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보다 신록이 더 좋아

신록 예찬! 1970년대 고교시절, 국어교과서에 실린 수필에서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열을 내어 설명하셨지만, 솔직히 썩 공감이 가진 않았다.

당시 고등학교엔 많은 써클이 있었다. 내가 속한 동아리는 매주 토요일 오후, 금남로 카톨릭 센터에 모여, 독서 토론을 주로 했는데, 계절마다 산으로 바다로 수련회를 가곤 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수련회는 가을 내장산 수련회였다. 열차타고 광주를 출발하여 정읍역에 내린 우리는 배낭매고 동아리 깃발 앞세우고, 걸어서 내장사 경내에까지 진출했다. 난생 처음 텐트를 치고, 단풍이 물든 숲에서 1박을 했다. 다음날은 걸어서 백양사까지 왔는데, 당시만 해도 숙박허락이 안되었던 여학생들은 당일 아침에 출발하여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친구들과 함께 한 수련회도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백양사의 단풍은 지금까지도 빛바래지 않은 사진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 후, 나는 무던히도 가을 산을 찾아 다녔다.

세월이 얼마쯤 흐른 뒤, 단풍보다는 신록을 좋아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이가 든 탓일까? 단풍도 좋지만, 점점 사그라지는 단풍보다 신비로운 생명력이 느껴지는 신록이 더 좋다. 특히, 오월 초, 지리산 뱀사골의 눈부신 초록은 무엇에 비길까?

갓 시집 온 새댁의 수줍은 미소를 지닌 지리산 야생철쭉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직은 시린 맑은 계곡물의 힘찬 소리는 신록의 어린 싹들을 격려하는 듯하다.

4년 전, 오월 초, 아내와 나는 여느 해처럼 지리산 뱀사골의 신록을 보러 길을 나섰다. 그 날은 유난히도 날이 맑아 더욱 눈부신 초록이 장관인 날이었다.

뱀사골 초입에 들어서는데, 아내가 차를 멈춰보란다. 아내가 속삭였다. “이런 곳이라면 시골이라도 살 수 있겠다.” 순간 나는 귀가 번쩍 띄었다. 일생일대의 찬스판을 사용할 기회가 온 것이다.

우린 바로 차에 올라 지나왔던 부동산 사무실(예전엔 없었는데, 콘테이너 박스 부동산 사무실이 생김)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는 예정에 없던 땅 구경을 하게 되었고, 여러 곡절을 거쳐 시월엔 지금의 땅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마을 분들이 말씀하시길, 땅이 임자를 택했단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사고 싶어 했던 땅의 임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삼사십대에 무던히도 지리산을 찾아다녔고, 무등산에서 처음 만난 아내와는 지리산에서 연애를 했었다. 이런 개인적인 인연이 아니더라도 지리산은 얼마나 그리운 산인가? 그 곳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다니, 지금도 가끔 꿈인 듯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창 밖, 지리산의 봄은 올해도 찬란하다.

역시 단풍보다 신록이 더 좋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박효삼 편집위원

김종근 주주통신원  green27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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