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난 생물 교사가 되고 싶었다. 시골 면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군 소재지에 있는 중학교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매시간 과목이 달라지고 선생님이 바뀌는데 유독 생물시간이 제일 재미있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궁벽한 산촌도, 드넓은 들판도 아닌 전형적인 시골 농촌이다. 우리 마을 앞에는 오래된 방죽이 하나 있고, 뒤로는 나지막한 솔밭이 자리한다. 조금 더 뒤쪽으로는 좌우로 야트막한 산이 솟아 있는데 여기서부터 바로 반도 변산(邊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산촌과 평야의 중간 지점, 논과 밭이 적당히 혼재하는 농촌 마을이다. 산과 들에 나가면 풀과 나무를 다양하게 만날 수 있고, 방죽에 가면 또한 여러 가지 습지생물도 만날 수 있다. 그야말로 집 밖은 자연학습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 땐 식물도감에 나오는 정식 이름은 몰랐지만 웬만한 식물들은 낯익어 그의 이름을 불러줄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도청 소재지에 있는 고등학교 때에도 생물 시간이 유독 기다려졌다. 안타깝게 수도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다닐 땐 생물학이 아니라 국어교육학을 전공했다.

 

국명의 유래

▲ 눈 속에 개화한 천마산 앉은부채

입춘이 낼 모래, 봄을 재촉하는 서설이 내린다. 벌써부터 야생화 사이트엔 개화한 복수초가 올라온다. 멀지 않아 변산바람꽃을 필두로 나도바람꽃, 꿩의바람꽃도 피고, 앉은부채도 쌓인 눈 녹여 언 땅을 뚫고 고개를 내밀겠다. 천남성과 집안에 속하는 ‘앉은부채’란 식물명은 정태현 외3 인의 <조선식물향명집(1937)>에 처음 사용되었다. 이런 국명의 유래에 대해선 정설이 없다. ‘앉은’은 이른 봄 언 땅을 녹이고 나오는 꽃의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부채’는 ‘부처’의 변한 말, 그 어원은 산스크리트 어 ‘buddha’에 있다. 인도로부터 불교와 함께 들어온 이 말을 중국에서는 ‘佛體’로 표기한다. 이 말을 조선 초기 문헌 <석보상절>에서는 ‘부텨’로 쓴다. 이것이 다시 ‘부쳐’로 구개음화하고, 현대에 이르러 ‘부쳐>부처’로 단모음화되었다가 다시 ‘부처>부채’로 발음하기 쉽게 변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땅바닥에 딱 달라붙어 키가 작은 불꽃 모양의 포에 둘러싸여 있는 육수꽃차례의 모양이 마치 배광(背光)에 둘러싸여 가부좌하고 앉아 있는 부처의 모습과 흡사한 데서 ‘앉은부채’란 국명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북한에서는 산부채풀, 삿부채라고 한다. 중국명은 취숭(臭菘)이라하는데 ‘냄새나는 배추’란 뜻이다. 일본에서는 후리가나로 ざぜんそう(자젠소우)라 하고, 한자로 ‘(座禪草(좌선초)’라고 쓴다. 이걸 보면 국명 ‘앉은부채’는 필시 일본명 ‘座禪草(좌선초)’와 맞닿아 있다.

▲ 불염포에 싸인 천마산 앉은부채

학명의 유래와 뜻

앉은부채의 국제적 공식명인 학명은 Symplocarpus renifolius Schott ex Tzvelev이다. 속명 ‘Symplocarpus’는 ‘결합’을 뜻하는 그리스어 ‘Symploce’와 ‘열매’를 의미하는 ‘carpos’의 합성어로 씨방이 집합된 열매에 붙어 있다는 뜻으로 천남성과 앉은부채속의 일반적 특징을 밝힌 것이다. 종소명 ‘renifolius’ 는 ‘콩팥 모양의 잎이 달린’이라 뜻이다. 잎 모양은 콩팥 모양이고, 열매는 씨방이 집합하여 많이 달려 있는 특징을 살려 오스트리아 식물학자 ‘Heinrich Wilhelm Schott’이 처음 제안하였으나 정당하게 공표되지 않아 뒤에 러시아 식물학자 ‘Nikolai Nikolaievich, Tzvelev’에 의해 정당 공표한 것이다.

 

앉은부채의 분포와 생태

▲ 꽃이 피고 잎이 돋는 천마산 앉은부채

앉은부채는 세계적으로 북아메리카와 사할린, 아무르, 우수리 등의 시베리아 동부와 중국, 한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 지역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역에 분포하지만 주로 경기, 강원 등 중부 이북의 산골짜기 그늘진 곳에서 주로 자란다. 영명은 ‘skunk cabbage’라고 하는데 독성이 강하고 식물체에서 나쁜 냄새가 나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앉은부채는 나쁜 냄새가 나지 않으므로 이와는 다른 종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앉은부채를 내가 처음 대면한 곳은 남양주시 천마산 골짜기에서다. 식물생태학자들에 의하면 복수초처럼 앉은부채도 지난해 여름철 긴 뿌리에 축적해 놓은 녹말 성분을 태워서 스스로 열을 낸다고 한다. 3월 초순경이면 너도바람꽃과 앞다투어 개화한다. 꽃이 필 무렵 계곡엔 잔설이 쌓여 있고, 계류엔 아직 얼음이 남아 있지만 계곡 근처를 살펴보면 낙엽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앉은부채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앉은부채의 특이한 꽃 구조

앉은부채는 이른 봄에 피는 복수초나 꿩의바람꽃처럼 화려하지 않다. 처음 보았을 때 도무지 꽃답지 않아 뭐 이런 꽃도 다 있을까 싶었다. 천남성과에 속하는 앉은부채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원줄기는 없고 땅속줄기에서 긴 끈 모양의 수염뿌리를 내어 사방으로 뻗는다. 잎은 콩팥 모양 또는 넓은 심장 모양으로 길이와 폭이 30~40cm나 될 정도로 넓적하고 잎자루가 길다. 꽃은 흔히 보는 국화과나 장미과 식물과는 달리 꽃의 형태가 참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꽃을 감싸고 있는 기관을 포(苞)라고 한다. 천남성과 식물은 이게 마치 ‘부처님을 둘러싼 불꽃’처럼 그 모양이 특이하여 불염포(佛焰苞)라 한다. 꽃차례 또한 특이하다. 육질(肉質)의 꽃대 축에 꽃자루가 없는 100여 개의 작은 꽃들이 모여 둥근 모양을 이루는데 이른바 육수꽃차례[肉穗花序]이다. 그런데 벌 나비가 미동도 하지 않는 이른 봄에 피는 앉은부채는 도대체 어떻게 수분하여 종족을 번식시킬까? 몸에서 열을 발산하여 주변의 눈을 녹이고, 육수꽃차례를 감싸고 있는 불염포 내부의 온도를 무려 5~10도까지 올리는 나름의 전략이 있단다. 겨우내 굶주린 벌레들을 안방처럼 따뜻한 불염포 안으로 유인하여 꽃가루를 제공함으로써 수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악조건 속에서 개화하기 때문에 실제 결실률은 10% 이하로 매우 낮아서 장과 열매를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 불염포에 싸인 천마산앉은부채 육수화서

 

앉은부채의 쓰임새

다 자란 잎은 손바닥보다 크고 연해서 마치 배춧잎 같다. 얼핏 보기엔 산나물거리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지만 유독식물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봄철 연한 잎을 뜯어 말려 두었다가 산나물로 먹는다고 하지만 독성이 있으므로 날로 먹을 수는 없다. 한방에서는 지상부를 취숭(臭菘)이라 하는데 맹독성인 뿌리줄기와 함께 구토를 가라앉히거나 오줌을 잘 나오게 하는 데 쓴다고 한다. 특히 노랑앉은부채는 원예적 가치가 높아 자생지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 잎이 다 자란 남한산성 앉은부채

 

사라져 가는 노랑앉은부채

▲ 눈 속에 개화한 천마산 노랑앉은부채

유독 천마산 그 자리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노랑앉은부채가 있다.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와 주위의 잔설을 녹이고 피어 있는 노랑앉은부채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이 절로 나게 한다. 샛노란 불염포에 싸인 앙증맞은 꽃은 하얀 눈빛과 대조를 이루어 더욱 돋보인다. 뒤쪽에서 본다면 마치 한 마리 병아리가 눈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듯하다고나 할까. 앉은부채의 불염포는 녹색, 갈색, 진한 자주색 등 다양하지만 노란색을 띠는 것은 매우 희귀하다. 원예식물로서의 관상가치가 높아 불법 채취의 대상이 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곳엔 여러 개체가 자생하고 있어서 천마산에 가면 꼭 눈맞춤을 하고 지났는데 한해가 다르게 사라져 가더니 어느새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전에는 작은 철망을 씌워 보호했는데 작년에 갔더니 아예 자생지 일대에 펜스를 쳐서 보호하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노랑앉은부채를 보호해야겠다는 애호가들의 관심이 당국에 전해졌는지 다행스런 일이다. 노랑앉은부채는 특수한 환경 요인에 의해 나타난 앉은부채의 개체변이형이라서 새로운 변종이나 품종으로 기재되지 않았다. 다른 장소로 옮겼을 때는 그 특수형질이 남아 있으리란 보장이 없는데도 인간의 이기심에 함부로 채취되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 이른 봄 개화한 천마산 노랑앉은부채

 

생태적 습성이 전혀 다른 애기앉은부채

▲ 눈 속에 움트는 선자령 애기앉은부채 새싹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에 가면 잔설 속에서 움터 나오는 애기앉은부채를 만나볼 수 있다. 동면하고 나온 굶주린 곰이 뜯어먹는다고 하여 이것을 ‘곰풀, 곰치’라고도 한다. ‘애기나리, 애기괭이밥, 애기도라지, 애기괭이눈…’에서처럼 식물명에 ‘애기-’란 말이 앞에 붙으면 본래의 것보다 ‘애기처럼 작고 귀엽다’는 뜻이 더해진다. 애기앉은부채도 마찬가지다. 내가 애기앉은부채를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초․중등학교 교사를 위한 자생식물 워크숍 과정을 하면서 강원도 평창 선자령 국사성황당 오른쪽 계곡에서다. 자줏빛 불염포에 싸인 육수꽃차례는 키가 고작 3~5cm 정도밖에 되지 않은데다가 잎조차 흔적도 없이 스러져 눈여겨보지 않으면 아무나 찾을 수 없다. 강사님이 먼저 찾아내 일러 주지 않았더라면 우린 하릴없이 지나칠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애기앉은부채는 전체적으로 작을뿐더러 생태적 습성이 앉은부채와는 전혀 다르다. 애기앉은부채는 눈이 채 녹기 전 이른 봄에 잎이 꽃보다 먼저 돋아나고, 꽃은 7~8월 잎이 자취도 없이 완전히 스러진 후에 핀다. 이에 비해 앉은부채는 이른 봄에 꽃이 먼저 피고 난 후에 잎이 점차 무성해져 여름에도 남아 있다. 애기앉은부채는 꽃을 싸고 있는 불염포가 짙은 자주색을 띠지만 앉은부채는 붉은 갈색 반점이 있다. 분포역도 애기앉은부채는 주로 경기도를 제외한 내륙의 덕유산까지, 동해안 쪽 높은 산에서 주로 자란다. 이에 비해 앉은부채는 경기도, 강원도 등 주로 중부지역에서 자란다.

▲ 선자령 국사성황당 골짜기에 개화한 애기앉은부채

 

삶은 순간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선천적 여건 때문에 국어교육학과를 선택하여 국어 선생이 되었다. 생물 선생이 되지 못한 보상으로 은퇴하기 전부터 식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은퇴한 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입때까지 할 일이 없어 무료하거나 적적한 적이 없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는 늘 식물을 생각하고, 식물을 벗 삼아 식물과 놀며 지낸다. 이순(耳順)을 갓 넘은 한 평생 내가 제일 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늦게나마 식물을 선택한 것이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이호균 주주통신원  lee1228hg@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