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열풍 속 논란을 파헤치다

한국에서 '힙합'이라는 두 글자는 어느 때보다 뜨겁다. 2012년부터 시작 된 힙합오디션 <쇼미더머니>는 국내 최대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를 제치고 금요일 골든타임을 차지했다. 이어 여성래퍼 오디션인 <언프리티랩스타>와 지난 10일 방영 된 <고등래퍼>까지 방송 되면서 한국 힙합은 젊은이들의 유행을 선도하는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뜨거운 열풍 속에도 힙합은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바로 힙합문화가 갖는 윤리성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쇼미더머니4>에 출연한 래퍼 송민호 노래 가사 중 “MINO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내용의 가사가 다수의 여성들이 불쾌감을 토로하면서 여성비하 논란을 일으켰다. 소식을 접한 대한산부인과의사협회는 명예훼손이라는 공식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여러 힙합음악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하와 무분별한 욕설을 담은 내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예술에 윤리라는 잣대를 들이댈 거면 넌 진보지 말고                 내 음악도 듣지 말고 닥치고 가서 집 정리나 해" 

▲ 래퍼 '스윙스'

국내 유명 래퍼 스윙스의 노래 ‘불도저'의 한 구절이다. 이 가사는 많은 힙합 옹호자들에게 인용되며 비판론자들에게 던지는 강력한 항변이 됐다. 예술에 윤리를 들이밀 경우 표현의 자유가 침해 되는 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힙합이라는 음악이 다른 장르에 비해 거친 표현과 특수한 문화가 섞인 장르인 것도 맞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무분별한 비하와 욕설을 정당화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힙합옹호자들의 입장을 살펴보면 ‘힙합은 원래 그런 문화고 힙합에는 윤리를 들이밀면 안 된다’고 말한다. 힙합의 역사를 보면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틀렸다. 한국과 미국 힙합은 탄생 배경부터 발전모습까지 뿌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힙합의 역사는 1970년 미국 최대 빈민가이자 유색인종 거주지역인 할렘 가에서 시작됐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하던 당시 그들이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던 영역은 바로 예술이었다. 여기서 탄생 한 음악이 바로 힙합이다. 백인에 대한 증오와 공권력에 대한 불신은 가사의 주된 내용이 됐고 사회적 약자였던 그들은 음악 속에 거칠고 난폭한 자신들만의 저항의식을 담아냈다. 음악에서만큼이라도 강해지고 싶던 그들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동성애자를 향한 비하나 범죄와 마약을 예찬하는 내용 또한 거침 없었다. 우리가 흔히 힙합을 ‘저항의 음악’으로 알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 영화 <8마일>의 장면

힙합은 그들에게 단순한 음악이 아닌 처절한 삶 속에 유일하게 피울 수있는 희망이고 꿈이었다. 자신을 대변하는 유일한 수단인 힙합은 자연스럽게 일상과 촘촘히 엮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힙합은 음악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사회적 계급적 특수한 환경에서 탄생하게 된 힙합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온전히 자리 잡는 건 불가능했다. 극도로 거칠고 난폭한 힙합문화를 그대로 가져와 차용하기에는 문화적 배경에 많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 힙합은 자기성찰과 사회 부조리를 꼬집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에 살면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한국 래퍼들도 영어표현과 플로우, 리듬 같은 음악적 요소에 영향을 받을 순 있어도 그들의 정서를 그대로 가져올 순 없었다. 그들은 흔히 있는 집 자식이었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기때문이다.

▲ 교포 출신 '드렁큰타이거'(힙합으로 가요차트 최초 1위 기록)

힙합의 탄생배경과 방향성이 너무도 다른 두 나라를 비교하면서 ‘힙합은 원래 그런 것이다’라며 비윤리성을 정당화 하는 행위는 힙합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증명하는 꼴이다. 폭력적인 힙합음악이 문화로 남을 수 있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된 거칠고 난폭한 가사 때문이 아니라 빈민 흑인들의 처절했던 삶을 음악을 넘어 문화로 계승한 역사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에 나오는 거칠고 폭력적인 가사는 실제 그들이 살아온 삶이기 때문이다.

▲ 갱스터 래퍼 '2pac'

힙합의 거장으로 알려진 미국의 ‘2pac’은 어린 시절을 갱스터로 보냈다. 20세가 되기 전 수차례의 체포경력과 수감기록을 가진 그는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갱스터 삶을 예찬한 노래 'Life Goes On'을 쓰고도 여전히 전설로 남아있다. 한국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얼마 전 <고등래퍼>에 출연했던 장용준이 네티즌들에 의해 과거가 밝혀지면서 출연 이틀 만에 프로그램에서 하차 한 사례만 봐도 그렇다. 이 차이는 대중이 받아들이는 문화적 역량이 아니라 철저한 문화적 배경에 있다. 그렇다고 본토의 힙합을 가져오지 못한 한국 힙합이 뒤 떨어지는 건 아니다. 한국에 토착한 힙합은 나름대로 적응력을 갖춰 성공을 이뤘다. 기본적으로 주류 문화가 할 수 없던 역할을 힙합이 실현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자기성찰을 통한 동기부여와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이었지 사회적 약자를 향한 무분별한 비하나 욕설이 아니었다. 

▲ 맥클모어

힙합의 본고장인 미국 힙합에는 여전히 논란이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비윤리적인 가사를 사과하는 래퍼도 적지 않다. 어떤 래퍼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적인 경향에 반발해 ‘Same Love’ 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바로 그래미 어워드 수상자 ‘맥클모어’다. 

예술의 사전적 의미는 ’아름다움을 위한 인간의 창조 활동'이다. 결국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술에 무조건적으로 윤리를 강요하는게 아니다. 예술에 있어 표현의 자유는 존중 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는 아름다움만이 있길 꿈꾸며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무분별하게 상처받는 사람이 더이상 없기 바랄 뿐이다.

편집: 이다혜 객원편집위원

구교윤 대학생기자  9ky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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