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이유>

‘자석이 쇳가루를 끌어 모으듯 ’사건‘은 많은 사람들을 빨아들인다. 폭심지에 있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 이를테면 각자의 가족, 친구와 지인, 근처 주민, 학교 친구나 회사 동료, 목격자, 경찰의 탐문을 받은 사람들, 사건 현장에 출입하던 수금원, 신문배달부, 음식배달부 등 헤아려보면 한 사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는지 새삼 놀랄 정도다.’

▲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

몹시 사나운 비가 몰아치던 1996년 6월 2일 반다루 센주기타 뉴시티에서 ‘아라카와 일가족 4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겉보기엔 명확해 보이던 일가족 살인사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던 중 살해당한 4인 가족이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고, 사건은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이유>는 왜 의문의 네 사람이 가족으로 위장해 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왜 살해당했는가를 사건의 폭심지와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을 통해 밝혀낸 취재기록, 즉 르포타주다. 그리고 이들 각각의 ‘이유’들로 채워져 있다.

사건은 고이토 노부야스와 이시다 나오즈미로부터 시작된다. 고이토 노부야스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인물로, '일반인'에는 알 수 없는 경멸과 ‘특별한 사람‘에는 동경을 가지고 있다. 그는 '반다루 센주키다 뉴시티'를 통해 특별한 사람에 한 발짝 다가가고자 한다. 그의 재력 또한 평범해서 부족한 자금을 메꾸려 받았던 대출을 갚지 못하게 되자 아파트를 내놓게 된다. 이를 매수한 인물이 바로 이시다 나오즈미다. 그 또한 평범한 인물로 자식들에게 아버지 권위와 자존심을 공고히 하기 위해, 오기 아닌 오기로 이 아파트를 매수하게 된다. 아파트 권리를 뺏기지 않으려 하는 이들 사이에 버티기꾼과 다양한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관련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버티기꾼이던 야시로 유지가 한몫을 챙기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고 결국 살인 사건으로 치닫는다.

사건의 무대가 된 ‘반다루 센주기타 뉴시티’는 일본의 유래 없는 경제호황 시절인 버블경제와 탄생을 같이한 고급 아파트다. 주변 일대의 낡은 거주 공간속에서 우뚝 솟아 그 위용을 드러내며, 현대적인, 합리적인, 개인적인 생활양식과 이를 구성하는 커뮤니티 그 자체를 상징한다. 버블경제의 종말 또한 같이하는데, 분에 넘치는 소비를 했던 사람들에게는 냉혹한 현실을 상징한다. 또한 ‘반다루 센주기타 뉴시티‘는 그 자체로서 뿐만이 아니라, 책속의 인물들에게 각기 다른 상징으로 존재한다. 고이토 부부에겐 일반인과 다르다는 특별함과 허영심의 상징이고, 이시다 나오즈미에겐 가장으로의 권위와 자존심의 상징, 야시로 유지에겐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아야코와 새 출발을 위한 목돈의 상징인 것이다.

허영심에 젖어 온갖 대출로 얻은 '반다루 센주기타 뉴시티'를 결국 경매에 넘기게 된 고이토 부부, 이를 오기로 매수했으며, 어쩌다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이시다 나오즈미, 이 사이에서 나름의 철학으로 버티기꾼을 고용해, 고이토 부부를 도와주겠다던 부동산 사장 하야카와 잇키, 버티기 꾼으로 고용되어 스나카와가로 위장해 가족 행세를 했던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의문의 인물들(스나카와 노부오, 아키요시 가쓰코, 미타 하쓰에), 용의자 이시다 나오즈미를 데리고 있던 카타쿠라 하우스, 책 속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현 세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전 세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각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들은 버블경제와 일본이 겪었던 병폐를 하나씩 상처로 안고 있다. 이는 사건의 발생한 이유다. 버블경제의 흥망성쇠에 따라 분에 넘치는 소비, 허영과 남의 시선에 매달리는 삶, 이로 인해 약해지는 가정, 이런 가정에 더 이상 기대지 않는 소외된 개인들, 소외된 개인들이 이룬 기형적인 가정, 이 외에도 법률의 사각지대, 과거 전쟁과 풍습이란 이름 아래 개인을 괴롭혔던 악습들 모두 <이유>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갖고 있는 상처들이다. '아라카와 일가족 4인 살인사건’은 전부터 이를 둘러싼 수십 가지의 이유들이 잠재되었던 사건이었으며, 이 이유들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던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는 678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책을 펼치기 전엔 다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 이 많은 인물들의 삶과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 수도 있다. 미야베 미유키는 어떤 인물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이를 해낸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각 인물들이 토해내는 삶과 이유에 귀 기울이게 된다. <이유>가 그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보이진 않지만 우리는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는 것과, 버블경제의 흥망성쇠와 일본 사회 속 개인의 삶과 가정의 모습일 것이다. 이야기를 살인사건으로 종결함으로써 비판을 던지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비극적인 결말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있는 그대로 담백하다. 원망과 탄식보다는 이해와 공감으로 자연스럽게 독자들을 끌어 당기고 몰입시킨다. 이것이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이유>의 힘이다.

편집: 이다혜 객원편집위원

한주해 대학생 기자  wngogk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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