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는 예부터 시가지를 휘감아도는 네 개의 강이 있다. 

토함산 자락을 타고 보문관광단지의 보문호에 고였다가 흘러내리는 동천과 북천,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 앞 남천과 형산강의 상류인 서천이다. 

이 사진은 서천의 중심 '애기청소'다. 어떤 가뭄에도 소는 바닥을 보이지 않는다. 사철 깊고 푸른 애기청소는 수많은 애가를 품고 있다. 내가 어릴 적에도, 그 이전에도 1년에 몇 명이 저 소에 제물처럼 사라져갔다. 

"실 한 꾸리를 다 풀어넣어도 깊이를 알 수 없데이" 어른들이 그랬다. 실 한 꾸리는 30여 미터라고 했다. 온갖 애달픈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잠긴 서천의 애기청소는 경주에서 유일한 금지 구역이다. 그리고 저 슬픈 소에 어울리는 김동리 소설 <무녀도>의 현장이다. 

김동리 소설가는 대표적인 우익 문학인이다. 그의 아들 김평우 변호사가 이 초유의 국정농단을 변호하느라 무대의 중심에 섰다. 소설 아닌 말이 더 소설 같아서 비현실적 몽환에 시달리게 한다. 

헌법은 한 국가의 서까래 같은 것이다. 지붕이 튼튼해야 가족은 비바람에 안심한다. 이 귀중한 헌법을 똥 친 막대기 취급하자 역한 냄새가 흩날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온갖 잡동사니가 뒤범벅된 휴지통 꼬락서니다. 올바른 분리수거를 염원하는 촛불과 애국을 빌미한 몽니가 혼재한다. 

오늘은 내일의 역사다. 우리는 무엇을 지향하며 어떤 나라를 만들것인가. 희망이라는 푸르른 말에 혼탁한 오물이 끼얹어질까 두렵다. 

차라리 이 현실이 소설이었으면 싶다. 마지막 장을 읽은 뒤 책을 덮고, 선량하고 올바른 사람들이 저마다 성실한 하루를 맞는, 그런 아침이었으면......

강은 소리내어 흐르지 않는다. 저 강물이 순하디 순하게 동해 바다에 스미듯, 모든 진리는 역류하지 않는다.

(2017년 2월 25일 경주 '예술의 전당' 전망대에서 촬영)

 

편집: 양성숙 부에디터

이미진 객원편집위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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