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를 바탕에 둔 공존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신 듯,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듯 했다.

"내게 시간이 얼마 없어" 하시며 의자를 당겨 앉으신다. 이야기를 들어 드려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팜플렛 배포에 분주하던 나를 굳이 불러 옆에 앉혀놓고 두서없이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그래서 예정에 없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젊은이로서 대통령 탄핵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을 하셨지만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문자답 식으로 혼자 이야기를 펼치셨다. 필자는 주로 일장연설을 듣는 입장이었다.

말씀을 요약하면 '임명직이 아닌, 국민들로부터 위임 받은 선출직을 국회나 대법원이 정치적, 법적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정당하냐' 라는 것이었다.

"80% 이상의 국민이 탄핵에 찬성하고 무엇보다 법을 어겼으니 법적으로 단죄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자 "탄핵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야" 라면서도 뭔가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 듯 보였다.

안종섭옹은 개구리와 붕어 미꾸라지 등이 살아가는 호수의 비유로 말문을 열었다.

"호수는 이 세상의 '정의'와 같다. 개구리는 물이 말라가면 뛰쳐 나와 다른 길을 찾지만 붕어나 미꾸라지는 물이 말라버리면 그 안에서 죽고 만다. 그렇다고 개구리가 다른 데 가면 살아남겠는가! 좀 더 버틸 수는 있지만 결국은 죽고 만다. 이 세상은 생명의 근원인 물과 같이 정의를 위해 일치 단결하는 것이 공존의 길이다."

또한 솥의 비유로 안보도 말씀하신다. "예전에 농부가 쇠죽을 끓일 때 솥에 개구리도 넣고 미꾸라지도 넣어 여물을 끓였다. 솥 안의 개구리와 미꾸라지는 언제 물이 끓어 자신들이 죽게 될지 전혀 모른 채 죽어간다. 물이 뜨거워져 다 죽기 전에 '물이 뜨거워진다' 라고 소리쳐 지켜야 하듯 안보도 너나 할 것 없이 일치 단결해 지커야 한다."

그럼 "개구리나 붕어, 미꾸라지가 호수의 물이 말라가는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있습니까?" 라고 묻자

"생존의 몸부림을 쳐야 한다. 단합해야 하고 눈밝은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그리고 공무원이 정신차려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 안종섭옹(86)

안종섭 주주는 6.25 때 학생 신분으로 징집되어 어딘지 모르는 전선으로 갔다가 영천 근처의 안강전투에서 폭탄 파편을 맞고 미군부대로 후송되어 생사를 넘나들다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공식 군인 신분도 아니고 근거 입증이 미흡하여 국가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단다. 무릎과 허벅지에 깊게 패인 파편자국을 보여주며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는 안종섭 주주는 나라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 안종섭옹이 6.25 때 폭탄 파편에 맞은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

헤어져야 함에도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시는 어르신은 고맙다며 전화번호를 알려주신다. "다음에 꼭 연락해" 라며... <문화공간 온>에 꼭 한 번 들르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은 돌아가시는 길에 다시 한번 내게 들러 손을 꼭 잡아주신다. "고맙네"

살 시간이 많이 없다던 어르신이 젊은 후세들에게 꼭 남기고 싶은 말씀은 '안보를 바탕에 둔 공존'이라고 요약해 본다.

 

편집 : 양성숙 부에디터, / 웹출판 : 안지애 편집위원

김진표 주주통신원  jpkim.internationa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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