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경주문학행사

---기사를 쓰다가 두 번이나 진도 3이상의 지진을 맞았다. 더 이상 컴퓨터 앞에 앉기 싫어졌다. 생소한 불안과 상상의 그림에 머리가 복잡했다. 미뤘던 문학관련 기사를 마지막 날에 쓴다. 이 글과 관련된 분들께 무척 미안하다.

 

1. 경주문학 세미나(2016년 9월 10일)

 

제2회 세계한글작가대회를 앞 두고 경주문인협회에서 경주의 문학이 가진 특성에 관한 세미나를 열었다.

경주는 한국문학의 뿌리라 일컫는 향가와 설화의 도시다.

 

시가문학의 출발인 향가와 한국소설문학의 출발인 금오신화가 탄생한 역사성을 간직했다. 단연 한국문학의 본향이라 자부하는 경주의 문인들은 유난히 자부심에 차있다. 경주문인협회는 반세기를 훌쩍 넘는 연혁을 가졌다. 한 때 젊었으나 어느 듯 원로가 되신 문인들이 발제를 맡았다. 1300여 년 전 신라의 찬연한 기록문화와 조선시대까지 맥을 이어온 문학성을 되새기는 뜻 깊은 자리였다. 세미나가 끝난 뒤 회원들의 뒤풀이가 밤 늦도록 이어졌다.

 

막 지진이 나기 사흘 전의 행사였다. 나는 이 날 이유 없는 우울증으로 고약한 심사였다. 세미나 도중 옆자리의 누가 소리 죽여하는 이야기에도 신경이 곤두 서서 함구하라며 역정을 냈다. 사람들의 발소리와 커피잔을 만지는 소리조차 내 귀에는 서슬처럼 날카로웠다. 하물며 원로들의 발제 중 회원들의 무신경이 참 못마땅했다. 참다못해 다가가서 커피를 못 마시게 제지하기도 했다. 이상하게 늦은 밤까지 침울함은 더욱 무거워졌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짙은 안개처럼 짜증이 솟구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평소 쾌활한 내가 회원가입 15년 동안 처음 느낀 극심한 침잠이었다. 그건 아마 동물적 본능의 예지같은 것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틀이 지나 경주는 무서운 지진 공포에 휩싸이고 말았다. 이후 나는 '인간지진계'라는 별칭을 얻으며 진도 2 이하의 지진까지 세밀하고 정확하게 느끼게 되었다. 당연히 수 개월 째 불면으로 오락가락 컨디션이 엉망이다.

 

2. 제2회 세계한글작가대회 개회식(2016년 9월 20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사)세계펜클럽한국본부가 주최한 제2회 세계한글작가대회 개막을 했다.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한글문학, 세계를 가다'라는 주제로 국내외 유명작가와 문인 400명, 한글학자 및 전문가 100명, 시민과 학생 등 총 5000명이 참석한 문학 큰잔치였다. 아직 여진의 공포에 경주가 들떠있는 상황에 미리 예정된 이 큰 행사가 열렸다. 진행을 맡은 김홍신 작가도 주변의 만류에 잠시 경주행을 망설였다는 고백을 했다.

 

꼿꼿이 왔다가 서둘러 떠나는 조윤선 문화체육부장관을 붙잡고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법석을 떨었다. 행사 도중임에도 높은 사람에게 쏠리는 관심을 나는 씁쓸히 바라만 보았다.

이 행사의 말미에 너무도 아연한 장면이 출현했다. 한글문학의 우수한 역사성을 줄기차게 발표하던 무대에 서울백석예술대학 뮤지컬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나타났다. 당연히 우리말글에 관한 뮤지컬이려니 여겼는데 의외의 '레미제라블'을 공연했다. 아주 열정적인 음악과 달리 무대의상을 입은 이는 서너 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검은 티셔츠에 검정바지 차림이었다. 아무리 좋게 봐도 리허설로 보였다. 한글과 우리말은 없이 관객 거의가 다 알아들을 수 없는 뮤지컬의 마지막엔 대형 프랑스국기가 무대를 덮었다. 학생들이 아주 힘차게 날리는 프랑스 삼색 국기를 보며 실소보다 수치감이 들었다.

세계한글문학이 무색한 학생들만의 축제였다. 주제와 관객을 동시에 무시한 괘씸함에 아주 불쾌했다. 경주시와 경상북도에도 훌륭한 뮤지컬 단체들이 있다. 국내외에서 음악을 공부한 실력파들도 상당하다. 그 날 참석한 몇 몇 경주의 성악가와 예술인들을 보며 그들이 느꼈을 소외감과 괴리를 생각했다. 지방에서 개최되는 행사에 지역민들을 배려하는 것도 예의이며 도리다. 행여 무대 위의 자신들을 환호하는 줄 여길까봐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들은 누구의 배경으로 경주에 왔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행사비가 무려 9억여 원에 이르는 그런 기획,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다는 답이 어렵다. 지역의 예술인들은 더더욱 축소되고마는 아량없는 행정들...

   

3. 제36회 청마백일장(2016년 11월 5일)

지진의 공포를 잊을만큼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잔잔했다. 하늘과 강물만으로도 절로 행복해지는 그런 날이었다.

백일장에 참석한 아이들도 심사위원들도 모두 빛나는 가을햇살을 닮아 환했다.

 

불행히도 대상작품이 표절인 것이 드러나 취소되었다. 모든 예술은 모방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창작이란 선인들이 보았던 것과 느낀 것을 내 것으로 승화시키는 또 한 번의 되새김질 같은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밥을 먹지만 밥을 배설하지 않는다. 누구나 보았던 것이 나를 통과하여 재투영될 때 나만의 작품이 탄생될 것이다. 남의 것을 내 것인 양 옮겨오는 일은 도둑이다. 내 것도 중복 사용하면 사기에 가깝다. 그런 나쁜 버릇을 학생들이 고쳐야하는 걸 가르쳐주는 일은 도덕의 정체성에 기반한다.

 

4. 제28회 신라문학대상 시상식 및 경주문인협회 송년식(2016년 12월 17일)

 

경주대명리조트 주피터홀에서 국내 신인등단 상금 1위인 신라문학대상 시상식이 있었다. 식전 행사로 경주국악협회 이장은님의 가야금 연주, 신정민님의 한량무, 이진락 경상북도 도의원님의 아코디언 연주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감성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시부문(상금 6백만원)은 경북 고령의 윤상호님의 '사문진 피아노'가 당선. 소설부문(상금 천만원)은 인천의 이수조님의 '다투'가 당선. 시조부문(5백만원)은 광주광역시 채종국님의 '신문, 그 행간을 읽다'가 당선. 수필부문(5백만원)은 포항의 신정애님의 '풀매'가 당선. 신라문학대상은 한국문인협회 신인 등용문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상금과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시상식이 끝난 다음 경주문인들의 송년식이 흥겹게 이어졌다.

 

 

 

7명이 한 조가 되어 퀴즈와 노래자랑, 장기자랑 등 올해도 푸짐한 상품보다 더 큰 웃음보따리가 연신 터지며 지진의 공포쯤은 흔적 없이 잊었다. 평균 연령이 중년이다보니 '경주문인협회의 노래'의 곡조를 잊어버려 쩔쩔 매기도 했다. 해마다 사람은 늙어도 시간은 도무지 늙을 줄 모르듯 문학의 열정 또한 그러하리라. 참으로 낯선 정국을 맞아 놀라고 또 놀란 천지에 촛불켜는 긴 겨울밤이 지나면, 우리 새움처럼 연하고 고운 인사를 건네며 살까.

편집: 이미진 편집위원 

이미진 편집위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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