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판결이 난 다음날인 11일 제20차 마지막 촛불집회에는 70여만 명이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누적 참가인원 1600만 명을 기록한 3.10촛불시민혁명이었다. 스무 번이나 열린 대규모 집회는 단 한건 폭력도 없이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광장의 시민들은 마치 오래 전에 알던 친구처럼 서로 웃고, 양보하고, 서로 격려하고, 협조했다. 촛불을 든 시민은 평화로 무장한 꽃이었다. 

평화집회의 주인공은 물론 시민들이지만, 또다른 주역들이 있다. 집회 전체를 운영관리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다. 그 중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이 가장 크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난 11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 마지막 광화문 집회에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자원봉사팀장 김은규 진보연대 사무처장을 만났다. 그리고 이날 활동 마지막을 책임진 7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도 만났다.

▲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자원봉사팀장 김은규 진보연대 사무처장


▶ 자원봉사는 언제 시작되었고, 어떻게 모집했나? 

지난해 10월 29일 첫 촛불집회와 2차(11월 5일), 3차(12일) 집회는 자원봉사 없이 얼떨결에 치렀다. 초는 일찍 동났고 진입로도 막혀서 우왕좌왕했다. 19일 열리는 4차 집회를 앞두고 자원봉사자 모집 웹자보를 띄웠다. 하루만에 70명이 신청했다. 그렇게 시작한 자원봉사팀은 많게는 200명, 적게는 50명이 매회 활동했다. 지금까지 자원봉사에 참여한 시민의 수는 약 1300명 정도다. 오늘은 70명이 함께 한다.


▶ 어떤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신청하나? 

처음엔 20~30대 여성이 80%였다. 지금은 남녀 비율이 비슷하다. 연령도 10대에서 50대 후반까지 다양하다. 주로 학생과 직장인이다. 가끔 70세 넘은 분도 자원하는데 정중히 거절했다. 7~8시간 추운 날씨에 활동하는 것은 무척 고되고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약 30명 정도는 매번 나오고 있다. 이분들은 이제 ‘자봉의 달인’이다.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한다. 자원봉사자의 대부분은 ‘혼참려(집단에 속하지 않고 집회에 혼자 참여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신조어)’다. 
 

자원봉사팀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무대지킴이'다. 무대 주변을 지키는 일이다. 6명~8명이 두 개조로 나눠 30분씩 교대로 무대 앞을 정리하고 지킨다.

둘째, '안전지킴이'다. 시민으로 가득한 광장의 통행로를 확보하고, 통행에 방해가 되는 각종 부스들에게 이동 안내를 하고, 서 있는 사람을 앉히고, 미아 보호, 시각장애인 안내, 휠체어 자리와 유모차 자리도 확보한다.

셋째, '촛불부스팀'이다. 광장 가장자리에 6개의 부스를 설치하고 이곳에서 초와 유인물을 무료 배포한다.

모금은 이들이 하지 않는다. '박근혜퇴진비상국민행동'에 속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직접 한다. 청소는 서울시에서 전적으로 맡아서 한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들도 자신들이 활동한 구역과 '비상행동' 천막 주변은 스스로 깔끔하게 청소했다.


▶ 자원봉사팀에 들어가는 예산은 얼마나 되나?

보통 오후 1시에 자원봉사자들이 모인다. 도시락 점심을 제공한다. 부담을 안 주려고 먹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저녁식사는 행사를 마친 후 뒤풀이로 대신한다. 각자 돈을 내서 뒤풀이를 하는데 학생은 5,000원, 직장인 이상은 10,000원 낸다. 뒤풀이 비용을 조금 보태준다. 그 이상 돈 드는 일은 없다.


▶ 자원봉사팀을 운영하면서 어떤 경험을 했나?

행사 준비로 지치고 머리가 복잡하다가도 자원봉사자들을 만나면 즐겁다. 그들은 행복바이러스다. 자원봉사 자체를 소중하게 여겨 정성껏 임무에 임한다. 서로 같은 생각과 가치를 공유하며, 같이 행동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단 한 번도 자원봉사자가 말썽을 피거나 물의를 빚은 적도 없었다. 행사를 방해하거나 자원봉사자를 괴롭히는 방해꾼도 없었다.


▶ 마지막 촛불집회 날이다. 그간 촛불집회가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나?

탄핵 이전, 국민 마음은 상당히 암울했다. 약 5개월가량 매주 광화문에 모이면서 시민들은 ‘참여하면 된다.’는 능동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 희망을 가진 것이다. 박근혜 국정농단의 실체가 끝도없이 드러나는 걸 보면서 시민들은 적폐청산을 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또 반복될 거란 것을 알았다. 이번 일로 시민은 자신감을 갖고 적폐청산을 계속 요구하고 실행에 참여할 것으로 본다. 1987년 6.10시민항쟁에서 절반의 열매를 딴 시민의 주체적인 역량은 2017년 이후 그 결실을 맺을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시민단체도 활동방식을 바꿔나가야 한다.


두 명의 부팀장이 김 팀장을 돕고 있다. 이소영씨와 김수정씨다.

▶ 경기도 용인에 사는 부팀장 이소영씨(31세)는 디자이너다.

▲ 이소영 부팀장

촛불집회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나왔다. 진보연대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알게 된 김은규 팀장이 자원봉사관리 업무를 맡아달라고 해서 촛불집회 중반부터 부팀장으로 일했다. 촛불부스팀 자원봉사자를 관리하고 있다. 대통령이 버티고 있을 때는 정말 답답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결국 1차 승리를 이뤘기에 기쁘다.

일은 재미있다. 같은 생각을 가진 또래를 만나 친구가 된 것이 가장 좋았다. 가끔 술취한 어르신들의 행동과 막말로 마음 상하고 지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잘 협조해주었다. 진행팀의 주문에 잘 따르고, 쓰레기도 다 치워주고, 초 꽂는 것도 도와주었다. 시민들이 스스로 도와주는 일이 많아 감동받기도 한다.

이번 촛불집회를 하면서 ‘이렇게 하면 승리할 수 있구나’ 하는 경험을 했다. 직장이나 일상으로 돌아가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촛불집회는 박근혜 탄핵만이 아니라 전 국민에게 이런 메시지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 서울 영등포에 사는 김수정씨(30세)는 청소년지도사이다.

▲ 김수정 부팀장

청소년사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세월호와 국정교과서 집회를 할 때 청소년들과 함께 자주 광장에 왔다. 촛불집회에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자원봉사자 명단과 인원을 체크하고 안전지킴이팀을 관리한다. 토요일 봉사를 하고 나면 힘들어서 일요일은 무조건 집에서 쉬게 되니 결국 주말을 몽땅 반납하는 것이지만 함께 하는 내내 행복했다.

힘든 일은 딱히 없다. 부모님은 보수적 성향을 가진 분들이다. 하지만 많이 달라지셨다. 이번 일로 많은 어르신들이 생각을 바꾼 것으로 안다. 이번 탄핵인용 사유에서 세월호 7시간 문제는 빠졌지만 정권이 바뀌면 세월호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또한 박근혜 정권 하에서 억울하게 탄압받아 감옥에 간 사람들이 자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자원봉사자들은 이날 오후 1시에 모였다. 도시락으로 식사 하고 인원 체크를 한 후 주의 사항을 듣고 각자 활동구역으로 떠난다. 오후 2시 촛불부스팀이 가장 먼저 일 할 장소로 떠났다. 광화문 교보문고 앞 횡단보도, 광화문지하철 지하보도 그리고 행사장 곳곳 여섯 개 장소에서 부스를 설치하고 촛불을 나눠주었다. ‘촛불승리’ 배지도 함께 나눠주었다. 

▶ 주로 촛불부스팀에서 봉사하는 전현진(20세)양은 수차례 봉사에 참여했다.

▲ 전현진 학생

이왕 집회에 참여하는 마당에 의미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해 자원했다. 일하다보면 시민들이 이것저것 많이 챙겨준다. 핫팩을 주고 가는 시민도 있고 먹을거리도 준다. 자원봉사자들끼리 서로 도와주고 배려하는 것도 배운다. 행복한 경험이었다.

▶경기도 포천에 사는 황모모(51세)씨는 촛불부스팀에서 다섯 번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 황모모씨

촛불 집회에 두 번 나온 후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유시민씨가 연대감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을 기억한다. 혼자 살아 함께 나올 사람도 없었는데 봉사자들과 함께 일하며 '연대감'을 느끼게 되었다. 광장에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 연대감을 느끼게 되었다. 한번 나오면 8시간씩 서 있는 것이 힘들지만 그래도 이렇게 도울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다.

▶ 촛불부스팀과 안전지킴이팀에서 봉사하는 최형민(15세)군과 김진호(15세)군은 친구사이다. 둘 다 서울 성수동에 산다.

▲ 최형민 학생과 김진호 학생

김진호군은 중학생 봉사자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날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후에 친구들 일곱 명을 데리고 왔다. 집회에 왔다가 형광조끼 입은 사람들을 보고 이들이 무슨 일을 하나 궁금해서 참여했다. 주로 안전지킴이 일을 했다. 시민들이 칭찬해줄 때 기뻤지만, 가끔 술 취한 사람들이 막말할 때 좀 힘들었다. 꿈은 소방관이다.

최형민군은 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나누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친구 진호 소개로 봉사하게 되었다. 아홉 번 봉사에 참여했다. 오늘은 심정이 오묘하다. 끝나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박근혜 퇴진’이 되어서 새롭게 시작하는 거라 기쁘기도 하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좋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서 기뻤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꿈은 환타지 소설작가다.

촛불부스팀이 어디서 활동하는지 찾아가보았다.

▲ 촛불 부스팀

 

▶ 안전지킴이를 자원한 인천 원당동에 사는 김해인(15세)학생은 열두 번 봉사를 나왔다.

▲ 김해인 학생

원래 봉사 하는 일을 좋아한다. 3차 집회부터 참석했는데 봉사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다. 주로 통행로 확보하는 일을 한다. 가끔 어른들이 어리다고 말을 안 들어주기도 해서 속상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즐겁게 일한다. 꿈은 경찰이나 군인이 되는 것이다.

안전지킴이가 일하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 안전지킴이의 일을 따라가 보았다. 통행로 띠를 테이프로 고정시키고, 중간에 서있는 시민을 이동시키고, 통행길로 사람이 지나다니도록 안내하는 안전지킴이들

 

▶ 무대지킴이를 자원한 김민석(21세)군은 경기도 용인에 산다. 학생이다.

친구들과 집회에 나왔다가 피켓 들고 구호 외치는 것이 용기가 안 나서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가끔 무대 앞에서 시민들이 흥에 겨워 일어서서 춤도 추면 앉으라고 말씀드리고, 술에 취해 무대에 막 오르려고 할 때 막는 일을 한다. 헌재 탄핵 심판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밤엔 가슴이 떨려서 잠을 못 잤다. 혹시나 탄핵이 기각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다. 탄핵이 되어 너무 기쁘지만 오늘이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마지막 날이라고 하니 아쉽기도 하다.

김민석 군을 따라가 보았다. 무대 뒤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받는다. 4인씩 2조로 나누어 1조가 먼저 들어가서 무대 앞에서 자리를 잡는다.

▲ 무대지킴이팀 단체사진. 가운데 안경 쓴 이가 김민석 학생

 

▲ 위 사진은 무대 오른쪽에 자리를 잡은 무대지킴이 2명 / 아래 사진은 순식간에 무대로 뛰어들려는 사람을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무대지킴이팀

 

▶ 서울 천호동에 사는 황영욱(38세)씨는 영상편집을 하는 회사원이다.

▲ 황용욱씨

15회 이상 자원봉사에 참가했다. 무대지킴이, 안전지킴이, 촛불부스팀에서 두루두루 활동을 한 ‘자봉의 달인’이다. 세 팀 모두 크게 어려운 점은 없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대의를 갖고 모였지만 각자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다를 수 있다. 각자 다양한 요구사항을 드러내는 모습이 재미있다. 세세한 요구사항까지 하나로 통일하라는 것은 전체주의 아닌가? 민주주의란 원래 시끌벅적하고 어지러운 거라고 생각한다.

가끔 자신의 요구가 우선인 사람들끼리 ‘화’를 내는 경우도 본다. 하지만 시민들 스스로 ‘화’에 한계를 정한다. 자리를 뜨면서 갈등상황이 확장되는 것을 피한다던지 주변 사람들이 갈등상황이 폭력상황으로 커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것에 따르기도 한다. 시민의식이라고 볼 수도 있고 집단지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것이 불상사 없는 집회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촛불광장은 어떤 조직이나 누구의 주도하에 움직이는 곳이 아니었다. 시민들 각자가 스스로 찾아왔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느끼고 결정해서 움직였다. 집회가 끝나서, 이제 토요일에 내 생활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3시 10분 경 자원봉사자를 무대에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발언기회를 받은 자원봉사자 4명이 무대에 등장했다. 자원봉사자들의 발언을 들으면서 시민들은 웃음과 박수로 화답해주었다. 

 

저녁 8시가 되었다. 촛불부스팀도 철수하고 안전지킴이팀도 철수했다. 밤 10시까지 무대가 열리고 있는 무대 앞에 무대지킴이들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 김해인양이 주변의 쓰레기를 주어 봉투에 담는 마무리까지 확실하게 하는 모습.

 

▲ 일을 마친 안전지킴이팀과 촛불부스팀. 지쳐보인다.

촛불부스팀과 안전지킴이들이 메인부스에 모여 마지막 남은 초를 종이컵에 끼워 나눠주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떤 이는 구멍을 뚫고 어떤 이는 초를 끼고 어떤 이는 열심히 나눠준다.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던지...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 저녁 8시가 넘었다. 남은 촛불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려 열심히 분업하는 자원봉사자들

 

'박근혜 퇴진’은 탄핵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농단에 관련된 위법 사실을 낱낱이 밝혀 책임을 물어야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사드배치, 위안부합의, 검찰개혁, 언론개혁, 재벌개혁 등 해결해야 할 문제도 수두룩하다. 각자가 요구하는 다른 상황들이 민주적으로 어떻게 조율되고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 또한 광화문 촛불시민들의 과제일 것이다. 

다음 집회는 25일 열린단다. 세월호 3주기를 앞둔 4월15일에도 광화문 광장에 집회를 연다. "촛불시민 33명이 말하는 '탄핵, 봄 그리고 대한민국" 이라는 제목의 <한겨레> 기사는 이번 헌재 인용 판결에 세월호 문제가 담기지 않은 것을 아쉬워 하는 시민이 많음을 보여주었다. 3.25 집회의 이슈는 무엇일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삼성동 사저에 간 박근혜가 이슈를 계속 만들어 줄테니 말이다. 지난 10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탄핵 결정 잘했다’는 의견이 86%, '결과에 승복한다’는 의견이 92%다. 하지만 13일 청와대를 떠나 사저로 간 박 전대통령은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며 또다시 국민과 재대결을 선포했다. 결국 구속되어 감방까지 가야 승복할 모양이다. 춥고 고된 겨울을 난 자원봉사자들의 화창한 토요일 봄을 다시 빼앗으려나. 

[관련기사 보기] 촛불시민 33명이 말하는 '탄핵, 봄 그리고 대한민국'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86172.html

사진 : 김미경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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