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광기가 더해질수록 예술은 견고해진다.

‘천막 안에는 천막 밖에 꺼진 밝은 세상이 있다네.’ - 연극 ‘로풍찬 유랑극장’

어지럽혀진 시국 속에서 연일 계속되는 시위는 축제와 같았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든 촛불은 문득 연극 ‘로풍찬 유랑극장(극단 달나라동백꽃)’을 연상시켰다. 극 속의 유랑극단 단원들은 죽은 시체들이 길거리에 늘어져있는 전쟁통에도 마을사람들의 침세례 받으면서까지 공연하려고 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로미오와 줄리엣’을 일제시대 배경으로 번안한 ‘노민호와 주인애’ 공연에서는 결국 그들을 괴롭히고 침뱉던 사람들도 함께 즐기게 되는데, 그 흥겨운 전쟁터의 잔치판에서 오늘날의 시국을 볼 수 있었다.

비극적 현실을 예술로 어떻게 승화시키는가는 모두에게 평등한 문제이다. 이 극은 비극을 예술로 씻어내라고 얘기하지만, 또 한편 비극을 더 기억하고 아파하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비극을 어떻게 위로하느냐의 차이만 존재할 뿐, 이들 공동의 목적은 어떠한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의 전달일 것이다. 애초에 이 모든 이야기들의 탄생에는 ‘예술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러한 전제가 있기에 지난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도 수많은 명작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연극 '푸르른 날에' 공연 사진. 출처=남산예술센터

그런데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오늘날, 예술을 바라보는 한 곳에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존재한다. 대중적으로 이름이 잘 알려져 있는 연예인들의 이름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연극인들의 이름까지 정부에 비판적 진보 성향을 띤 문화예술인들의 목록인 것이다. 지난 9일 열린 청문회에서는 너무나 낯익은 연출가와 공연의 이름이 등장했다. 고선웅 연출가의 ’푸르른 날에‘.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저리는 이 연극은 내가 이제껏 본 연극 중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작품이었다. 눈과 코가 얼얼할 정도로 슬프고 그만큼 아름다운 명작이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로 5‧18 그날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교과서 대신 푸르른 날에를 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관객들에게 인정받는 공연을 만든 연출가는 블랙리스트에 속해 있었다. 도덕적 범위를 벗어난 것도, 역사를 왜곡한 것도 아닌 그저 그날의 현실을 담은 공연일 뿐이었다. 또한 그를 블랙리스트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한 당시 문체부 1차관은 몇 달 뒤 옷을 벗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 고선웅 연출가는 한 인터뷰에서 블랙리스트에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며 블랙리스트는 ’바보 같은 얘기‘라 말하였다. 예술의 본질은 비틀기고 뒤집기고 다시 생각하기인데, 모두가 획일화 된 생각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그저 편가르기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 연극 '개구리' 공연 포스터. 출처=국립극단

블랙리스트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연극 ‘개구리’의 박근형 작가는 권력을 가진 쪽을 신랄히 풍자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청와대는 ‘빨갱이 연극’이라고 칭했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좌파 예술인들이 득세하는 꼴을 왜 지켜보고 있느냐. 문화‧예술계 공공성 강화를 위해 진보 예술인들을 말려 죽여야 한다.’ 고 말하며 블랙리스트 작성을 촉구했다고 한다. 박근형 작가에 대한 정부 지원금 중단 조치와 그에게 지원금을 허락했던 문화부 예술정책국장의 승진 탈락은 그에 대한 보복이라 할 수있다. 여기서 김 전 실장이 사용한 문화‧예술의 공공성이라는 명칭은 얼토당토 않는 것이다. 이들은 빨갱이도 좌파도 아닌 그냥 예술인이다. 어떠한 대가나 많은 보수를 바라지 않고 그들의 각자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일 뿐이다. 관객들 또한 바보가 아니기에 예술을 예술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빨갱이, 좌파 등 이러한 극단적인 표현들은 이를 잘 알지만 숨겨야 하기에 쓰는 그들의 변명섞인 발언이 아닐까.

▲ 2013년 처음 만난 '푸르른 날에'.

2011년~2015년 초연부터 마지막 공연까지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 되었다. 출처=정세영

‘푸르른 날에’를 보러가는 날에는 항상 날씨가 맑았다. 푸르른 5월의 하늘이었다. 아담한 언덕을 넘어 들어가면 새하얀 벽의 남산예술센터가 ‘푸르른 날에’ 공연 천막을 두르고 늘 그 곳에 있었다. 초연부터 보지는 못했지만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5월이 되면 습관처럼 혼자서, 친구와, 가족을 데리고 보러가던 연극이었다. 손수건을 꼭 쥐고 두 번, 세 번 보러 가던 유일한 연극이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줄곧 한 곳에서 시연된 푸르른 날에는 재작년을 끝으로 마지막 무대를 마쳤다. 매년 5월 ‘푸르른 날에’가 다시 하얀 극장에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나와 같은 관객은 수천명도 더 될 것이다.

이렇게 관람하는 관객들이 있고 국민들이 있는 한 역사와 비극을 직시하는 예술은 계속될 것이다. Black, 암전. 그 옛날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그들은 암전 속에서 빛을 비추기 위해 진실을 외치며 계속해서 탄생할 것이다. 비극은 예술에 살을 붙여줄 뿐이다. 비극의 광기가 더해질수록 예술은 더욱 더 견고해 질 것이다

▶추천 Line-Up
연극 ‘보도지침’

▲ 연극 '보도지침' 초연 공연 사진. 출처=벨라뮤즈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가 오는 4월 22일부터 6월 11일까지 TOM 2관에서 연극 ‘보도지침’의 재공연을 올린다. 1986년 전두환 정권 당시의 실제 ‘보도지침’ 사건을 다루었다.
 

*보도지침 : 제5공화국시절 정부 당국이 언론에 대해 정치‧경제‧사회문제들을 어떤 식으로 보도하라고 내리는 지침.

 

편집: 이다혜 객원편집위원

정세영 대학생기자  youjs12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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