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의 팔경

 

1경: 珠島의 滿潮明月(주도의 만조명월)

휘엉청 달이 밝은 보름달

바닷물이 가득히 차면

두둥실 떠있는 일엽편주가 되어

부서지는 달 빛 속으로 노 저어간다

이백이 누구던가

두보는 어데갔나

절로 난 시심 속에

내가 시인이 아니면 그 누가 시인일까

▲ 주도

2경: 新智의 鳴沙十里(신지의 명사십리)

오뉴월 땡볕은

銀(은)가루 白(백)모래를 덮혀 놓고

소금기 머금은 東南風(동남풍)은

짭짤하면서도 후덥지근한데

사람들아

이것저것 다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뒹굴어나 보자

부귀도, 명예도, 권세까지도........

그게 다 무엇이던고

鳴沙十里(명사십리) 품에 안겨 無我境(무아경)에 몰입한다

3경: 九階의 磯濱飛末(구계의 기빈비말)

천년이더냐

만년이더냐

때리면 때린 대로, 굴리면 굴린 대로

그렇게 살아왔던 너였기에

크고, 작고, 둥글고, 길면서

물에 젖으면 검었다가

마르면 제 모습을 찾아도

불평 한마디 없이 살아온 너는

인생의 달관자였더냐

너를 때리고 굴렸던 파도들은

반항 없는 너에게서 슬그머니 물러나도

잘가거라, 다시 오너라

말도 없는 너는 성인군자였더냐

등 뒤에 엉크러진 숲속에서

매미와 산새가 흉보아도

너는 그저 그렇게 듣고만 있는 것을보니

참는자에게 복이 있나니 하는

진리를 體得(체득)하였더니

한라산 정상이 구름 위에 떠 있고

무리지은 海鳥(해조)들이 파도 따라 춤추면

미역 따던 뱃사람의 뱃노래가 흥에 겹구나

형상이 있음이 곧 없음이요(色卽是空,색즉시공)

없는 것이 곧 형상이 있다는 것이다(空卽是色,공즉시색)라는

반야심경의 無我境(무아경)속에서 시간이 멈추어 있구나

모든 걸 버려두고 천년을 살고 싶은 곳

바로 이곳 구계로구나

▲ 정도리

4경: 芙蓉의 孤山蓮池(부용의 고산연지)

풍진 세속을 훨훨 털어내고

고산연지에 꿈을 담아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어보자

너도 없고 나도 없고

있는 것은 부용뿐인데 무엇이 두렵느냐

조형미와 정교한 예술을

대자연에 조화롭게 접목시킨 멋스러움

떠나기 싫은 아쉬움에 쉬이 발길을 뗄 수가 없다.

바위 위에서 춤추는 무녀는

제 흥에 못이겨 나비가 되고

풍광에 취해서 읊조린것이

詩가 되었을진데

흐르는 시냇물도 노래를 하고

이슬 맞은 동백꽃도 춘흥을 돋우니

가던 구름도 쉬어가고 바람도 멈추리라

▲ 세연정

5경: 禮松의 旭日灼林(예송의 욱일작림)

늦가을  된서리에

하얀 옷을 채려 입은

예송의 樹海(수해)위로

일출의 금 빛살이

갈매기의 날갯짓에 가루되어 뿌려지면

반짝이는 금빛 속에 하루해가 기지개를 편다

수평선에 반쯤 얼굴을 내민 아침해가

예작도를 깨워놓고

꼬맹이들 조가비 손위에는

공기되어 놀던 자갈들은

잘못하다 들킨 네살박이 어린애처럼

금세 시무룩 해질 때

이른 새벽 漁翁(어옹)들의 발걸음에

너무도 반가와서

인사하기 바쁘다.

신의 장난일까, 조물주의 실수인가

사철 푸른 나무숲에

무리지은 절경들.......

귀여운 막내에게

듬뿍 준 어버이의 사랑처럼

그렇게도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을까

여기를 두고 용기있게 떠날 수 있는자 그 누구 있으리

▲ 예송리

6경: 廟堂의 奇樹怒濤(묘당의 기수노도)

방패로 내 앞을 가려라

내 죽음을 적이 알지않게

북을 더 힘차게 울려라

한 가닥 숨결 속에서도

겨레를 위한 충혼이 살아있던 충무공의

외로운 주검이 편안히 쉬어갔던 곳

공의 가심이 그리도 서러워

성낸 듯 밀어닥친 파도들은

그렇게 거셌던가

운주대 어란정(井)이

용소산의 월송대와 어우려져

묘당의 성낸 파도를 잠재우니

지나가던 길손들이 옷깃을 여미고

흥겨웠던 漁夫歌(어부가)는

님을 기려 들리지를 않는구나

님은 가셨어도 님의 자취 예 남았으니

예가 바로 님의 사적지가 아니던가

▲ 묘당도

7경: 金塘의 怪巖翔鷗(금당의 괴암상구)

파도에 씻기고

바람에 할퀸 갯바위의 얼근(곰보) 자국에는

아물 새 없이 상처만 늘었구나

이글거리고

쪼글어지고

울퉁불퉁 지지리도 못나게 생긴

그 바위들이 병풍처럼 나래비질 때

그것이 금당팔경 부채바위가 되었구나

뚫린 구멍마다

제 집인 양 드나드는 海鳥(해조)들은

천 마리냐 만 마리냐

여보소

무엇하러 해금강을 그리워하오

곳곳이 기암이요 처처가 절벽인데

여기가 바로 완도가 자랑하는 금당팔경이 아니겠소

하룻밤 묵으면서 해 묵은 얘기나 나눠보세

▲ 용굴

8경: 象王의 白雪紅春(상왕의 백설홍춘) 

흰눈은 사해를 덮고

북서풍은 가녀린 나무 끝에 서럽게 우는데

핏빛보다 붉은 입술을 뾰죽이 내밀어

지나는 길손의 춘색을 돋우는 무리들이

너 동백이 아니더냐

열매를 기름 내어 삼단같이 고운 머리 윤기를 돋아주며

동지섣달 혹한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홀로이 꽃을 피워

적과 백의 부조화를 자연스레 이겨내니

너를 일러 꽃 중의 꽃이라 뉘 아니 부를손가

백설에 덮인 상왕봉에 올라

붉게 핀 동백을 구경하지 않고

겨울과 꽃을 논하지 말라

▲ 동백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마광남 주주통신원  wd34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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