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흙과 물과 불이 만난 인류 최대의 예술품

<도자기 작품>

물을 넣어 반죽한 흙에 열을 가하면 단단해진다는 것을 안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점토로 모양을 만들고 불에 구운 토기에 물 등을 넣어 사용했다. 이후 1,300도 이하에서 질그릇을 구우면서 도기(陶器)의 시대가 온다. 도기의 발명은 인류 역사에서 획기적 지표라 할 정도로 인류 문명의 중요한 시작이다. 자기(瓷器)는 순백의 고령토를 빚어 그 위에 유약을 바르고 1,300∼1,500도의 높은 온도에 구워낸 것이다.

중국 도자기는 세계 최고 기술을 가졌다. 당나라 때부터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가 원나라 때는 무역 상품으로, 명나라 때는 외국 사절에게 증정한 진기한 선물로, 청나라 때는 예술품으로 그 절정을 이뤘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도자기를 ‘차이나(china)’라고 불렀다. 영국의 ‘본차이나(Bone china)’는 흙에 동물 뼛가루를 넣어 구워 더욱 단단하게 만든 자기다. 영국도 도자기의 원조 ‘차이나’란 명칭을 뗄 수 없을 만큼 도자기 하면 중국이다.

▲ 중국 도자기 역사

중국의 자기는 당나라의 ‘당삼채(唐三彩 백, 갈, 녹색의 삼채 유약을 사용한 도기)’와 ‘월요비자색자기(월요에서 구운 비자색이 나는 자기)를 거쳐 송나라에 이르러 청자와 백자로 발전한다. 청자는 한나라 시대 때 시작되었고, 백자는 당나라 때 시작되었지만 송나라 때 와서야 그 이름을 널리 떨치게 되었다. 모양이 소박하고, 색깔이 단순하며, 깨끗한 광채의 아름다움을 가진 단아한 자기로 그 예술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송나라에는 5대 명도요지가 있다. 관요, 가요, 균요, 정요, 여요이다.  각 도요지에서 만들어내는 도자기는 조금씩 그 특징이 다르다.

▲ 남송의 관요에서 제조한 자기로 그 색이나 모양이 소박하고 수수하다.

▲ 가요자기의 특징은 표면이 자연적으로 갈라진다는 것이다. 대면적의 검은색 무늬와 소면적의 겨자색 무늬가 서로 얽혀 있는데 이를 금사철선이라 부른다.

▲ 투명한 가요자기

▲ 북송 정요에서 만들어낸 백자 술병. 정요는 유일하게 백자기를 굽는 가마이다.

▲ 정요자기는 꽃을 새기고 찍는 장식을 중요시한다. 인화수준은 송나라 5대 명요 가운데 으뜸을 자랑한다.

▲ 원나라 때는 청화자기가 발전했다. 원나라 시대의 청화 유리홍이다. 단색의 청화보다 더욱 귀하고 희소하다. (원나라 청화자기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명나라 홍무 2년, 국가에서 관리하는 도자기 공장이 징더전(景德鎭, Ching-te-chen, 江西省 북동부도시)에 설립된다. 전국에서 최고의 장인을 모으고 최고의 자토를 이용해 황실에서 사용하는 도자기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국가가 자기를 생산·관리하는 ‘관요자기’ 시대가 온 것이다. 자기를 민간에서 생산하고 매매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배합 방법과 굽는 방법 또한 엄격하게 비밀에 부쳤다. 이로 인해 도자기 제조 기술이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생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대량 생산된 도자기는 인도, 아라비아 반도, 유럽, 아프리카까지 팔려나갔다

▲ 명(明), 성화연간(成化, 1465~1487) 투채(鬥彩) 항배(缸杯).

투채(鬥彩)란 고온에서 구워지는 유화채인 청화와 저온에서 구워지는 유상채인 채색유를 결합한 기법으로 수차례 가마에 들어갔다 나와야 완성 되는 자기다. 위 찻잔의 주인은 명나라 성화 황제다. 550년 전 성화 황제는 17살 연상인 여자의 환심을 얻기 위해 징더전 장인들을 시켜 작고 깜찍한 술잔을 만들어 그녀에게 주려 했다. 암탉 무늬가 새겨진 것을 투채계향배, 나비, 난화, 풀 무늬가 새겨진 것을 투채삼추배라고 부르는데 현재 전 세계에서 10여개뿐이다. 그때의 문인들은 이 잔을 술잔 가운데서 최고의 진품이라 불렀다.

 

▲ 명나라 청화자기. 청화자기는 당나라 때 시작되었지만 명나라 때 발전하여 수량이나 품질에서 모두 절정에 이르렀다. 

명나라는 '관요'가 도자기 제조를 주도했다면, 청나라 때는 민간 도자기 공장인 '민요'도 도자기 제조에 동참하게 된다. 청대 강희 시기에 징더전에 궁중용 도자기를 제작하는 '어요'를 짓고, 일정 수량의 궁중용품은 능력있는 ‘민요’에 위탁하여 제작하면서 '민요'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런 민.관요의 발전으로 청나라 때는 중국 도자기 산업이 최고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또한 분채와 범랑채색 기술이 응용되면서 화려하고 정교한 도자기들이 만개하게 된다. 특히 강희, 옹정, 건륭 세 황제는 도자기 사랑이 각별했다. 강희 시기에 법랑채색 도자기가 완성되었고, 건륭 시기에 징더전 인구는 백만 명에 이르렀다. 황실 도자기를 만드는 어요지만 23개에 달했다.

 ▲ 청나라의 강희 시기 홍유자기(유약에 동을 넣어 구운 자기)

▲ 청나라 법랑채색 도자기

청 건륭 시기에 징더전 관요의 최고 책임자는 ‘당영’이었다. 건륭 13년 66세인 당영이 황제의 어지를 받아 467점의 도자기를 구웠다. 황제는 새로운 방식의 도자기를 명했으나 구식으로 제조했다며 사용된 비용을 전부 당영이 부담하게 했다. 이에 분발한 당영은 새로운 창작품 ‘교태병’을 만들게 된다. ‘교태’란 ‘역경’에 나오는 말로 하늘과 땅이 서로 통해 운수가 형통하다는 뜻이다. ‘교태병’은 하늘과 땅처럼 상하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서로 고리처럼 걸려있어 움직일 수는 있지만 분리시킬 수 없는 독특한 도자기다.

▲ 당영이 제조한 분채팔괘여의전심교태병

 

<법랑기>

금속 표면에 유리 재질의 유약을 발라 구워내는 공예품으로 명나라 때 불랑(拂郞)이라는 지명에서 전래하여 법랑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법랑의 제작기술은 겹사, 내전, 화법랑의 3종류이다. 명나라 때 발전하여 청나라 때 전성기를 이루었다.

아래 사진은 대부분 청나라 때 법랑기라 생각된다.

 

 

 

▲ 법랑기와 보석공예의 합작품.

  

<기타 공예품>

▲ 보석 공예. 박혀 있는 파란 돌이 터키석이다. 붉은 돌은 산호가 아닐까 하는... 

▼ 아래 두 작품도 보석을 이용한 공예품으로 보인다.

 ▲ 유리 공예

▲비연(코담배)을 넣는 유리공예품

▲ 칠보 공예

▲ 금속공예품

 

이밖에 죽공예품, 옻칠공예품 등 다양한 공예품들이 많았지만 다 담지는 못했다. 또한 사진 설명은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므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혹 잘못된 점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었으면 한다.

참고 문헌 : 고궁박물원 그 정수를 만나다(출판 : 국립고궁박물원)

참고 사이트 : http://kr.cntv.cn/20131016/103173.shtml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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