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송의 전기를 쓰는 것인가?

우리가 나라를 잃고 일본의 압박에서 시달리고 있을 때, 잃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나라 안팎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간도지방은 우리 민족이 가장 많이 이주하여 살고 있던 곳이었는데, 이 간도에서 우리 동포들을 위하여 많은 지도자들이 활동을 하였다. 그 중에서 우리 동포들을 위해서 가장 동분서주하였던 분이 바로 이 글의 주인공인 일송 김동삼 선생님이다.

젊은 시절에는 고향에서 협동학교를 세웠다. 어린 학생들을 가르쳐야 우리가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시고 부지런히 학생들을 가르치셨다. 그러다 일본이 나라를 강탈하는 모습을 보고 그냥 있을 수가 없다는 각오로 만주로 건너갔다.

만주에 가서는 우리 동포들이 마적단과 중국 사람들의 천대와 푸대접을 막아내기 위해서 애를 썼으며, 우리 민족에게 중국말을 가르쳐 그들과 의사를 소통하게 하는 일부터 시작하여, 농장을 만들어서 독립군의 터전을 만들기도 하고 신흥무관학교를 만들어서 독립군 지도자들을 양성하여 만주 독립운동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그는 오직 만주에 사는 우리 동포들을 한데 모아서 일본을 물리치는 일에 앞장 섰다. 한때 상해 임시정부의 조직에 참여하기도 하였지만, 만주의 독립운동을 이끌기 위해서 만주로 돌아가서 만주의 여러 독립 단체들을 한데 모아 통군부, 대한통의부, 대한통군부, 정의부, 민족유일당 등을 조직하여 대표로 활동을 하면서 독립운동에 앞장 섰다. 일본에 맞서기 위해서는 동포들이 힘을 합쳐 단체를 조직하여 일본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일본군에게 붙잡혀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동지들을 팔아 먹을 수가 없다고 끝까지 동지들을 배반하지 않았고,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날까지 일본의 비인도적인 처우에 저항하다가 독방에서 1937년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러하다

"나라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하느냐. 내가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 보리라."

나라를 위해서 죽은 다음까지도 조국 광복을 지켜보겠다는 마음을 우리는 무엇으로 뒤따를 수 있겠는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엄중한 시기에 지도자가 마땅히 해야할 일은 무엇이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연재를 시작한다.

 

▲ 김동삼의 묘, 효창공원, 사적 제330호,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사진출처 : 다음 백과사전)

글 출처 : ebook 일송정 푸른솔은 1(저자: (공)저 김선태 / 원글 주소: https://books.google.co.kr/books?id=6pNBAwAAQBAJ&pg=PT1&dq=%EC%9D%BC%EC%86%A1%EC%A0%95+%ED%91%B8%EB%A5%B8+%EC%86%94%EC%9D%80+1&hl=ko&sa=X&ved=0ahUKEwjZ1tXcwfjRAhXBUrwKHY_CCzIQ6AEIGjAA#v=onepage&q=%EC%9D%BC%EC%86%A1%EC%A0%95%20%ED%91%B8%EB%A5%B8%20%EC%86%94%EC%9D%80%201&f=false)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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