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우리 것] 마광남 주주통신원

숯이란 목재를 탄화시켜 만들어낸 물질이다. 우리나라는 약 2600년 전부터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숯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사기 11권 신라본기 헌강왕 6년에는 당시 경주의 민간에서 밥을 짓는데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숯을 사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를 하였으며 공신들이 죽었을 경우 부의품(賻儀品)으로 숯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상류층에서는 망자(亡者)의 봉분을 만들 때 숯의 사용이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숯이 오늘날에는 그 종류도 많아지고 사용하는 곳도 다양해졌다. 충청과 강원지방에서는 참나무로 숯을 굽고 있지만 유일하게 완도만은 9월에 섶(薪,가시나무)으로 숯을 굽는다고 했다.

지금이야 계절에 관계없이 굽지만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9월(季秋)에 섶(薪)을 치고 숯을 만든다고 <경세유표>(經世遺表) 제10권 지관 수제(地官修制, 부공제(賦貢制 4)에 기록되어 있다.

완도에는 이러한 숯을 굽는데 필요한 가시나무가 주 수종이어서 나무를 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완도의 주산인 상왕산(象王山)은 약 90%정도가 가시나무다. 완도에서 생산되는 숯의 량이 얼마나 많았던지 다른 진(鎭)에까지 공급을 하였던 기록들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18년 갑인(1794,건륭 59) 12월25(무인)일에 호남 위유사 서영보가 별단을 올려서 말하기를, ‘완도에서는 우수영에 매달 15파(把)의 땔나무와 한 달 걸러 한 번씩 20석의 숯을 바쳐야 합니다. 그런데 숯 굽기에 좋은 나무들이 가죽나무나 상수리나무 같은 쓸모없는 재목들과 마찬가지로 땔나무가 되어버리니 앞으로는 각별히 금해야 합니다’라는 기록을 보면 가죽나무나 상수리(참나무)나무를 쓸모없는 재목이라고 한 대목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군기로도 쓸 수 있는 단단한 나무가 오직 이 섬(완도)에서만 난다고 했다. 지금은 참나무 숯이 최고라고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쓸모없는 나무가 참나무였다. 그런 참나무가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숯 굽는데 최상으로 치는 가시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도에는 너무도 많이 있다. 이렇게 널려있는 나무가 숲 가꾸기 사업으로 인해 잘라진 그대로 버려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대를 이어 숯을 굽고 있는 사람이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지금은 대야 수원지가 되었지만 그 골자기에 대수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에서 조상 대대로 살면서 숯을 구워왔던 사람이 그곳에 상수원이 만들어 지면서 아랫마을로 이사를 했다. 조상에게서 배운 기술을 버릴 수가 없어 아주 볼품없는 자그마한 가마를 만들고 그곳에서 겨우 맥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것이 입소문을 타고 숯 공예를 하는 사람들이 속속 사가는 것이 고작이다. 숲 가꾸기 사업으로 인해 잘라져 나뒹구는 나무들을 모아 숯으로 만든다면 일석이조라고 생각한다. 가시나무로 만든 숯은 참나무 숯에 비해 쪼개지듯 벌어지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화력이 좋고 더 오래 피울 수 있어 경제적인 측면에서 훨씬 이익이라는 것이 실수요자들의 말이다.

행정이 지원하고 상품(上品)의 숯을 만들게 하여 명품화 한다면 완도의 숯이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고 본다. 익히기 힘든 기능이 없어지지 않고 계승되어 소득과 직결되기를 희망한다.

마광남  wd34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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