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팔뚝근육을 보여주겠다고 Cyworld에 들어가 사진을 보라고 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사진은 '아바타'라는 사진인데 일부러 팔에 힘을 줬는지 팔뚝이 막 울끈불끈했다. 힘이 주체를 못하고 막 솟아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상하게 근육질 남자에 점수를 주는 형이 아니기 때문에 멋있기는커녕 징그럽게 보였다.

▲ 아바타

오랜만에 들어간 싸이에서 아들의 사진과 그 밑에 달려있는 이런저런 댓글들을 훑어보았다. 그 댓글들을 보면서. 내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댓글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아래 사진에 중학교 때 아들이 다녔던 학원 영어선생님께서 쓰신 댓글이다.

선생님 : 내가 기억하는 욱이가 아니네~~ 우왕~ 멋쪄^^

아들 : 쌤이 기억하는 전 뭔데요? ㅋㅋㅋㅋ

선생님 : 찐따?? ㅎㅎㅎㅎ

아들 : O 감사...ㅋㅋ 

참~ 거침없이 아니 겁도 없이 솔직한(?) 선생님이다. 만인이 보는 싸이에서 제자에게 '찐따'가 뭔가? '찐따'는 싸움도 못하고, 마음도 약하고, 말도 잘 못해 친구가 없는 아이를 놀리는 말 아닌가? 좋게 '순둥이'라고 써주시지. 그런데 아들은 '찐따’라고 썼는데도 ‘O 감사...ㅋㅋ’란다. 놀란 의미의 'O'로 쓰린 속마음은 살짝 드러낸 표현이 아닐까 싶다. 선생님 민망하지 말라고 ‘감사...ㅋㅋ’라고 썼을까? 아니면 속상함을 감추기 위해서 그리 썼을까?

다른 하나는 친구의 댓글이다.

친구 : 찐따 욱이, 한국에 날래 날래 오라우~

아들 : 쫌만 기다려라 ㅋㅋㅋ 곧 간다.

찐따라고 하는데 또 ㅋㅋㅋ 하며 웃어준다. 예전 그 상처 깊은 단어에 별로 맘 상하지 않는다는 건가? 나는 아직도 그런 댓글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 속도 상하고... 화도 난다. 확 지워버리고 싶다.

초등학교 때 따돌림, 이른바 ‘왕따’를 당한 아이들은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정신적 상처가 쉽게 낫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 순하고 힘을 쓰지 못한다는 이유로, 또 남들과 다르게 행동한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고 또래아이들의 폭력에 시달렸다. 중학교서는 '왕따'에서 벗어났으나 여전히 마음이 약해 싫어도 거절할 줄 모르고 친구들의 말을 다 들어주는 만만한 ‘찐따’가 되었다. 지금은 두‘따’에서 완전히 벗어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들과 대화 중에는 아직까지 그 때의 상처가 툭툭 튀져 나오는 말이 있다.

지난번에도 아들과 메신저를 하는데 이런 말을 한다.

아들 : 엄마, 이번에 가면 공항에서 나 못 알아볼지도 몰라.

나 : 그 정도로 달라졌어?

아들 : 응, 나 몸이 장난 아니야. 가슴 등

나 : 가슴이 그렇게 커졌다며? 엄마는 그렇게 몸 키우는 거 징그러운데

아들 : 뭘, 여기선 내 몸 좋은 게 아니라서 ㅋㅋ. 여기 애들 팔뚝은 장난 아님

나 : 팔뚝이 두꺼워야 힘이 센 거야?

아들 : 그렇지 ㅋ. 난 가슴 위주로 했고 요즘 들어 어깨 좀 하고 있어. 어깨가 있어야지 폼이 나더라고

나 : 그래? 너무 몸만 멋지게 기르지 말고 내면을 멋지게 길러야 할 텐데

아들 : 나 내면이 좋아서 애들이 좋아해.

나 : 그래? 어떤 내면?

아들 : 애들이 나 같은 성격 별로 없데.  착하고, 잼 있고, 웃기고. 그냥 얘들 다 받아주는데. 애들한테 화낸 적 거의 없어.

나 : 그렇구나. 원래 네가 착하지. 웃기는 건? 네가 너무 솔직해서 웃긴가?

아들 : 몰라. 아이들이 나 자체를 그냥 좋아하는 것 같아. 첨엔 낯 많이 가렸는데..

나 : 울 아들 많이 달라졌나봐.

아들 : 응, 그런 것 같아. 나 여기선 잘 나가는 것 같아. 나 매년 조금씩 진화하는 것 같아.

내가 말한 내면은 생각의 깊이를 말하는 거였는데 아들은 성격을 생각한 것 같다. 하긴 성격이 더  중요한 내면이니까... 아들은 자신이 매년 진화한다고 말할 정도로,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그 자체로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로 대인관계에서 자신감이 붙어가는 것 같다.

아들은 이성교제에 대해서도 나에게 이런 저런 이야길 해주다가 내가 은근슬쩍 “외국 여학생들은 성적으로 좀 개방되어서 사귀기 부담스럽지 않아?”라고 말하면  따지듯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무조건 외국 여자아이들은 다 싫지? 한국 여자아이들만 좋지? 여기까지 와서 별로 많지도 않은 한국 여자아이들하고 사귀어야겠어? 끼리끼리 논다고 소문 나게? 그럼 내 인간관계 영역이 좁아져. 그리고 한국 여자아이들은 나 같은 성격의 남자를 좋아하지 않아. 한국 여자들은 좀 못된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아. 여기 캐나다 학생이나 독일 교환학생들은 나 같은 성격을 좋아해. 나는 한국에 살면 장가도 못 갈지 몰라.” 

‘여기선 잘 나가는 것 같아’ 라는 말이나 '한국 여자아이들은 나 같은 성격의 남자를 좋아하지도 않아' 라는 말이나 '나는 한국에 살면 장가도 못 갈지 몰라' 라는 말을 보면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가 아직도 다 낫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게 해주나~

어떤 사람들은 군대를 보내서 더 센 단련을 받으면 나아질 거라고 한다. 남편은 한국으로 복귀해서 자신에 재평가를 받으면 확 바뀔 거라고 고등학교 졸업 후 무조건 한국 복귀를 주장한다. 아들을 캐나다에 뺏길까봐 그러지 않나 싶다. 딸은 제 동생이 한국보다는 캐나다에서 더 인정받는 성격이라며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닌 후 정착에 찬성표를 던진다. 한국 복귀를 이야기 하면 아들은 한국에서 살면 취직도 어려운데 어떻게 먹고 사냐고 걱정한다. 나는 아들과 함께 지내면서 다독다독 해주고 싶기도 하고, 과거 아들의 억압된 잠재적 폭력성에 놀란 적이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다시 그런 경험을 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도 된다.

아들은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아들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잘 모른다. 단지 초등학교 때 폭행으로 상처를 주었던 친구에게도 ‘올 여름 한국 가면 꼭 만나자’고 하는 아들의 너그러움을 보면서.. 아들을 ‘찐따’라고 하는 친구에게도 'ㅋㅋ'라고 해줄 수 있는 아들의 여유로움을 보면서.. 힘들 때면 언제나 부모를 찾고 솔직한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몸도 건강해졌고 마음도 건강해졌겠지 하고 기대해본다. 겉모습이 멋지게 변한 아들에 감격하여 예전 상처는 자연스럽게 회복될 거라고 단순하게 자신하는 남편의 말을 굳게 믿으며... 아들 걱정은 내려놓고 아들이 다시 귀국할 날을 고대해볼까 한다.

캐나다에서 교회 형과 저러고 노나 보다. 누가 남매 아니랄까 봐서.. 누나도 저렇게 공중을 뛰어오르며 놀았는데. 사진처럼 아들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정신으로 뛰어올라 봤으면....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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