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가

 

길손이 길을 가다 바닥에 툭 튀어나온 돌멩이를 만났다.
길손: (돌멩이를 차면서) 야! 왜 이렇게 툭 튀어나와 있어?
돌멩이: (움츠리며) 아얏! 왜 차는 거야? 씨~ 튀어나온 게 어때서? 그게 나야! 뭐 잘 못된 게 있어?


길손: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나며) 어! 돌멩이가 말을 하네? 미안해~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찼어. 네가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야.
돌멩이: (속상한 표정으로) 참, 넌 내가 말하는 게 이상해? 내 말을 알아듣는 네가 더 이상하다 얘~. 내 말을 알아들은 것은 고맙지만. 여하튼 너네들이 유념치 않고 귀 기울이지 않아서 그렇지, 난 너희들이 하는 짓을 다 보고, 듣고 그에 대해 말도 하고 있어.


길손: (머뭇거리면서) 어~ 그랬어? 우리가 하는 것을 다? 그런데 넌 여기서 쭉 있었던 거야?
돌멩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뭐라고? 내가 쭉 여기 있었냐고? 그게 뭐 그리 중요해? 역시 너도 같은 부류구나? 인간들은 나를 생명이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함부로 대해. 너도 같겠지?


길손: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글쎄~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럴걸? 그래서 나도...
돌멩이: (속상하다는 듯이) 아휴~ 정말~ 나는 살아 있단 말이야! 조금씩이지만 변하기도 하고, 움직이면서 말이야. 짧게는 수만 년을, 길게는 수십억 년을 살아왔어. 그런데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너희 인간들이, 감히 나를 보고 생명이 없다고 무시하다니... 참으로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

▲ 튀어나온 돌멩이

 길손: (흠칫 놀라면서) 어~? 그런 게 아닌데... 너를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고, 우리 인간들이 편의상 분류한 것이 그렇다는 거지... 난 별 생각 없이 따른 것이고...
돌멩이: (참기 힘든 표정으로) 뭐라고? 정말 더 화가 나네. 편의상 분류했다고? 그게 그거지 뭐? 생각 없이 따랐다니 더욱 나빠! 너희 인간들 맘대로 생명이 있느니 없느니 말이야? 정말 가당치도 않고 웃겨!


길손: (어정쩡해가지고) 으음~ 그런 게 아닌데...
돌멩이: (노기가 충천해서) 뭐가 그런 게 아니야? 핑계 대지마! 이 세상 만물 중에 생명이 없는 것이 어디 있어?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바로 생명이 있다는 증거지. 좀 제대로 알고나 말해라. 싸가지 없고 무식한 인간들아!


길손: (다소 공손해지며 두 손을 잡고) 너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러기는 하네. 미안하다. 이제부터라고 난 너를 생명체로 생각할게.
돌멩이: (의연하게 폼을 잡으며) 암, 그래야지~ 당연하지. 그나마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억겁의 세월을 살아온 난데 말이야...


길손: (차분한 말씨로) 음~ 너를 제대로 몰라봐서 미안해. 이제 너의 맘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아. 그런데 넌 여기 한 곳에 계속 있으면 답답하거나 지루하지 않니?
돌멩이: (놀라는 표정으로) 또 너의 생각으로 단정하지? 답답하고 지루하다고? 그 말 또한 나를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야.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고. 난 여기 있기에 살아 존재하는 거야. 그리고 내가 얼마나 활기찬 삶을 사는데 그래?


길손:(의외라는 듯이) 뭐라고?네가 활기찬 삶을 산다고? 한 곳에 가만히 박혀있으면서...
돌멩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휴~ 너도 위치가 우선이고 중요하구나? 사실 위치보다 시야와 시각이 중요해. 만물만사를 어떻게 보고, 듣고, 받아들이느냐는 것. 내가 비록 위치적으로는 한 곳에 있지만, 전후좌우는 물론 상하를 다 보고, 듣고, 느끼고 수 있어. 네가 온 세상을 쏘다녀도 나만큼 듣고 보기는 힘들 걸? 그리고 네가 보기엔 내가 가만히 있는 것 같지? 멈춰있는 듯하지만 난 아주 천천히 움직이면서 변하고 있어. 그리고 내 곁에는 나를 요동케 하는 자들이 엄청 많아! 너를 비롯해 나를 스쳐 오가는 이들이 헤아릴 수 없다는 거지.


길손: (고개를 끄떡이며) 그렇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들이 오가는 것과 네가 무슨 상관이야? 그런데 누가 오가지? 네가 오가는 그들을 다 알고 인식한단 말이야?
돌멩이: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그럼! 인식하지~ 하늘은 밝았다 어두웠다 하고, 낮에는 태양이 빛나고 밤에는 달과 별들이 빛나고, 구름은 이곳저곳을 떠다니다가 피곤하면 내 머리 위에서 잠시 쉬기도 하고, 사방팔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곳곳의 소식을 전해 주고, 때에 따라 내리는 비는 소나기가 되었다 이슬비가 되었다 하면서 나를 촉촉이 적셔주고, 강물은 유유히 흘러가며 만물의 혈이 되고, 하얀 눈은 더럽고 치사한 세상을 깨끗이 덮어주는 등, 이루 다 헤아리기가 버겁네? 하늘과 땅 그리고 지하에서 요동하는 친구들을 제외해도 그래.


길손: (맞장구를 치며) 그러네. 무척 많기도 하네. 인간들은 그들을 자연현상이라고 하지. 그런데 넌 그들을 개체로 인정하고 있네? 그들이 어떻다는 거지?
돌멩이: 참으로 답답하네. 너는 얘기를 듣고도 모른단 말이야?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재미있고 즐거워. 그들은 힘이 넘치고 활기차! 그러니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 그들과 함께 웃고 즐기는 것이지. 그 중에서 단연 으뜸은 인간들이지만. 그리고 방금 네가 말한 자연현상들은 자신을 고집하지 않아. 그저 주변의 세력과 조화롭게 어울리지. 그럼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더욱 확실해지니까.


길손: 최고는 인간들이라고? 그들이 어떤데?
돌멩이: 말로는 다 못해! 다른 종들과는 달리 인간들을 보고 있노라면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은 거의 없어. 오히려 실소만 나와. 정말 가관이야! 너도 동류이지만... 이리 와서 저들이 하는 꼴을 한 번 볼래? 보면 그들이 어떤 짓을 하는지 알거야.


길손: (오가는 인간들을 바라보며 신음한다.) 음~ 아~ 어~
돌멩이: (인간들을 가리키면서) 네가 봐도 좀 그렇지? 자기들이 생명체 중에서 유일한 고등동물인줄 알지만, 우리가 보기엔 한심해. 불쌍하기까지 해. 저런 와중에도 자신들만이 선택받은 민족? 국가? 지역? 種이라고 자위하는 것을 보면 헛웃음이 절로 나와. 왜 저렇게들 사는지 모르겠어, 뭘 위해서, 뭘 더 얻으려고, 얼마나 산다고... 너희 인간들이 무생물이라고 무시하는 내~가~, 이 돌멩이가 보기에 그렇단 말이야.


길손: (먼 산을 보며) 할 말이 없네...
돌멩이: 너희 인간들은 말이야! 세상에 태어나 그만큼 만물들의 은혜를 입고, 거의 공짜로 누리고 살다 가면 결초보은은 못할망정 해는 끼치지 말고 가야지? 이젠 너희 인간들은 만물의 천적이 돼버렸어. 참담해.

 

길손: (멍 띤 얼굴로) 그렇게까지?

돌멩이: (성난 목소리로) 함께 어울리기보다는 서로 반목하고, 돕기보다는 상해를 끼치고, 살리기보다는 죽이려 하고, 손을 잡기보다는 뒤통수 치고, 올라가는 놈 끌어내리고, 내려가는 놈 짓밟고, 웃기보다는 찡그리고, 칭찬보다는 비난하고, 이권을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고, 남들이 죽든 말든 나만 살고 이익 되면 그만이고. 나 이제 그만할래... 역겨워.


길손: (침통한 얼굴로) 어찌 저럴 수가...
돌멩이: (아픈 표정으로) 대부분의 인간들은 선량한 삶을 살고 있어. 극히 일부의 인간들이 세상을 더럽히고 어지럽히는 것이지. 하지만 그들이 만물에 미치는 폐해가 너무 커. 아주 심각해. 인간이외의 만물들은 더럽고 치사하지 않거든? 방해받지 않고 생명만 유지할 수 있으면 타물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 싸우기는 하지만 자기생명을 유지하는 선까지야. 싸우더라도 정면대결하고 지면 깨끗이 물러나. 부와 권세와 명예등 만복을 달라고 누구에게 굽실대거나 빌지도 않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길손: (고개를 돌리면서) 아휴~...


돌멩이와 나

차라리 돌멩이가 되어버릴까?
너를 만나고 보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내가, 인간임이 무척 부끄럽구나!

차라리 돌멩이로 살았다면
너와 얘기 나누다 보니
자신의 역할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인간임이 심히 안타깝구나!

차라리 돌멩이를 지나칠걸
이제 너와 헤어지려고 하니
다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내, 처지가 너무 구차하구나!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김태평 주주통신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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