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의 <에브리맨>

▲ 필립로스의 <에브리맨>

나도 이제 마냥 어린 애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 건 결혼식 축의금을 내가 벌어 냈을 때였고 좀 더 나이가 들면 장례식이 마냥 낯선 곳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였다. 장례식을 떠올리는 죽음이란 우리가 체득하기엔 너무 추상적이어서 실제 죽음과 마주할 때 무엇을 느끼고 어떤 변화를 가져 오게 되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필립 로스의 소설 <에브리맨>은 우리의 무의식에서 죽음이란 단어를 끌어올려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부터 죽음의 그림자에 시달렸던 주인공 ‘그’를 통해서... 소설은 주인공의 장례식에서 시작한다. 죽음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현재 장례식에 이르기까지의 일생을 보여준다. 그의 일생은 죽음을 마주한 공포, 스스로를 외로움으로 몰아넣은 과오들로 가득 차 있다.

죽음의 그림자는 어린 시절부터 그의 주위를 맴돈다. 어린 시절 같은 병실 침대에 누워 있던 한 또래 소년의 죽음을 시작으로 가족과 함께 피서를 즐기던 바다에 떠내려 온 시신, 부모님의 죽음 그리고 회사 동료들의 죽음까지. 죽음은 그를 항상 따라다녔고 그도 죽음을 항상 의식했다. 과거 그의 삼촌과 아버지를 괴롭혔던 복막염으로 더욱 선명해지는 죽음. 이 선명한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며 치렀던 몇 차례의 수술과 노쇠한 육체로 그의 노년생활은 순탄치 않다. 또한 그는 평범한 결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세 번 이혼을 한다. 이혼을 하여 가정을 깬 수백만의 미국 남자 중 하나다. 한 순간의 성욕에 빠져 낯선 여성에게 영원의 다이아몬드를 선물하는 어리석음, 그로 인한 가정의 해체, 버려진 자식들과 그들로부터의 소외, 약해지는 남성성, 건강한 형 하위에 대한 질투로 뒤섞인 그의 노년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소리 없는 발악으로 가득 차 있다.

주인공은 우리가 으레 기대하는 깨달음, 반성, 해탈 따위는 보여주지 않는다. 평범한 인간 ‘에브리맨’은 죽음 앞에서 그리고 외로움 한 가운데서 느끼는 감정들을 여과 없이 분출할 뿐이다.

'이 사악한 새끼들! 삐치기만 잘하는 씨발놈들! 할 줄 아는 게 비난밖에 없는 이 조그만 똥 덩어리들! 내가 달랐고, 일을 다르게 처리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그는 자문해보았다. 지금보다 덜 쓸쓸할까?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이게 내가 한 짓이야! 나는 일흔하나야. 나는 이런 인간이 된 거야. 이게 내가 여기 오기까지 한 일이고, 더 할 말은 없어!‘

그는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을 무력하게 견디면서 다시 한 번 수술대에 몸을 맡긴다. 마지막 수술대에 오르는 순간에는 젊었던 날의 자신을 회고한다. 젊음과 삶이 얼마나 찬란한 것이었던가! 하지만 죽음을 마주한 이 순간 부질없는 되새김질일 뿐이다.

'거친 바다 저 멀리 100미터나 나간 곳에서 대서양의 큰 파도를 타고 해변까지 단숨에 들어오던, 늘씬한 작은 어뢰처럼 상처 하나 없는 몸을 지닌 그 소년의 활력은 어떤 것으로도 꺼버릴 수 없었다. 아, 그 거침없음이여, 짠물과 살을 태우는 태양의 냄새여! 모든 곳을 뚫고 들어가던 한낮의 빛이여. 그는 생각했다. 여름의 매일매일 살아 있는 바다에서 타오르던 그 빛이여. 그것은 눈에 담을 수 있는, 엄청나게 크고 귀중한 보물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더 이상 지긋지긋한 수술이 필요 없는 곳을 향해 눈을 감는다. 죽음을 향해 가는 그가 회상하는 어린 시절은 꺼져 가는 그의 생명과는 다르게 너무나 생생하고, 눈부시다. 그래서 더욱 마음을 울린다.

필립 로스는 추상적인 죽음을 주인공의 인생을 통해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바꾸어 버린다. 책의 제목인 Everyman은 ’평범한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그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보석상의 이름이다. 이 보석상의 고객들은 불멸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를 끼고자 찾아오지만 언젠가 흙 한줌이 되어 버릴 평범한 인간들이었다. 불멸할 것만 같은 ’나‘라는 존재가 한 줌의 흙이 되어야 할 때 초인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인간 즉, Everyman이 겪어야 했던 것을 우리는 주인공 ’그‘의 일생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 ‘그’는 끝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앞서 표현했듯 그는 이혼을 하여 가정을 깬 미국 남자 수백만 명 중 하나인 everyman인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비로소 그의 인생에 ‘나’를 넣어 상상할 수 있다. 필립로스의 <에브리맨>은 우리에게 모범적인 정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저 주인공의 인생을 통해 죽음 앞에 마주한 인간이 어떤 감정들에 놓이는지 보여주고 우리가 훗날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현재를 축적해나가고 있는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할 뿐이다.

 

편집: 이다혜 객원편집위원

한주해 대학생 기자  wngogk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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