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는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마치 속담이나 격언처럼 주고받은 말이 있다.  "여자는 절개, 남자는 의리!"

당시에 그 말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종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저개발국가로서 필리핀이나 태국보다도 일인당 GNP가 현저히 뒤처지던 시대에 사람들은 여자의 절개와 남자의 의리를 강조하며 어두웠던 한 시대를 감내했는지도 모른다. 비록 소설 속 이야기지만, 이수일과 심순애의 순애보에 열광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더불어 물질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여자의 절개와 남자의 의리를 강조하는 말들은 더 이상 회자되지 않았고, 90년대 이후에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전두환 시대에 이르러 의리라는 단어가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장세동을 필두로 한 의리파들은 전두환이 5공비리로 구속되는 상황에서도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 국민들에게 남다른 인상을 남겼다. 그 알량한 의리라고 해봐야 하나회 출신 소수집단의 특권과 이익을 위해 포장된 이미지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사실 의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 살아가는 있어서 마땅히 지켜야 바른 도리'를 뜻한다. 그런데 그 의리가 소수집단끼리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다보면 정의와 불의 사이를 교묘히 넘나들게 된다. 

장자(莊子)는, "군자의 사귐은 물같이 담백하지만, 소인의 교제는 달콤하고 이익에서 벗어나지 못하므로 곧 끊어져 버린다"고 했다. 보잘것없는 소수집단끼리 의리를 앞세워 국가 전체에 불의를 자행하는 무리들이 더 이상 이 땅에 판치게 해서는 안 된다.

한동안 의리는 잊혀진 단어로 있다가 최근 다시 부각되었다. 박근혜와 최순실 게이트에서 불거진 것이다. 배신을 증오한다는 박근혜는 자신을 영원히 배반하지 않을 사람으로 최순실을 꼽고 그와 결탁하여 국정농단과 권력남용을 서슴지 않았다. 박근혜와의 의리 때문인지 대통령직 파면 이후에도 모여드는 친박 지지자들을 보면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에 젖어 박근혜를 보며 동정심을 갖는 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사람의 도리에 깃들어 살며 그것을 지키는 이는 한때에 외롭지만, 권세에 의지하는 자는 영원히 처량하다." <채근담>에 나오는 말이다. 박근혜의 처량함은 누가 시킨 게 아니다. 스스로 그 처량함을 자초한 것이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그 권리가 사회 전체의 공의와 정의를 해치는 정도까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사적인 의리와 사적인 이익추구는 사회전체의 공의와 정의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정되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에 불의를 행하며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다.

성경에도 있듯이 "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는 축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