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6살때 유아세례를 받았다. 내가 영세를 받으면서 함께 받았다. 예쁜 양복 입고, 사람들에게 선물도 받고, 꽃다발도 받고 신이 나서 받았지만 뭐가 뭔지 모르고 그냥 받은 거다. 그 나이에 종교가 뭔지 알겠는가? 아들은 가족과 일요 대미사에 가는 것을 싫어하진 않았다. 다만 주일학교는 피하려고 했다. 단체 활동을 싫어하는 아들의 성격을 알기에 강요하지 않았다. 5학년 때 성당 친구 ‘규’가 생기면서 주일학교에 가게 되었다. 초등부 미사가 끝나고 다 같이 몰려가는 분위기 때문에 ‘규’의 손에 이끌려 따라다녔다. 초등부 주일학교 선생님께서도 아들에게 관심을 많이 베풀어주셔서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투덜대면서도 가지 않았나 싶다.

▲ 5학년 첫영성체 날. 순전히 영성체 맛이 궁금해서 첫영성체를 신청했다고 했다.

중학교부터는 미사 참여도 싫어했다. 중·고등부 미사에 같이 가곤 했는데 뒤에서 보면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는 등 지루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제 누나가 중고등부 성가대 단장을 해서 누나의 부탁으로 성가대에 들어갔다. 성가를 방긋방긋 부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아들은 시들시들 마지못해 불렀다. 누나에게 '그런 식으로 할 거면 성가대 오지 마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누가 봐도 하기 싫은 태도가 두드러져 ‘쟤 엄마 누구예요?’ 할까 걱정될 정도였다.

중학교 2학년부터는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종교를 선택했으니 엄마가 강요한 거라고 주장했다. 불교도 궁금한데 불교에 대해선 알 기회마저 없으니 종교 선택의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라 했다. 미사에 가선 왜 내가 여기에 있는지 의문이 들지만, 빠지면 뭔가 잘못한 것 같아 종교라는 것이 죄의식만 준다고 했다. 한 6개월 시달리다가 자유를 주었다. 그래도 미사만는 꼭 가야한다고 강제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겠지만, 억지로 가면서 싫은 생각으로 가득 차있는 것보다 나중에라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아들은 그 이후,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성당에 가지 않았다.

그러던 아들이 캐나다로 간 지 한 달도 안 돼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교회에 다니기로 했다는 것이다. 여름에 와서도 '잘 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러 1번, '잘 다녀오겠습니다.' 하러 1번, 딱 두 번만 성당에 가자고 해도 단호히 거절했던 아들에게 뭔 일이 생긴 걸까?

사연인즉 이러 했다.

아들이 캐나다에 도착한 후 처음 맞닥뜨린 문제는 학교배정 문제였다. 홈스테이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학교를 놔두고 스쿨버스로 이동하는 학교로 배정 되었다. 집에서 가까운 학교는 교육청에 지원서를 넣기 전에 국제학생 정원이 마감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전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스쿨버스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은 방과 후 학교활동이나 특별수업 참가를 어렵게 한다. 2년간 캐나다 생활에서 이를 경험한 아들은 교육청에 전학을 계속 요구했다. 홈스테이 부모님도 아들의 입장을 지지하며 항의한 끝에 2주 만에 전학 되었다. 자리가 난 건지 아들과 홈스테이 부모님의 계속된 요구에 지쳐서 들어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은 학교생활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며 좋아라 했다.

새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3일 후, 어떤 훤칠한 동양학생이 학교 앞에서 누군가를 찾다가 아들과 눈이 마추치자 “이 학교에 한국학생이 한 명 왔다는 소문이 퍼졌는데, 너 한국학생이냐” 확인하더니 다짜고짜 “토요일에 교회 가자.”고 했다는 거다. 일 년에 단 2번만 성당 가는 것도 거부하는 아들이 교회는 가겠는가? 하지만 아들은 교회에 다니기로 결정했다. 아들을 꼬이기 위해서 한 말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예배 끝나면 한국음식 준다.” 

한국에 있다가 캐나다에 가면 한 달 정도는 한국음식이 그리워서 호스트가 주는 음식이 잘 안 넘어 간다고 했다. 한 달 정도 지나면 입도 슬슬 포기하면서 적응을 시작하는데 그 시점 바로 전에 ‘밥 퍼주는 교회’가 등장한 것이다. 아들이 사는 곳은 한국 사람이 많지 않은 지역인데 한국교회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밥을 무기 삼아 어린 학생들을 싹싹 데려가는 전도력, 아마 세계 최고일 거다.

아무리 밥이 그리워도 교회에 얽매이기 싫었던지 아들은 2가지 조건을 달고 교회에서 허락하면 다니겠다고 했다. 첫째, 교회에 가는 것은 밥을 주기 때문이다. 둘째, 매주는 아니고 2주에 한 번씩만 가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노골적으로 말을 하는 아이가 있을까? 그 말을 들은 형은 재미있다는 듯 낄낄 웃었다고 했다. 형이 학생전도 담당집사님께 아들의 말을 전했을 텐데, 오지 말라고 안했다 하니 참 너그럽다 싶다.

그렇게 아들은 주말이면 집에서 2분 거리에 있는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밥을 어찌나 맛있게 해주는지 2주에 한 번이라는 스스로 지침을 어기고 거의 매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배터지게 갈비도 먹고, 비빔밥도 먹고, 고기 듬뿍 들어간 카레도 먹고, 짜장면도 먹고... 어떤 날은 샌드위치를 줘 괜히 왔다는 생각도 들고, 어떤 날은 남은 밥을 버린다 해서 위생 비닐에 담아 얻어 오기도 하고..

불순한 의도로 교회생활을 시작했으니 예배 태도 역시 불량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조용한 미사만 참여하던 아들은 역동적인 예배에 익숙하지 못해 웃음을 참느라 곤욕이라고 했다. 목사님이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이 중간에 ‘아부지!!! 아멘!!’ 이라고 해서 웃겨 죽겠고.. 기도도 큰 소리로 해서 웃겨 죽겠고.. 어떤 이들은 울면서 기도를 해서.. 왜 저럴까.. 하며 자꾸 쳐다보게 되고... 사탄, 원수, 피 이런 단어들이 들어간 찬송가가 좀 무서우면서도 웃긴다고 했다. 아들이 키득거릴 때면 옆의 여학생도 웃음을 참지 못해 서로 입을 꼭 막고 눈을 마주치며 소리 내지 말라고 고개를 젓는다고 하니 미운 짓만 골라하는 아이가 하나 들어왔다고 했을 거다.

아들은 밥 때문에 억지로 가긴 했지만 교회 사람들에 대해서는 참 좋게 말했다. “엄마, 우리 성당도 착한 사람도 있지만 못된 사람들도 있잖아? 여기도 그래. 착한 사람들도 많아.” 그 형을 비롯해서 교회에 오는 학생들도 착한 아이들이고 아빠와 말투가 비슷해서 아빠 생각이 난다는 집사님도 참 친절하다고 했다. 어느 날은 아무 말 없이 인스턴트 베트남 쌀국수를 주셨는데, 유일하게 남은 밥을 싸가는 학생이라 불쌍해서 주신 것 같다고 했다. 교회에서 학생들을 단체로 토론토에 데리고 가서 한국미장원도 가게 해주고, 쇼핑도 하게 해주고, 저렴하게 스키캠프도 데리고 가주었다. 교회가 자기에게 필요한 일을 많이 해줘서.. 참 고맙다고 했다.

젊어서 교회에 한 번 발을 들여 놓았다가 혼이 난 적이 있었던지라 저러다 교회에 푹 빠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2분 거리 '밥 퍼주는 교회'를 상대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말릴 수도 없는 일이라서 그냥 아들이 하는 이야기만 잘 들어주었다. 한편으로는 멀리 있는 내가 해줄 수 없는 것을 교회에서 해주니 고맙다 생각하면서...

아들은 교회에 대하여 첨에는 주로 먹는 이야기만 하더니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말을 해준다.

“교회는 나를 너무 오라 가라 해. 어제도 오라고 해서 갔는데 오늘도 연극을 한다고 또 오라고 하네. 어제는 교회 갔다가 친구와 약속 있다고 일찍 빠져나왔어. 자꾸 교회에 오래 있으라 해서 좀 힘들어. 나 주말이면 만나야 하는 캐나다 친구들도 많은데.. ” 

“근데 나는 종교에 깊이 빠질 수 없는 스타일 같아. 여기 교회 학생들은 하느님이 뭐든지 다 인도해주실 거라고 믿어. 장래나 생활 그런 것 모두 하느님이 알려주는 길을 갈 거라고 해. 학생들이 그런 말을 하니까 좀 이상해. 나는 내 길을 내가 알아서 갈 거야.”

하하, 드디어 진화가 시작되었는지 아니면 배가 찼는지... ‘밥'보다 ‘자유’라는 생각이 슬슬 드나 보다. 밥 때문에 느닷없이 시작된 아들의 ‘나름 종교생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까? 탱탱볼같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들이라 예측할 순 없지만 아들은 은근슬쩍 이런 말도 해준다.

“엄마, 내년 여름에 한국 가면 엄마랑 같이 성당 가볼까? 아니, 아니, 큰 기대는 하지 마. 그냥 한 번 가보고 싶은 거니까”

진짜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다 큰 아들 옆에 딱 붙어서 싱글벙글 미사 보는 바보 엄마가 될 수 있을 텐데....

아들은 전도한 형은 아들과 같은 학년이다. 서로 잘 맞아 친한 사이가 되어 아들과 슬립오버도 자주 한다고 한다. 미국유학생 둘이 ‘형’ 호칭으로 싸우다가 한 명은 죽었고 한 명은 감옥에 가게 된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걱정이 되어 학년과 상관없이 무조건 나이 많으면 깍듯이 존대하고 예의를 갖추라고 했더니 이미 그러고 있단다. 굉장히 좋은 형이라며 둘이서 슬립오버하면서 멋지게 찍은 사진을 보내준다 해서 큰 기대를 했는데 ‘멋지게’가 아니고 ‘웃기게’ 찍은 사진이다. ‘영구 브라덜즈’라 부르면 될까?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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