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풀나무

 

<길과 풀나무>

 

 오늘도 길을 간다. 때로는 익숙한 길을 가고, 생소한 길도 간다. 왜 길을 가는 걸까?

길을 가는 게 삶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는 길을 가며 길 위에 산다. 길은 삶의 이력이고 만물의 역사이다. 길에는 사실이 있고 흔적이 있다. 삶을 부정할 수 없듯이 길 또한 부정될 수 없다. 길은 훤히 보이고 거짓이 없다. 정직한 자는 정직한 흔적을 남기고, 부정직한 자는 부정직한 흔적을 남긴다.

누구나 생각은 바뀔 수 있으나 삶의 흔적은 바뀔 수 없다. 길 또한 바뀔 수 없다. 길은 있는 그대로를 남기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길에는 사실이 있고 진리가 있다. 길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 오늘도 땅길, 바다길, 하늘길이 열린다. 뭇 생명들이 그 길을 간다. 길을 따라 길을 간다.

 오늘도 밥을 먹는다. 밥을 먹기에 산다. 밥은 어디서 오는 걸까? 풀∙나무에서 온다. 풀∙나무는 타생명의 희생 없이 자생한다. 스스로 살면서 만물을 먹여 살린다. 풀∙나무는 흙과 물, 공기와 빛으로 충분하다. 누구의 희생도 없이 그것이면 족하다. 스스로 생명을 낳고, 스스로 유지하며, 스스로 살아간다. 풀∙나무는 오곡백과는 물론 자신의 온몸을 바쳐 만물을 먹여 살린다. 그들은 죽어서도 만생명의 식량이 된다.

난 누구를 먹여 살렸나? 오히려 내가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을 희생시켰는가? 죽어 조장이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영원히 살겠다고 석곽 속에 묻어야만 되겠는가? 그게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의 도리일까? 최소한 수목장이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그래야 누리고만 산 보답이 되지 않을까? 입으로 하는 감사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생명체는 풀∙나무에서 나와, 풀∙나무로 돌아간다. 풀∙나무는 모든 생명체의 과거요, 현재요, 미래이다. 풀∙나무를 심고 가꾸자.

 

<길>

길은 길이라서

길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난, 사람이라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네.

길은 길의 역할을 다 하기에

길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난, 사람의 역할을 다 못했기에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네.

 

<풀∙나무>

풀∙나무는 풀∙나무이라서

풀∙나무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난, 인간이라도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네.

풀∙나무는 풀∙나무의 역할을 다 하기에

풀∙나무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난, 인간의 역할을 다 못했기에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김태평 주주통신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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