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암 손병희 선생의 삼일혁명 정신 찾아나서다

98주년 삼일절 그 본산 천도교의 기념식

이제 2년 남은 삼일혁명 백주년을 앞두고 오늘은 우리나라의 상징인 국기 태극기가 망신스러운 자리에 휘날리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 슬픈 날이다. 그리하여 오늘은 삼일절에 가장 슬픈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 현장과 삼일운동의 기둥이 되고 실질적인 주체 세력인 천도교의 삼일절 기념식을 한 번 찾아보기로 하였다.

요즘 나는 블로그에 전 독립기념관 관장 김삼웅님이 쓰신 의암 손병희 전기문을 다운 받아 연재하고있다. 삼일절을 기해서 그 분의 업적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자는 뜻에서다.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이렇다. 삼일독립만세 전날 저녁 모두 퇴근을 시켜 버리고 사장님과 단 둘이서 남몰래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기 위하여 창문을 모두 가리고 인쇄기계를 돌려 인쇄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하필 이 시간에 순찰을 돌던 종로경찰서 순경이 기계 소리에 뭔가 하고 문을 두들기고 들어온 것이었다.

▲ 삼일혁명의 중심지 천도교 수운회관

손병희 선생님은 순경을 붙잡고 책상 속에 있던 거금을 내 놓으면서

“이 돈이면 당신은 편히 살 수 있을 것이오. 당신도 조선 사람이 아니오. 모른 척하고 오늘만 참아주시오”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사정을 하자 순경도 감동하여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눈감아 주었고, 무사히 인쇄를 하여 당일 만세운동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는 대목을 읽은 것이 지난 주다.

오늘은 바로 이분의 업적을 되새기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어서 기쁘게 동참하기로 하였다.

삼일운동 당시만 하여도 대한민국의 종교활동인구 절반 가까이가 이 민족종교인 천도교의 신자였고, 특히 독립운동을 하는 독립투사의 대부분은 천도교나 대종교 같은 민족종교를 믿었으며, 종교 활동을 빙자하여 독립운동을 펼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외세인 기독교의 급작스런 팽창으로 민족종교의 교세가 줄어들어 그 당시의 교인들보다 더 적은 형편에 이르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전화로 고순계 사백님께 알렸는데, 식이 진행 되는 강당에 들어서니 식이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순서이었던가 보다. 문화예술인 33명이 문화예술계독립선언을 하고 우리 사회를 밝게 만드는데 앞장을 서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식을 마치고 2부 행사로 식에 참석한 교인들이 모두 탑골공원에 모셔져 있는 3대 교조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에 참배를 하러 가는 길에 동참을 하게 되었다. 먼저 본당 마당에서 농악대의 신나는 공연으로 흥을 돋우고,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다음에 출발을 하였다. 이곳에서는 태극기를 들었지만, 종로거리의 태극기 부대와는 달리 왼손에는 천도교의 깃발을 들었다. 성조기가 아닌 민족종교 천도교를 알리기 위한 것이다.

▲ 인사동을 거쳐 탑골공원으로 행진맨 앞줄에 서서 국기를 흔들며 행진에 참가하였다

고 사백님 덕분에 가장 앞줄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면서 인사동 거리를 지나가는데 수많은 외국인들의 카메라가 집중이 되기도 하고, 국내 쇼핑객들도 함께 만세를 불러주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

오늘 종로에서 태극기부대<탄기국>의 대규모 시위가 있다고 벌써부터 공원과 거리에는 나이 드신 노인들이 길거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천도교 교인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의암선생의 동상 앞으로 모이기까지 길거리에선 자기들과 같은 탄기국 회원들의 행진인줄 알고 말을 붙이기도 하고 함께 만세를 부르는 분도 있었다.

▲ 탐골공원의 의암선생 동상동상 앞에 교도들이 모여 참배를 드렸다

탑골공원에는 민족대표 33인 추모대회가 열린다고 식장이 준비 되어 있고 대부분은 노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천도교 교인들이 들어서자 웬 사람들인가 의심하는 눈치로 살피고 있었는데 의암선생 동상 앞에 도열하자 무슨 일인가 싶었는지 눈길이 모였다.

모두 정열하여 묵념을 올리고 천도교 찬도가를 부르고 나서 다시 묵도를 한 다음에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식을 마치고 모두 천도교수운회관으로 돌아가서 점심을 먹자고 하였으나 나는 얼른 집에 오려고 나섰다.

길거리를 걷다보니 태극기를 가진 내 모습이 참 어설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태극기 부대의 행진이 있는 날인데 태극기를 들고 있으니 영락없는 태극기 부대가 되고 말았다.

난 전혀 아닌 곳에서 삼일절 행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지만 다른 사람들이야 당연히 나이도 들었겠다 태극기를 들었으니 그렇게 인정을 하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아침 신문에 태극기 때문에 실린 기사가 영 어설프게 만들었는데......

[”25층 아파트에 삼일절 태극기를 게양한 집이 5가구 밖에 되지 않네요. 친박 단체가 태극기를 악용해서 이런 현상이 생기는군요”, “3.1절 태극기 게양이 크게 줄었다. 친박 집회 영향인 듯하다. 아파트 한동 134세대 중 6세대만 태극기 게양. 4.5%. 박근혜 지지율과 비슷하다”, “태극기를 바라보는 심정이 어수선해 후안무치 극우 세력들 손에 몸살 앓이 중인 태극기가 뭔 죄가 있을까 싶지만 어쩐지 선뜻 마음이 뒷걸음이다”, “태극기를 뺏기지 말자. 일제에 저항하고 군부와 독재에 맞서 싸웠던 민중의 상징인데 친박 기득권 장난질에 모욕받아서 슬프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반면, “삼일절에 태극기를 들어야 하나 고민해야 하는 게 너무 싫지만, 그런데도 태극기는 게양해야 한다”, “고심 끝에 태극기를 달았다”면서 인증샷을 올린 누리꾼도 있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4677.html?_fr=mt1#csidx050a6943cb159c28f8ea9d8edce728b

▲ 행사 기념사진 초라한 참가자들의 모습

그랬다. 나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국기를 달까 말까 하다가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삼일절 국기를 다는 것이지 태극기 부대는 아닌데 뭐가 걱정인가?’ 하고 국기를 달고 나갔는데 다들 그런 고민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돌아오는 길에 ‘태극기를 버리고 올 걸 왜 가지고 오면서 이렇게 고민을 하나’ 어리석은 자신을 나무라기도 하였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선태 주주통신원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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