槨示雙趺)

이러한 용어들이 가리키는 자리는 진리 자리이지요. 이 자리는 차별 분별이 없는 ‘본 마음 자리’(9식)를 말한다는 것이지요. 이 자리를 보면 바로 ‘깨달은 사람’ 곧 ‘부처’가 된다네요. 언어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입만 열면 착오가 생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절집에서는 주장자 할! 방! 등. 물건이나 행위, 소리로 진리(법)를 대신하여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 본 마음자리를 보는 그 사람이 우주의 주인공이고,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의 존재가 되는 것이라지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45년간을 거리에서 설법을 하고도 ‘나는 한 마디도 설한 바가 없다’고 말씀했다는 것이지요. 석가모니 자신이 말한 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니까 달을 직접 보라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자신은 자장면에 대해서 45년 동안 여러 가지를 설명했는데 직접 먹고 맛을 보는 것은 각자 할 일이라는 것이지요. 즉 본질, 본체를 보라는 것이지요. 처방전, 뗏목, 이정표는 방편에 불과하다는 뜻이겠지요.

이 본 마음자리인 9식은 청정식(淸淨識), 무구식(無垢識), 이구식(離垢識), 백정식(白淨識) 등으로 의역되지요. 불성. 진여. 자성. 본성. 양심. 일심. 영혼. 본마음 자리. 본래면목. 본지풍광. 영원한 생명. 아미타. 하느님. 알라. 신 등등으로 불리는 마음자리인 것이지요. ‘나’라는 자신이 상황에 따라 아버지, 남편, 여보, 선생님, 고객, 승객, 손님, 이모부, 아저씨... 등등으로 불리우 듯이 말이지요(연재물 31회).

슬프지만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다는 위대한 <촛불 시민혁명>을 심법으로 말하면 <한마음 혁명>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들의 한마음을 촛불에 담은 것이니까요. 촛불은 자신을 불태워 주변을 밝혀 주는 것이지요. 민주와 상식, 자유와 평화, 정의와 역사를 지향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촛불에 담은 것이지요. 이 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한마음(일심) 자리이지요.

▲ 그림 박재동 화백(사진출처 : 한겨레신문)

그 마음은 기도하는 마음이지요. 간절히 기도하면 이루어진다지요. 내 안의 세월호식과 박-순실식과 폐습도 태워버려야겠네요. 생활양식이 연구조-학연 혈연 지연-로 얽혀 사는 우리들은 내 안의 박-순실이 매일매일 자라고 있지요. 그러니까 매일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그 기도는 깨어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다시 주저앉게 되겠지요. 그래서 또 다시 역사는 악순환으로 반복되었지요. 우리들은 너무 처절히 경험했지요.

결국은 공부해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기도하는 것은 공부하는 것이지요. 수행하는 것이지요. 수행은 내가 변화하는 것이지요. 현실 역사인식을 견지하려면 공부의 힘이 있어야 한다지요. 진리에 눈 뜨고 진리에 깨어나고, 현실에 눈 뜨고 현실에 깨어날 수 있기 위해서지요. 석가모니 부처님, 예수님, 프란체스코 교황님 등등. 우리는 성현들의 삶에서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잠에서 눈을 뜨면 처음에는 정신이 맑지 못하고 잠시 멍하지요. 세수를 하고 나면 정신이 개운해지지요. 이것이 눈을 뜨고 그 다음에 깨어나는 것이지요. 진리와 현실에 눈을 뜨고 깨어나는 이 ‘철학적인 마인드’가 있어야 투쟁하는 힘이 나오는 것이겠지요. 이 내적 근육이 허약하면 체념, 야유, 냉소로 변질이 되겠지요. 언제나 시류에 편승하고 이익에 따라 적절한 위선적 기회주의자로 살게 되겠지요.

上士 聞道 勤而行之(상사 문도 근이행지)

中士 聞道 若存若亡(중사 문도 약존약망)

下士 聞道 大笑之 (하사 문도 대소지)

상근기의 사람은 도를 들으면 바로 힘써 행하고

중근기의 사람은 도를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고(반신반의)

하근기의 사람은 도를 들으면 크게 웃는다. -老子 41장-

이미 말씀드렸지만 불교 철학을 소개하는 것이 잘못 전달되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네요. 불교라는 종교를 홍보하고 절에 가라는 말로 오해하시면 어쩌나 하고 말이지요. 사실 이런 말씀을 드린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요. 기독교 예수님의 사랑, 불교 석가모니 부처님의 자비, 유교 공자님의 인仁은 말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것이 아닌가요?

우리 민족이 힘이 약해 주체가 무너져서 ‘민족 텍스트’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있지요. 때문에 많은 비생산적 소모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 민족이 불교 국가라면, 이슬람 국가라면, 기독교 국가라면 신경 쓸 일이 아니겠지요. 민족의 정신적 구심체인 주체가 무너진 것이지요(아래 도표 참조). 그래서 신앙 종교 백화점의 나라가 되다 보니 이런 낭비적이고 소모적인 생각과 행동들이 파생되는 것이겠지요.

塵勞逈脫 事非常(진로형탈 사비상)

緊把繩頭 做一場(긴파승두 주일장)

不是一番 寒撤骨(불시일번 한철골)

爭得梅花 撲鼻香(쟁득매화 박비향)

번뇌를 벗어나기란 예삿일이 아닐지니

화두를 꼭 잡고, 한바탕 공부할 지어다.

추위가 한번 뼈에 사무치지 않는다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을 맡으리오. -황벽 희운 선사-

아무튼 나이 들어가면서는 하루에 10분 이상은 꼭 경서를 읽어야 하겠지요. 글자를 보는 공부가 아니고 깨어나는 공부이야지요. 환단고기 속의 천부경, 노자, 장자, 4서 3경, 반야심경, 금강경, 바이블 등등. 그렇지 않으면 인간 쓰레기화 된다고 하지요. 제 말이 아니고 옛 성현들의 말씀 속에 있는 메시지들이지요. 지금 이 땅에 나이들은 보통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런 경직된 화석들이 번득이네요.

어릴 때부터 유대인들처럼 민족 텍스트로 진리 공부를 해 오지 않은 우리들은 늦어도 인생 60부터는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도(진리 법) 공부에 전념해야 하겠지요. 인생 60부터는 진리 공부가 주업 본업이 되어야 한다지요. 그렇다고 먹고 사는 일을 팽개치라는 것은 아니지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지요. 또한 늦어도 인생 60부터는 생일이 되면 ‘나잇값을 하고 있는가?’ 사회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이 땅의 민주와 상식, 정의와 역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그 동안 오로지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아왔던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질문해야 하겠네요. 그렇지 않으면 일생을 자기 생각에 속으며 꿈속을 헤메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인생살이로 마친다고 하지요. 몸으로는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일과 마찬가지로 정신에는 이런 진리 양식을 먹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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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도표를 참고해 보시지요. 나라와 민족이 힘이 없고 주체가 무너지면 상식과 철학이 부재하게 되지요. 더욱이 분단 민족모순을 겪고 있지요. 그 결과는 나라와 민족이 길을 잃고 헤매겠지요. 사람들이 어디에 가치와 관심을 두고 사는지, 사회가 어떤 혼란상에 머무는지를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현주소를 알 수 있지요. 세월호 참사, 박-순실 사건 등등. 우리 사회 전반을 슬며시 보기만 해도 여실히 알 수 있지요.

신앙생활은 각 개인이 선택하고 알아서 할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라도 민족 텍스트를 찾아 공부하고, 민족의 정체와 주체에 대해 정립을 시켜 나아가야겠네요. 우리 민족, 국민들이 ‘한 마음인 영혼’을 알고 ‘한 마음으로 기도’할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영혼을 모르는 민족, 기도할 줄 모르는 민족! 너무 슬프지요.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서는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지요. 민족 주체가 무너졌음에 대한 통렬한 자각의 말씀이네요.

“조선에는 불교가 들어오면 조선의 불교가 아니 되고 불교의 조선이 되고, 유교가 들어오면 조선의 유교가 아니 되고 유교의 조선이 되고, 기독교가 들어오면 조선의 기독교가 아니 되고 어찌 기독교의 조선이 되는가?”

당신은 한민족, 한국인으로서 정체와 주체가 무엇인지 알고 계신가요? 석가모니 부처님과 불교 유적지, 예수님과 기독교 유적지 등. 머나먼 외국까지 다니는 성지 순례는 마다하지 않고 우리 민족의 성지 순례는 어디인가요? 외국어로 아파트 이름을 명명하면 집값이 수백만 원씩 뛰는 이 나라가 혼이 비정상은 아닌가요?

아! 이 민족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주    체>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김상학 주주통신원  saram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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