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글은 옛 직장을 찾았을 때, 삶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을 적었습니다.>

 

급래급서(急來急逝:졸지에 오고, 졸지에 가다)

삶은 오고가는 것.

망설이거나 지체하지 말고

오려거든 졸지에 오고

가려거든 졸지에 가라.

예령과 기다림이 길어지면

맥 빠지고 애가 터져

반가움과 기쁨은 감소하고

서운함과 미움은 커지더라.

▲ 출처 : 한겨레,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반가운 사람도 자주 오면 귀찮고

오매불망 기다렸어도 떠나니 더 좋더라.

졸지에 찾아오면 반가움이 한량없고

만남의 즐거움도 배가되더라.

졸지에 가면 서운함이 좀 있어도

떠남의 기쁨은 더욱 커지더라.

 

누가 기다림을 아름답다 했는가?

설레는 기다림은 잠시뿐이고

애 타고 속 터지고 지치더라.

오려면 즉시 오고 가려면 즉시 가라.

언제 오나 기다리다 목 빠지고

언제 가나 걱정하다 짜증난다.

오가는 기다림은 짧을수록 좋더라.

 

필연도 있고 우연도 있다지만

필연과 우연이 어찌 딱 구분되겠는가?

우연이 필연이 되고 필연이 우연이 되겠지.

우연히 만났다 우연히 헤어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고 인생이 아니겠는가?

필연만 있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겠는가?

필연보다 우연이 너와 나는 물론

우리 모두에게 좋더라.

 

죽음 중에 최악의 죽음은

오랜 병치레 후의 죽음이고

죽은 중에 최상의 죽음은

급사(急死)나 객사(客死)더라.

곱게 잠든 후 아침에 깨어보니

졸지에 저승으로 편안히 가버렸다면

하늘아래 이보다 큰 은총이 어디 있겠는가?

山野川海 떠돌다가 어딘지도 모른 타지에서

황망하게 자연의 품속으로 떠나갔다면

이 또한 천지의 축복이 아니겠는가?

 

물러가려면 즉시 물러가야지

갈까 말까 머뭇거리고 이리저리 재지마라.

첫 만남과 첫인상도 중하지만

떠남과 끝 인상이 더 중하더라.

떠난 때 지저분하고 추하면

끈끈했던 정이 축축한 똥이 되더라.

좋았던 첫인상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못된 끝 인상만 두고두고 남더라.

 

머물렀던 직장에 다시 들린다면

생각과 조언과 흔적은 거두고

물질과 봉사와 헌신을 남겨라.

그곳에서 무엇을 바라고 얻지 마라.

있을 때 그만큼 챙기고 받았으면

이젠 조금이라도 줄 줄을 알아라.

그게 전직자와 선배의 도리이다.

그렇게 할 수 없으면 가지마라.

 

떠나려면 완전히 떠나야 한다.

떠났는지 안 떠났는지 엉거주춤 하지마라.

직장을 떠났으면 가급적 다시 찾지 말고

저승으로 갔으면 제사상에도 오지 마라.

떠났으면 그만이지 왜 또 와서 간섭이냐?

이젠 남은 자들과 산자들이 알아서 한다.

 

산자들의 간섭도 지겹고 머리 아픈데

떠난 자들과 죽은 자들까지 찾아와서

가타부타 이래라 저래라 하면 어이 살겠는가?

남은 자들과 산자들을 상대하기도 피곤하니

가능하면 좋은 일로도 찾아가지 마라.

가치는 현재 이곳과 이곳 사람들에게 있지

흘러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에 있지 않다.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주주통신원  tpkkim@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