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둥이 아들 세상 살아남기 27

김미경 편집위원l승인2017.03.09l수정2018.07.1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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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어려서부터 신발을 좋아했다. 친척어른들이 옷 종류를 선물해주면 ‘고맙습니다.’ 하고는 옆으로 슬쩍 치워놓고 입어보라고 해도 입어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신발을 사주면 신이 나서 신어보고 옆에 끼고 다녔다. 누가 뭐가 필요하냐고 물으면 항상 ‘신발이요!’라고 답했다.

마음에 드는 신발은 신주단지 모시듯 했다. 그런 신발을 신고 나갔다 온 날이면 먼지를 털고 모양을 잡아서 신발장에 고이 모셔 놨다. 비에 젖은 신발도 제 때 손질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처박아놓아 곰팡이가 피어 버린 적이 있는 제 누나와는 딴판이다.

재작년부터는 모자에까지 애정을 보이기 시작했다. 올 여름에는 외출 시에 늘 모자를 쓰고 다녔고 좀 더러워진 모자를 빨래망에 넣어 세탁기에 돌릴라하면, 질색을 하면서 모자는 빠는 것이 아니라고 얼른 모셔갔다. 모자를 사용한 날이면 살살 먼지를 털어버리고는 모자 두는 상자에 고이 넣어두었다.

모자와 신발에 무한한 애정으로 늘 모자와 신발 살 궁리를 했다. 이번 여름방학에 와서도 30만 원 정도 용돈이 모이자 몽땅 신발과 모자를 사려고 했다. 모자 10개, 신발 10개를 잘 진열해 놓고 매일 아침마다 어떤 것을 신을까, 어떤 것을 쓸까 고민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아들은 캐나다 친구에게 중국 인터넷쇼핑 사이트를 추천받았는데 친구가 주문한 바로는 배송도 빠르고 진품과 질에서도 차이가 없다고 했다. 아들은 그 사이트를 수차례 들락거리더니 갖고 있는 돈 전부로 신발과 모자를 사고 싶다고 하며 그 사이트를 들어가 한번 봐달라고 했다.

들어가 보니 물건이 엄청 많았다. 나이키, 팀버랜드 등 없는 제품이 없었다. 하지만 나이키 신발이 25~45불이면 분명히 짝퉁 물건을 파는 사이트였다. 짝퉁 물건을 사면 세관에 걸린다고 했다. 아들도 이를 생각했는지 중국직원과 수차례 메신저로 ‘가짜냐’고 물어보았는데 ‘우리는 OEM 주문받은 물건 중 남은 물건을 판다.’고 했다며 엄마보다는 직원 말을 더 믿고 싶어 했다. 신발 욕심에 분명히 짝퉁 의심이 가는데도 아니라고 우기고 싶어 했다.

결제도 문제였다. 비자카드로 결제가 안 되고, ‘웨스턴유니온’에 달러로 먼저 입금하면 물건을 부쳐준다고 했다. ‘웨스턴유니온’은 은행이 아니고 송금전문 미국회사였다. 통장으로 보내는 것도 아니고 송금할 때 돈을 받을 자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기록한 후 송금하면 송금번호를 받는다. 이 번호에 등록된 사람이 ‘웨스턴유니온’에 가서 돈을 찾아가는 거였다. 즉 돈을 받고 뚝 떼어먹어도 고객은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는 불리한 시스템이었다.

중국 사이트에 좋지 않은 고정관념이 있어서 아들에게 다음 세 가지 이유를 대면서 강력 반대했다.

첫째, 뭘 믿고 돈을 보내나? 돈을 보내고 물건을 보내주지 않으면, 30만원 다 날릴 수 있다. 둘째, 물건을 샀다가 마음에 안 들면 바꿀 수가 없다. 물건 보내는 비용으로 40불을 더 내라고 했으니, 반품하면 EMS 비용 80불을 그냥 날린다. 결국 맘에 안 들어도 그냥 사야 한다. 셋째, 가격으로 볼 때 분명히 짝퉁이다. 세관에 걸리면 폐기처분된다.

아들은 나의 강력 반대에 맞서 더 강력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첫째, 캐나다 친구는 입금하고 일주일 내에 물건을 받았다. 엄마 의심은 지나치다. 엄마는 왜 그렇게 세상은 못 믿나? 둘째, 친구 신발의 질이 상당히 좋아서 아주 만족했다. 신발은 사진을 꼼꼼히 보는 등 며칠 심사숙고해서 골랐으므로 마음에 안들 수가 없다. 혹 마음에 안 들어도 신고 다닐 것이다. 셋째, 친구 신발은 진품과 같은 태그가 달려왔다. 중국직원 말이 맞을 수 있다.

며칠 아들과 실랑이를 하다 아들을 꺾을 수가 없어서 남편과 의논했다. 아들이 피같이 모은 30만원이 날아가 버릴 것 같아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남편 의견은 달랐다. 자기 용돈으로 사는 것이니 선택권을 다 주라는 것이었다. 대신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은 전적으로 아들에게 있음을 강조하라고 했다.

뻔한 예상에 속이 쓰렸지만 아들에게 신발을 한 번 더 점검해서 주문하도록 했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한 다음에 은행에 가서 송금을 했다. 송금하기 직전에도 생각보다 비싼 송금수수료도 아들이 지불해야 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아들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송금 후 다음 날, 중국직원에게 연락이 왔다. 돈을 받았다며 주문한 신발 중 하나는 재고가 없으니 다른 것으로 주문해 달라 했다. 아들은 돈을 떼어 먹으려 했으면 연락도 없었을 거라며 신이 나서 물건이 오기를 기다렸다.

중국직원은 신발 7켤레와 모자 2개를 두 박스에 나눠, 이틀에 걸쳐 부쳤다고 연락을 했고 EMS 번호도 주었다. EMS 번호로 아들은 매일 물건이 어디 있는지 검색했다. 드디어 물건이 한국세관에 도착했다. 하지만 며칠 째 세관에 묶여 배송이 되지 않았다. 아들의 얼굴이 컴컴해지기 시작했을 때 세관에서 편지가 왔다. 진품이면 관세를 물어야 하고 짝퉁 물건이면 반송 처리된다고 했다.

세관은 송금영수증을 보내달라고 했다. 나이키 직원이 물건을 직접 보고 짝퉁이 아니라고 판정을 하면 보내준다고 했다. 며칠 후 또 편지가 왔다. 아들의 물건은 짝퉁이므로 반송되던지 아들이 원하면 폐기처분한다고 했다. 아들은 사색이 되어 중국직원과 연락을 취했다. 중국직원은 메신저로 답을 주지 않았고 이메일로도 연락을 끊어버렸다.

아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실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하루는 입안을 보여주는데 입안이 다 헐었다. 잠도 못자고 소화도 안 된다고 했다. 너무 딱해 그냥 30만원을 주고 한국에서 신발을 사라고 할까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남편 말대로 30만원으로 큰 인생경험을 하게 모른 척 두어야 했다.

며칠 지나 기운을 차렸는지 아들은 끈질기게 중국직원과 소통을 시도했다. 물건을 반송시킬 테니 배송비 빼고 물건 값만 돌려줄 수 있는지 물었다. 또 반송시키면 물건을 캐나다주소로 보내줄 수 있는지도 물었다. 중국직원은 전혀 답을 주지 않았다. 아들은 출국 전까지 며칠에 한 번 씩 편지를 띄웠고 메신저로도 소통을 시도했다. 아들이 좀 질긴 면이 있다.

세관에서는 짝퉁을 어떻게 할 것인지 다시 문의가 왔다. 나는 중국직원이 하도 괘씸해서 그냥 폐기처분할 것을 권했지만 아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혹시 캐나다에서 받을 수도 있다고 중국으로 반송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캐나다에 간지 보름 후에 아들이 허겁지겁 나를 찾았다. 중국직원이 두 박스 중 한 박스는 반송 받았다며 보내주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배송비보다 캐나다배송비가 2배이므로 차액 40불을 보내달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나는 당신을 믿고 먼저 돈을 보냈다. 당신도 나를 믿고 물건을 먼저 보내주기 바란다. 물건을 받으면 배송비를 보내겠다.’ 고 좀 강하게 나갔다고 했다. 중국직원은 ‘그럼 우리가 먼저 물건을 보낼 테니 배송비는 나중에 보내 달라’고 했다고 했다.

보름을 기다린 후 아들은 신발이 4켤레 들어있는 박스 한 개를 받았다. 솔직히 짝퉁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슬쩍 볼 때는 짝퉁 같지 않다며 좋아했다. 가장 기다리던 팀버랜드 신발이 들어있는 박스는 못 받았다고 했다. 중국직원이 그 박스는 반송과정에서 분실 되어 찾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속상해 하더니 신발 4켤레에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는지 여유가 있어졌다. 중국직원이 박스분실 운운하는 것이 나머지 한 박스를 보내주지 않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들은 안다. 알면서도 캐나다는 추워서 군화 같은 팀버랜드가 정말 필요하다며 계속 중국직원에게 팀버랜드 만이라도 찾아서 보내달라고 조르고 있고, 중국직원은 그 박스를 거짓으로 찾는 척 하고 있다.

중국직원은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사기꾼인지 추가배송비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네 물건을 잃어버렸으니 배송비는 안 보내도 된다.'고 했다. 그래도 아들은 계속 '팀버랜드 찾아 달라'는 타령을 하고 있다. 내 돈 보내놓고 사정사정하는 입장이 되었으니 아마 '돈 준 사람은 쪼그려 자고 돈 빌린 사람을 발 뻗고 잔다.' 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오묘한 관계까지 깨닫지 않았을까?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가 아들에게 한 말이 있다.

“어떤 때는 너보다 인생을 오래 산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아. 그니까 엄마가 심하게 반대하면 엄마 말 좀 들어주라.”

아들은 ‘그러겠다.’고 했지만 또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할지는 모른다. 그래도 앞으로 비슷한 갈등이 생길 때, 부모 의견에 더 귀 기울이고 자신의 의견은 더 돌아보는 태도를 갖지 않을까? 30만원, 어찌 보면 큰돈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작은 돈이지만 돈의 액수보다 더 큰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 넘치는 힘을 주체 못하고 대나무 타기 시도 중, 대나무가 만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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