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회초리] 이인수 주주통신원

1988년 5월 한겨레가 창간된 후부터 2014년 8월까지 무려 26년간 지국을 운영했던, 부산에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던 창간 지국장인 이화덕씨가 오랜 지병으로 인해 지국을 그만두었다.

창간 당시 지국을 맡았던 ‘동지’들이 90년 초·중반기에 모두 떠날 때에도 살아 있을 때까지는 한겨레를 그만두지 않겠다는 각오로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던 그가 갑자기 손을 뗀 이유가 궁금해 졌다. 30일 오후에 그의 집을 찾아갔다.

“어느 날 가슴이 너무 아파 병원엘 갔더니 오토바이를 자주 타느냐고 의사가 묻는 거야. 아, 우리야 오토바이 타는 게 평생의 업 아닌가. 의사 말로는 오토바이를 오래 타서 가슴뼈가 변형이 되어 심장을 누르고 있다는 거야. 그래서 통증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라고. 그 말을 듣고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지. 그러다가 더 이상 버티다가는 나 때문에 집사람과 아이가 힘들겠더라고.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만두게 되었지. 왜 서운한 게 없겠어, 26년 동안이나 한겨레신문을 돌리고 주민들과 함께 지낸 그 세월이 그냥 세월인가?”

그는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신문 부수를 많이 확장하지 못한 점을 미안하게 생각하면서도 한겨레의 잘못도 지적을 했다.

“사천인가 거기 있지. 부수가 백 몇 십 부 밖에 나가지 않았나봐, 그런데 본사에서 수지 타산이 안 맞는다고 신문 발송을 아예 중단해 버렸대. 세상에 돈 안 된다고 그런 식으로 신문을 발송조차 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한겨레를 구독하겠냐고?”

그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내년 5월, 한겨레 창간 27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신문 구독운동을 벌인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아무리 신문 구독을 많이 권유해도 배달이 안 되는 곳 주민들은 구독신청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언젠가 말이야.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한 달 만에 1천부를 확장했다고 판촉요원들이 자랑을 해서 내가 한마디 했지. 한겨레는 절대 그런 식으로 확장한다고 독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경품이나 무가지 줘서 구독자 수 늘이는 것은 조중동이나 할 짓이지 한겨레가 할 일은 아니잖아? 결국 판촉비 다 날리고 독자들은 몇 달을 못 갔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벌였는지 몰라, 참 답답한 사람들이지”

그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요즘은 한겨레가 끊어진 곳에 경향신문이 많이 들어가 있어. 물론 나 같은 사람의 잘못이 크지. 그런데 문제는 나같이 한겨레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지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하는 사람들이 한겨레를 취급하면서 한겨레가 마치 경품처럼 끼워주기 상품이 된 것 같아. 한겨레가 끊어지니 그 사람들이 한겨레와 ‘비슷한’ 경향신문을 끼어 넣어서 구독률을 유지하는 거지, 이런 게 문제란 거야.

그러고 보니 내가 한겨레 지국장을 그만 둔 1991년부터 그런 일은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지국협의회를 결성해서 한겨레신문사에 항의도 하고 본사 사장실(故송건호)점검 농성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렇게 해온 것이 한겨레를 말아먹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공동배달제 그런 문제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이화덕 지국장이 배달을 맡은 구역은 부산 지역에서도 가장 열악한 감천, 괴정, 구평 지역이었다. 공장 지대가 많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 신문 하나 구독하기도 쉽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동네이다. 그런 곳에서 26년을 온 몸이 부셔지도록 한겨레를 지키고 지켜왔다. 그만 두기 몇 년 전부터는 본사에서 지국으로 신문이 도착하는 시간이 자정이 되다보니 그 시간에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녁을 5시에 먹고 8시 경 잠이 들었다가 자정에 깨어나야 했다. 그리고 나서 드문드문 이어져 있는 구독자 집으로 배달을 하면 아침 7시 가까이 된다. 부수가 적어 배달원 인건비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 신문을 돌려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 세월을 20년이 넘게 해왔으니 몸이 망가질 대로 다 망가져 버린 것이다.

“섭섭하지. 내가 몇 부 안 갖고 있는 지국장이었지만 그동안 수고했다는 전화 한 통도 없대. 우리 수정(외동딸)이 결혼할 때 축의금 하나 없고. 그런 거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데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 한겨레 직원들이 정이 없는 것 같아”

그는 이제 종이 신문은 끝났다고 단언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신문 구독 안 해. 기존 독자들도 다 끊어지고 있는 형편이야. 중앙일보도 내 느낌엔 종이신문을 아예 포기한 것 같아.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지금 같은 시기가 한겨레에는 기회라고 봐. 한겨레는 ‘한겨레’ 다운 사람들이 보는 것이거든. 일반 수구기득권 신문들과 다르잖아? 그런 틈새를 파고들어야지, 그래야 한겨레가 한겨레로 지속될 수 있는 거지. 문제는 사람이야. 내가 볼 땐 직원들이 한겨레를 스쳐가는 곳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어렵게 들어왔는데 막상 입사해 보니 별거 아니더라 이거지, 전망 부재야,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는 현재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심장도 안 좋고 간도 안 좋고 전립선도 안 좋고 위장도 안 좋고. 그래서인지 몸이 무척이나 야위어 보인다.

한겨레를 그만 둘 때 본사에서 받은 돈이 백 몇 십만 원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월급쟁이라면 일종의 퇴직금이 되는 셈인데, 26년 동안 적립한 돈이 왜 그것 밖에 안 되는지 나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는 자신이 지국 관리를 잘못하여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게 이화덕씨 본인 탓만은 아닐 것이다. 올해 예순 셋인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의 문제도 개인 능력만의 문제는 아니듯.

리인수  least-people@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