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도항에서 바라다본 마을 풍경

꿈에 그리던 풍도행 뱃길에 올라

▲ 후망산에서 내려다 본 풍도 마을과 앞 바다

꽃산행, 올해의 답사 1번지는 풍도로! 나의 제안에 꽃동무 모두 의기투합하여 2달 전에 결정했다. 여러 해 전부터 봄꽃 답사지로 유명해진 그 섬, 풍도에 가고 싶었다. 동호회 따라 떼로 패로 몰려가긴 싫고 그렇다고 혼자서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여태껏 실행하지 못했다. 20일 전에 배편과 펜션을 예약하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풍도 뱃길에 올랐다. 혼잡을 피해 평일을 택했건만 동승하는 사람 대부분 카메라에 삼각대까지 메고 가는 걸 보면 꽃사진 찍으러 가는 사람들일 터이다. 9시 반에 출발했지만 대부도 방아머리와 육도에 들러 가는데다가 기상 조건이 여의치 않아 오후 1시 반이 훌쩍 넘어서야 풍도에 도착했다. 미리 마중 나온 주인아주머니 차를 타고 선착장에서 조금 떨어진 펜션에 당도했다. 새벽부터 서둘러 나선 통에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한데다가 늦은 점심인지라 조촐한 가정식 식단이지만 처음 먹어보는 전호 무침에 계절 음식 산달래 무침까지 나와 미각을 돋운다. 우리 모두 반주로 막걸리까지 곁들여 배불리 달게 먹었다.

 

주민의 염원 담아 楓島를 豊島로

풍도, 風島일까, 豊島일까? 섬이라 바람이 많을 테니 風島겠지. 궁금하여 검색해 보았더니 풍년 풍자 豊島란다. 도대체 뭐가 풍부하담? 나중에 섬에 들어가서야 알게 되었다. 조선시대까지만도 豊島가 아니라 단풍나무가 많다고 하여 단풍섬, 楓島였단다. 섬이 작아 자급자족할 만한 농산물도 없고, 그렇다고 섬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해산물도 넉넉하지 못해 주민들은 뭐든 더 풍성해졌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서 풍요로운 섬, 豊島라 하였단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봄부터 꽃구경 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를 정도로 풍요로운 섬이 되었다.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이다. 가을이면 하늘빛과 바다색이 어우러진 단풍이 절경이라서 조선시대에는 당진팔경 중 여덟 번째 ‘풍도요망(楓島遙望)’에 속할 정도로 아름다운 섬이었다고 한다. 본래는 남양군 대부면이었는데 경기도 부천군으로, 다시 옹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994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안산시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인구 약 160명 정도가 살고 있는 풍도는 면적이 1.843km²이고, 동경 126˚, 북위 37˚에 위치한다. 풍도항에서 바라다보니 당진항이 가깝게 보이고 영흥도 화력발전소도 훤히 보인다.

 

인조가 심었다는 어수거목(御手巨木) 은행나무

▲ 어수거어 은행나무 노거수

풍도의 유일한 산, 후망산 중턱에는 수령 500년은 족히 보이는 은행나무 노거수 두 그루가 육중하게 서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인조의 은행나무라고 부른다.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이 난을 일으켜 한양 도성에 침입하자 인조는 난을 피해 가다가 이 섬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는데 이 때 기념으로 심은 나무라고 전한다. 마을 사람들은 은행나무 아래에 정자를 짓고 쉼터로 이용한다. 정자에 올라 보면 풍도 마을과 항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자 아래쪽에는 은행나무 노거수가 수맥을 끌어당겨 생긴 옹달샘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은행나무샘, 수량이 풍부하고 물맛이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단다. 지금은 물이 말라 있고 안에는 빈 표주박 하나에 은행잎만 수북하게 쌓여 있다.

 

밭 가장자리 광대나물, 개지치와 첫대면

▲ 밭 가장자리에서 첫대면한 광대나물
▲ 밭 가장자리에서 첫대면한 개지치

늦은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꽃산행에 나섰다. 후망산 오르는 길가 밭 가장자리에 땅이 안 보일 정도로 덮고 있는 광대나물이 맨 먼저 내 눈길을 끈다. 겨우내 움츠리고 지내다가 다사한 햇볕에 분홍빛 꽃망울 몇 개가 가까스로 피어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냉이도 피기 시작하고 그 옆에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잎에 하얀 꽃망울을 달고 있는 개지치도 보인다. 오래 전에 홍릉수목원에서 처음 보았는데 여기서 또 만날 줄이야.

 

탐방객들을 위한 마을 어르신들의 노고

▲ 활짝 핀 개복수초

시멘트 포장길을 지나 산길에 들어서니 벌써 야생화 사진꾼들이 다녀갔는지 길이 반질반질하다. 우리보다 앞서 온 사람들이 여기저기 엎드려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어떤 곳은 줄을 쳐서 들어가지 못하게 한 구역도 있고 어떤 곳은 사진을 찍기 좋게 줄딸기 덩굴을 걷어낸 곳도 있다. 마을 어르신들께서 탐방객들을 위해 미리 정비해 두었다고 한다. 이 섬에 들어온 사람이면 누구나 약간의 입도비를 내는 까닭도 여기에 있으리라.

 

지천으로 피어 있는 개복수초

▲ 개복수초 잎과 꽃
▲ 활짝 핀 개복수초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낙엽수림 아래 줄딸기 사이사이로 무더기무더기 피어 있는 복수초가 여기저기 흔하게 보인다. 복수초는 노란색이라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화창한 봄날 오후 뭍에서 보는 복수초와는 달리 지름 3~4cm 정도로 더 커 보이는데 황금빛 꽃잎이 접시 모양으로 벌어져 유난히 햇빛에 반짝인다. 이곳의 복수초는 뭍에서 흔히 만나는 복수초에 비해서 줄기가 많이 갈라지고, 꽃과 잎이 함께 발달하며, 잎자루와 잎 뒷면에 털이 없다. 또한 꽃받침조각의 길이가 꽃잎보다 짧아 학자에 따라 이것을 개복수초로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변산바람꽃보다 크고 탐스러운 풍도바람꽃

▲ 변산바람꽃보다 크고 탐스러운 풍도바람꽃1
▲ 변산바람꽃보다 크고 탐스러운 풍도바람꽃2
▲ 변산바람꽃보다 크고 탐스러운 풍도바람꽃3

처음엔 24mm 렌즈로는 찍는데 키 작은 꽃의 특징을 잘 잡을 수가 없다. 100mm 렌즈로 바꾸고 삼각대를 거치하여 싱싱하고 풍성한 모델을 골라 정성 들여 찍어 보았다. 복수초에 비해서 풍도바람꽃은 개체수가 그리 많지 않고 키도 작고 꽃이 더 작지만 깜찍하고 탐스럽다. 황금빛 복수초가 화려하다면 하얀 풍도바람꽃은 앙증맞다고나 할까. 한국 특산종인 변산바람꽃에 비하면 하얀 꽃받침이 더 커 보인다. 특히 꽃받침 안쪽 꿀샘이 들어 있는 꽃잎은 깔때기 모양인데 노란빛이 도는 녹색이라서 하얀 꽃받침과 푸른빛이 도는 수술과도 대조를 이룬다. 이런 특징에 주목하여 충북대학교 오병운 교수는 2009년 한국식물분류학회지에 “Eranthis pungdoensis B.U.Oh”란 학명으로 신종 발표하였다. 그러나 아직은 국제적으로 공인을 받지 못한 상태이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분홍색 노루귀

▲ 솜털 보송보송한 노루귀

다른 꽃들이 밟힐까 조심스럽게 옮겨 다니며 살피다가 드디어 무더기로 피어 있는 은은한 분홍빛 노루귀 여러 송이를 발견했다. 이른 봄 잎이 말려서 나올 때 그 모습이 마치 노루귀를 닮았다 하여 노루귀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학명으로는 “Hepatica asiatica Nakai” 라고 하는데 속명 ‘Hepatica’는 간장(肝腸)이란 뜻의 라틴어 ‘Hepaticus’에서 온 말로 그 모양이 사람의 간장 모양과 비슷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같은 사물일지라도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노루귀는 꽃 색깔이 흰색, 청색, 분홍색 등 3가지가 있다. 생태적 환경에 따른 변이로 생각되지만 이에 대한 연구 논문은 아직 접해 보지 못했다. 내 경험으로는 비교적 높은 지대의 산에서는 흰색 노루귀가 많아 보이고, 낮은 지대의 산에서는 분홍색이 많아 보인다. 중간 지대의 산에서는 분홍색, 청색, 흰색의 노루귀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키가 작은 봄꽃을 찍기 위해서는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다른 꽃이 깔리지나 않을까 조심스럽게 땅에 엎드려 보송보송한 솜털이 잘 잡히게 역광으로 노루귀 촬영을 시도해 보았다.

 

키 작은 봄꽃들의 생존 전략

▲ 딱 한 개체 만난 현호색

현호색 딱 한 개체가 ‘나도 여기 있어요!’ 하고 속삭이듯 내 발길을 멈춰 세운다. 이른 봄에 피는 복수초, 풍도바람꽃, 노루귀도 모두 다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한다. 이들은 모두 키가 작으니 다른 풀들이나 나무들과 경쟁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 광합성을 할 수 있고, 그래야 영양분을 만들어 뿌리줄기에 저장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초목들이 무성해지기 전에 싹을 틔우고 서둘러 꽃을 피워 수정해야 결실을 풍성하게 할 수 있다. 식물들도 경쟁에 밀리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식물에게도 나름의 전략이 있는 것이다.

 

후망산 정상을 넘어가며

▲ 풍도에서만 볼 수 있는 풍도대극 1

벼르고 별러서 예까지 왔으니 풍도에서만 볼 수 있다는 풍도대극도 만나야 한다. 다른 꽃쟁이들에게 물어 보니 정상 넘어 군막사 부근의 내려가는 길에 있다고 알려 준다. 사진을 찍으려면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도착해야 한다. 오르는 길에는 잎을 다 떨군 상수리나무, 굴피나무, 단풍나무, 때죽나무, 두릅나무 등 활엽수가 많고 아래쪽은 줄딸기 덩굴이 뒤덮고 있어 쉽게 들어갈 수 없을 지경이다. 우람하게 자란 곰솔 이외의 상록수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푸른 잎을 자랑하는 줄사철나무가 간간이 보일 뿐이다. 줄사철나무는 줄기에서 뿌리가 나와서 다른 나무에 붙어서 타고 올라가며 자란다.

후망산 정상에 올라

높이 175m의 후망산 정상에는 KT 통신시설이 자리 잡고 있는데 윙윙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주위에는 큰키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어 멀리 조망할 수 없다. 풍도 앞바다는 1894년 7월 25일 청일전쟁 당시 1,100여 명의 청나라 병사가 탄 고승호가 일본 군함의 포탄을 맞고 가라앉은 곳이란다. 얼마 전까지도 후망산 꼭대기에 일본이 승리의 깃발을 꽂았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후망산은 일본과 청나라가 아산만에서 교전할 때 청나라 군사가 이곳 정상에 올라 망을 본 산이라 하여 호망산(胡望山)이라 하였는데 후대에 음이 후망산으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남의 나라 군대가 내 나라 땅에 제멋대로 들어와 전쟁판을 벌이게 한 우리나라 지난 역사가 부끄럽다.

 

풍도에서만 볼 수 있는 풍도대극

▲ 풍도에서만 볼 수 있는 풍도대극 2
▲ 풍도에서만 볼 수 있는 풍도대극 3

조금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오고 펜스에 둘러싸인 군막사가 보인다. 도로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로 조금 내려가니 먼저 온 사람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대극과 대극속 식물들은 보통 새 잎이 돋아날 때 붉은빛을 띤다. 이제 막 돋아나는 풍도대극 역시 잔털이 많은 붉은 잎에 감싸여 있는데 일찍 나온 것은 막 꽃이 피기 시작한다. 얼핏 보기엔 장성 백암산이나 여수 금오도에서 이맘때 만나봤던 붉은대극과 비슷해 보인다. 풍도대극은 북한에서는 풍도버들옻이라고도 하는데 박만규의 <우리나라식물명감(1949)>에 처음 등재되었다. 이곳 풍도에서 처음 채집한 표본을 기준표본으로 하여 일본의 식물학자 Hursawa가 1940년에 붉은대극의 변종으로 보고 학명 "Euphorbia ebracteolata var. coreana Hurus."라는 신종으로 기재한 것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풍도대극은 붉은대극에 비해 잎이 더 좁은 편이며, 모인꽃싸개잎 안에 털이 밀생한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나라 도감에서는 풍도대극에 대한 자세한 기재문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쉽다.

 

서쪽 해안의 장관 북배와 흉물스런 골재 채취장

▲ 서쪽 해안가 붉은 바위 절경 북배
▲ 흉물스럽게 방치된 골재 채취장
▲ 산허리 잘려나간 채 방치된 골재 채취장

내친김에 푸른 바다와 붉은 바위가 어우러져 아름답다는 서쪽 해안 북배까지 가보기로 하고 등산로를 따라 내려갔다. 붉은 바위가 길게 펼쳐져 있다고 해서 북배라 했다는데 미상불 해안의 침식에 의해 드러난 붉은 바위가 길게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잠시 북배를 조망하고 바로 오른쪽으로 돌아서니 산허리가 뭉툭 잘려나간 골재 채취장이 나온다. 장관을 이루는 북배와 흉물스럽게 드러난 골재 채취장이 대조를 이루어 눈길을 끈다. 골재는 골재대로 걷어낸 흙은 흙대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돌을 캐내어 잘게 깨다가 멈춰 선 기계는 시뻘겋게 녹이 슨 채 방치되어 있다. 펜션 주인아주머니에 의하면 거금 12억을 투자해 개발했는데 파산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허가를 내준 관계기관에서는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고 허가를 내주었는지, 또한 파산 후 달아난 사업자를 추적하여 파괴된 환경복원 명령을 내리기나 했는지 알 수 없다.

 

수액을 채취당하는 고로쇠나무

▲ 수액을 채취당하는 고로쇠나무

산모퉁이를 돌아서 숙소로 오는데 고로쇠나무가 많이 보인다. 나무마다 줄기에 구멍을 내어 수액을 채취하기 위해 페트병을 매달아 놓았다. 아무리 감각이 없는 나무라할지라도 생명체인데 하는 생각에 오늘따라 언짢아 보인다. 언젠가 중국 여행할 때 가 본 적이 있는 대규모 곰 사육장이 생각난다. 외국 여행객 상대로 외화 벌이 목적으로 국가기관에서 지어 놓았다고 한다. 좁은 철창 안에 곰을 가두어 놓고 담낭에 구멍을 내어 호스를 연결해 웅담을 빼낸다. 탈진한 듯 쓰러져 누워 있는 곰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돈이 되면 못할 짓이 없는 인간, 인간도 지구 생태계를 구성하는 일원일 뿐인데 자칭 만물의 영장이랍시고 주인 행세를 한다. 생태계의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살아갈 날이 언제나 도래할까?

이호균 주주통신원  lee1228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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