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팔삭둥이로 태어났다. 갑자기 너무 조그만 아이가 태어나서 엄마는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역시나 어려서부터 걸핏하면 체하고, 열나고, 피부병에, 병을 달고 살았다. 잘 먹지도 못하고 늘 아프다 보니 성장도 더뎌, 뼈만 남은 깡마른 체구에 키도 작아 별명이 '꼬맹이'였다. 6학년 때 6학년 중에서 가장 작은 순위로 2위를 했으니... 중학교 3학년 이후로 키가 크면서 좀 건강해졌지만 아직도 골골대는 것은 여전하다. 감기가 유행하면 식구 중에서 가장 먼저 걸리고 가장 늦게 낫는다. 지금도 감기와 투쟁 중이다. 한 달 전에 감기에 걸렸는데 날 듯 날 듯 하면서도 완전히 떨어지질 않는다. 몸이 좀 나았다 싶으면 광화문광장으로 달려가서 그런가?

이렇게 아플 때면 늘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아들이다.

아들은 내가 아프면 극진히 간호를 해준다. 우리집 치료법은 '되도록 병원에 가지 않고 약도 먹지 않는다.'이다 아프면 ‘물만 먹고 잔다.’를 소신으로 갖고 산다. 열이 펄펄 나면 찬물 수건을 머리에 해준다. 울 아들은 잦은 열감기에 시달리는 나에게 정말 찬물 수건을 정성스럽게 해주었다. 딸은 아빠를 닮아 좀 무심한 편이라서 “엄마 많이 아파?” “응, 괜찮아. 자고 나면 나아질 거야.” 그러면 진짜 그러는 줄 알고 가끔 들여다 볼 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방해하지 않고 푹 자게 해주는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이야’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솔직히 그렇게 가만히 쉬게 놔두는 것이 나는 좋다. 하지만 아들은 '엄마 아프지? 내가 뭐 해줄까? 수건 새로 갈아다 줄까?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물 따뜻하게 데워다 줄까? 죽 데워줄까' 하며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린다. 어떻게 하면 엄마가 빨리 나을까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아이 같다.

나에게 유난히 다정다감한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주변사람들은 '걱정된다.'며 이런 말을 해준다.

“3대 미친 여자가 있는데 며느리를 딸로 생각하는 여자, 사위를 아들로 생각하는 여자, 며느리의 남편을 아들로 생각하는 여자라네.” 라고..

“아들 촌수라는 말도 있는데 아들을 낳으면 1촌이요, 사춘기 때는 사촌이요, 애인이 생기면 8촌이요, 장가가면 사돈이요, 자기 아이가 생기면 동포요, 해외로 이민가면 해외동포래. ” 라고.

장가가면 다 그렇게 엄마와는 멀어진다는데 울 아들도 그럴까? 아직은 엄마와 전화 통화나 카톡으로 말하면 답답한 속이 다 풀린다면서, 미주알고주알 재미난 이야기부터 속상한 이야기까지 다 털어놓는 아들인데 이렇게 예쁘게 굴다가 장가가서 저리 되면 나는 섭해서 어쩌나? 에이 설마~ 울 아들만은 그러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면 오만이겠지?

아들이 그리울 때면 가끔 꺼내 보는 편지가 있다. 2009년 캐나다에서 어버이날에 아들이 보내준 편지인데 한번 붙여본다.

엄마. 어버이날 잘 지냈어?

어제 보내려다가 까먹고 오늘 메일 보내네. 내가 한국에 있었더라면 선물도 해주고 뭐라도 해줄 텐데... 내가 한국가면 '엄마 생일+어버이날' 선물 해줄게. 나도 지금쯤 한국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이건 내가 엄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엄마 건강을 위해 말해줄 게 있어.

한국음식이 너무 짜다보니까 한국인 거의 다 나트륨을 하루 섭취량의 2배 이상을 섭취한데.. 그러니까 엄마 음식 먹을 때 소금을 더 넣지 말고 뭐 먹을 때도 소금을 조금 쓰고..

엄마 회사에 있을 땐 시켜먹을 때가 많으니까.. 칼국수 한그릇에 2900mg 하루권장량(2000mg미만) 보다 많으니까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서 먹을 때에는 소금 쓰지 말고 먹어..

처음에는 싱겁게 해서 먹는 게 힘들데.. 그래도 노력해야해. 근데 우리 홈스테이 아저씨는 아예 소금을 쓰지도 않고 먹던데.. 하루권장량에 맞추려고.. 외식 나가서 사먹을 때도 소금 집어넣지 말라고 하고..

하루에 물 2L 마시면 건강에 엄청 좋데.. 물을 많이 안마시면 노화, 비만, 피로, 변비 등 안 좋은 게 많데... 그러니까 물도 하루 2L 마시려고 하고.

칼슘 섭취도 해야 한데. 엄마는 1200mg 칼슘 섭취를 해야 해. 칼슘 섭취를 잘 못하면 키가 줄어들고 뼈가 잘 부러질 수 있으니까 우유 한 컵(250ml)에 하루 권장량인 30%가 들어있으니까 엄마도 하루 최소 500ml 우유를 마셔야 되는 거야.. 그게 좀 힘들면 엄마도 나처럼 칼슘제를 사서 아침 하나 저녁 하나 해서 먹어.

그리고 비타민C 가 들어있는 오렌지주스도 하루 250ml는 마셔야하고... 그리고 비타민D가 충분하려면 햇빛도 쏘여야하고.... 그리고 또 중요한 건 수면. 잠을 충분히 자야해..

엄마 사랑하고.. 내가 말로 엄마한테 이렇게 하라고 할 수 밖에 없어서 미안해. 그리고 아빠한테도 이 정보 알려주고 내가 말하는 대로 잘 지키면 엄마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거야.. 

짜식! 편지에 친구에게 하듯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이야기가 거의 다네. 특이한 그램수와 밀리수 외우기는 여전하고.... ^^* 근데 어버이날인데 순 엄마 엄마 소리만 한다. 이 편지를 본 남편이 이랬다.

"당신 좋겠어. 엄마 이야기가 100번 나오는데 아빠 이야기는 딱 한번이네. 그리고 당신보고 생일축하한데... 어제가 내 생일인데...." 

아들은 아빠에 대한 애정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물론 아빠를 좋아하고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고까지 말하지만 아빠와 대화하는 것을 좀 불편해하고, 항상 나를 징검다리 삼아 말하고 싶어한다. 일에 치인 한국의 아빠들과 아이들 관계가 다 그렇다고 하는데...  다행히 아들은 딸과 정말 사이가 좋다.

딸은 가끔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욱이는 어려서 내가 반절은 키웠어. 맨날 코 닦아 주면서... 그래서 더 애틋하고 아직까지도 내가 뭔가를 막 해줘야만 될 것 같고 그래."

이런 누나의 마음을 아들은 잘 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서로 비밀이 없이 다 털어놓고 산다. 만나면 둘이 속닥속닥 미용실도 같이 다니고 운동도 같이 다닌다.

여행을 가도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뭔 할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둘이 웃으면서 이야기가 끝이 나질 않는다.

▲ 2009년 캐나다에서 10학년을 마치고 왔다. 여름휴가 때 두 아이 모습.

집에서도 둘이 있으면 뭘 하는지... 낄낄깔깔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보통 남자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재수 없는 사람이 자기 누나라고 하는데.. 정말 신기한 아이들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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