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통일인가?

진나라 영정은 중국을 통일하고 과거와 같이 군이나 왕으로 불리는 것은 자신의 업적과 걸맞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특히 사후에 후대의 왕이나 신하가 지어 올리는 건 더 참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본인이 직접 선택을 하였습니다. 전설의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황과 제를 땄습니다. 스스로를 진나라 처음 황제라는 의미로 ‘秦始皇帝’, 줄여서 ‘시황제’라 정하고, 다음 대부터는 연이어 ‘2세’, ‘3세’,,,,10,000세 황제까지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꿈이 길면 아니 꿈만 못하지요. 누대에 걸쳐 강국의 염원을 안고 드디어 통일을 하였건만, 진시황 사후 5년 만에 아들과 손자들은 대부분 죽임을 당하고 진나라는 역사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皇은 ‘크다’는 뜻과 천신이 사는 ‘하늘나라‘의 의미가 있고, 帝는 天帝나 上帝와 같이 우주 만물을 주관하는 ’하느님‘의 의미가 있습니다.

▲ 진시황 상상도(출처:위키백과)

기원전211년 현재의 하남성 부근에 운석이 떨어지고, 그 운석에 누군가 일곱 글자를 새겨놓았습니다. “始皇帝死而地分(진시황은 죽고 나라는 갈라진다)”. 대로한 진시황이 탐문을 하였으나 모두 부인을 하자, 운석이 떨어진 주변의 백성을 모두 죽입니다.

진시황은 자료를 보면 허약한 체질에 외모도 출중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스스로는 매우 총명하다고 여긴 듯합니다. 따라서 모든 대소사를 직접 챙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전국에서 올라오는 대부분의 상소는 그냥 함양성 창고에 쌓여있고, 거기다 자기의 업적을 좀 더 생생하게 느껴보고 싶었는지 자신의 영토를 직접 순행하지요.

진시황과 천하통일에 관해서는 상앙, 여불위, 이사에 관한 글을 쓰면서 여러 번 언급하였기에 생략합니다.

장자였던 태자 부소는 분서갱유에 반대하여 황제에게 간언을 하였으나 오히려 미움을 사서 대장군 몽염이 있는 변방으로 보내집니다.

기원전 210년 50세의 나이에 5번째 순행에 나선 진시황은 도중에 병사를 하고 맙니다. 어린 아들 호해와 승상 이사 그리고 환관 조고 등이 동행을 했지요. 이사는 황제가 수도를 비우고 객지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반란이 일어날까 두려워 황제의 죽음을 측근 몇 명만 알게 하고 비밀에 부칩니다.

황제는 매우 위독한 상황에서 환관 조고에게 유서를 쓰게 하였지요. 옥새를 태자 부소에게 전하고 함양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르고 황위를 이으라는 유서를 남깁니다. 하지만 환관 조고는 승상 이사를 꼬드기고 어린 호해와 결탁하여 가짜 유서를 만듭니다. 태자 부소와 대장군 몽염은 자결을 하고, 아들 호해에게 2세 황위를 물려준다고.

성질이 급한 부소는 불같이 화를 내며, 자초지종을 알아보고 결정을 하자는 몽염의 만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창을 거꾸로 꽂아놓고 몸을 날려 자결을 하고 맙니다.(이런 자살도 유행인지, 아니면 후세들이 극적이거나 원통함을 표현하려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예전에 오자서가 그렇게 죽었고, 후에는 낙랑공주를 꼬드겨 자명고를 찢게 한 후 낙랑을 멸한 고구려 호동왕자도 저리 죽지요. 어렸을 적에도 여자의 사랑을 이용하는 짓거리가 참 치사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거기다 이름까지 하필 호동?) 몽염은 의심을 품고 자결을 하지 않자 옥에 먼저 가두고 호해가 황제가 된 후 죽이고 맙니다.

생전에 진시황은 아방궁을 짓도록 하였고, 여산 전체에 70만 명을 동원하여 자신의 능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지상의 궁전을 지하로 옮기는 공사였습니다. 도굴을 염려한 진시황은 능 주변을 수은으로 강처럼 둘렀다는 설도 있더군요. 비밀이 새어나갈까 공사에 참여한 인부들을 모두 죽이고. 황릉은 아직 발굴을 하지는 않았지만 병마용을 발굴하면서 일부 토양에서 수은이 발견된다고 하니 어느 정도 사실인 듯합니다.

사마천은 연인원 340만 명을 동원하여 건축을 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황릉과 약 1킬로미터 떨어진 병마용등 그 규모는 실로 상상을 초월합니다. 1974년 서안의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하게 발견한 진시황 병마용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지요.

▲ 1974년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하게 발견한 병마용. 지금까지 4개의 갱도가 발견이 되었고,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상당수가 흙속에 묻혀있음(출처: 위키백과)

전국시대 북방으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한 여러 성들이 있었는데 진시황은 통일 후에 이 성들을 연결하는 대대적인 공사를 벌입니다. 바로 만리장성입니다.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만리장성 안문관(雁門關). :천하의 요새 중 으뜸이라고 불리며, 전국시대 말 조나라에 의해 축성되었습니다. 한고조 유방, 한 무제, 당 태종 등 22명의 황제가 찾았다는 요새입니다. 흉노의 왕에게 시집을 가야했던 4대 미녀중의 하나인 왕소군도 이 길을 지나 북으로 갔습니다.(사진:2016년 4월)

만리장성을 축조하기 위해 진시황이 투입한 백성이 150만이라 합니다. 한 번 끌려가면 대부분 장성에 뼈를 묻었다니 인류유산이라는 저 장성은 결국 힘없는 백성의 거대한 무덤인 샘입니다. 이러한 토목공사로 인해 최초의 통일국가는 진시황 사후 3년, 통일 15년 만인 기원전 207년에 호해의 뒤를 이어 장자 부소의 아들이 즉위하지만 약 한 달 만에 항우의 칼날아래 고혼이 되고 맙니다.

만리장성과 관련한 이야기는 우리와도 밀접한 인연이 있습니다. 일부에서 아주 예전에 주장을 했었는데 우리민족의 전통 민요 아리랑의 기원설입니다.

장성 축조에 한번 끌려가면 못 돌아오는 건 불문가지.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나는 이제 어머니 곁을 떠납니다!(我離娘,아리낭! 주: 예전 중국어에서는 娘이 “냥”이라는 발음으로 어머니를 의미. 우리 옛 소설에 등장하던 ’낭자’는 아가씨의 의미. 신부를 新娘“신냥”이라 칭함)에서 유래하였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라도 나서 되돌아오고 싶은 의미였다고 하는 데, 각자가 상상력을 동원해 볼 수는 있겠습니다.

다음에는 ‘하루를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정’이라고 하는 것이 꼭 긴 시간을 함께 해야 깊어지는 건 아니지요. 첫눈에 반해 백년해로하기도 하고, 쉬 끓는 냄비 쉬 식듯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서 각자 갈 길로 가기도 합니다. 어쨌든 과거 우리 조상들이 작업멘트로 가장 많이 써먹은 속담중 하나일 겁니다.

작년 2016년 지인들과 중국 호남성 장가계에 갔었습니다. 만리장성 근처에도 안 갔는데 조선족 가이드가 고사를 이야기 해 주더군요. 아마도 한국 관광객들에게 단골로 들려주는 이야기 인 줄 압니다.

중국에 한 신혼부부가 결혼을 한 지 사흘 만에 남편이 만리장성 인부로 징집되어 끌려갔습니다.

남편을 보내고 외롭게 홀로 살고 있는 이 집에 하루는 나그네가 찾아와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마지못해 저녁을 차려주고 잠자리를 제공했는데, 배가 부르자 나그네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여인의 미모에 반해 같이 살자고 요구하였답니다. 남편은 어차피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면서.

외딴집에서 홀로 남자의 힘을 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여인이 요구 조건을 걸지요. ‘마지막으로 불쌍한 남편에게 만들어 놓은 옷 한 벌 전해주고 남편의 편지를 받아 오라고.’ 약조를 하면 몸을 허락하고 함께 살겠다고. 흔쾌히 약조를 하고 하룻밤 함께 잤답니다.

다음날 아침 나그네는 부역장으로 여인의 남편을 찾아 떠났습니다. 현장을 찾아 감독관에게 여인의 남편 면회를 신청하고, 옷을 전달하겠다고 하자. 남편이 부역장을 이탈하려면 대신 다른 사람이 임무 교대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나그네가 대신 들어가지요.

남편이 나와서 옷 보따리를 풀자 편지가 나왔습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당신을 부역장에서 빼내기 위해 이 옷을 전하는 남자에게 하룻밤 몸을 허락하였습니다. 이를 허물로 삼지 않고 저와 평생을 살 생각이면 이 옷으로 갈아입고 즉시 부역장을 나와 집으로 오시고, 허물을 탓하려거든 도로 부역장으로 들어가시오.’

남편은 즉시 집으로 돌아왔고, 나그네는 평생을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몹시 혼란스러웠습니다. 마치 동북 공정으로 우리 고구려와 발해사가 통째로 중국역사로 편입이 되는 당혹감!

어쩌면 이 이야기가 사실인양 우리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건 아닐까?

절대 권력으로 호의호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고, 나라가 부강해질 수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숱한 이별의 피눈물과 이름도 없이 강제노역에 뼈를 묻는 백성들, 전장에서 외로운 혼이 되어 불귀의 객이 된 헤아릴 수 없는 영혼들! 자기의 의사에 반해 끌려가는 인간이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돼지나 무슨 차이가 있고, 무슨 영광이 있을까요?

나의 가족과 후손을 위한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 지 고민을 해야 할 때입니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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