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둥이 아들 세상 살아남기 31

김미경 편집위원l승인2017.05.12l수정2017.05.2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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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12학년을 마치고 아들이 귀국하던 날, 공항에서 아들을 기다리는데 모자를 쓴 싱글싱글 웃는 아이가 카트에 짐을 가득 실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 쟤 욱이 같은데..." 하고 남편에게 말하면서 잠시 긴가민가 망설이는 순간, 아들은 내 옆을 휙 하고 지나갔다. 남편이 뒤돌아 지나가버린 아들에게 "욱아!" 하고 불러 세웠다. 아들은 웃으며 “엄마는 아들도 못 알아봐?” 라고 구박했다. 아들인 줄 알면서도 단번에 아는 척하지 못한 이유는 너무 달라진 아들을 본 뇌가 당황해서 인지기능이 엉켰기 때문이다. 아들은 소년에서 청년으로 어른스럽게 확 바뀌어 왔다.

그런데 분위기만 바뀌어 온 것 같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아들은 킥킥대며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친구들이 나보고 'Retarded Asian(발달이 늦은 동양인)'이래.”

캐나다 아이들은 ‘Typical Asian(전형적인 동양인)’을 똑똑하다. 공부를 주로 하고 잘 놀지 않는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성이 떨어진다. 유머감각이 부족하다. 납작한 얼굴에 체격이 왜소하다 등의 특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는데, 아들은 ‘Typical Asian’과 정반대라 ‘Retarded Asian’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아들은 기분 나쁠 수도 있는 그 말이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나도 속상할 만한데 깔깔깔 웃음이 났다. 공부는 좀 못해도 캐나다 친구들과 잘 지내다 왔다는 말 같아 싫지 않았다. 이후 가끔 웃으며 ‘어이~ Retarded Asi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들이 들으면 ''엄마 맞나?" 생각할 거다.

‘세상은 예측불가’란 말이 딱 맞다. 캐나다 뉴펀들랜드 주 시골도시에서 온타리오 주 작은 교육도시로 옮긴 이유는 대학 진학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영어가 수준에 올랐다고 생각했기에 대학 진학을 알차게 한다고 소문난 벨빌로 옮긴 것이다. 벨빌에서 공부에 몰두했으면 하고 옮긴 것인데 아뿔싸~~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대학 진학에 집중해야 할 12학년에 아들은 무슨 생각인지 럭비부에 들어갔고 수업 과목 중 하나는 ‘Outdoor Activities’를 선택했다. 럭비부야 방과 후 하는 것이니 할 수 있다고 쳐도, ‘Outdoor Activities’는 카약을 비롯해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는 좋은 수업이긴 하지만, 한 주 몽땅 캠핑을 가기도 하는 등 다른 수업을 빼먹을 수밖에 없는 수업이어서, 12학년은 거의 선택하지 않았다.

‘12학년인데 공부에 열중해야지~‘ 하고 반대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이전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취약한 여건으로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한 경험을 누려보겠다는데... 그동안 영어 때문에, 밥 잘 안주는 홈스테이 때문에 힘들게 지낸 청소년기를 좀 활기차게 지내보겠다는데... 대학 진학 운운하기가 어려웠다.

이뿐만 아니었다. 아들은 방과 후 학교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도 했다. 그러면서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을 만나 어울리기 시작했는데 이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갈 생각보다는 어울려 놀고 운동하는데 고3의 불타는 시간을 헌납한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이 붙여준 아들의 별명이 바로 'Retarded Asian‘이었던 것처럼 그 아이들도 ’'Retarded Canadian'이었던 것이다.

▲ Retared Asian과 Retared Canadians

아들은 12학년에서 원 없이 놀았다. 공부에는 최소한의 에너지만 쓰고, 친구들과 만나 놀고, 운동하는데 온 에너지를 쏟아 붓는 아이 같았다. 전 과목에서 D이하가 없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아들에게 "그렇게 놀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잔소리를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아들을 그대로 두었다. 점점 긍정적으로 바뀌는 아들을 느꼈기 때문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대인관계에서 자신감이 붙는 것 같았다. 자기주장도 강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아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당당해지는 것은 좋은데 너무 '자신만만’이랄까? 장래를 결정하는데 부모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으려 했다. 대학선택 등 장래결정은 캐나다에 사는 자신이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캐나다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면서 상대적으로 힘들었던 한국 생활이 생각나는 듯 한국 복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아들의 맘이 완전히 캐나다로 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아들과 수차례 대화한 후, 원하는 대로 컬리지 입학금을 내주면 아들과는 해외동포 사이가 된다며 무조건 한국복귀를 명령했다. 부모와 끈끈한 유대감을 다시 갖는 것이 대학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였다. 토플점수로 한국대학에 진학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 했다. 나는 구체적인 방안도 없이 막연히 잘 될 거라는 믿음으로 무조건 복귀시키는 것이 걱정이 되었지만 '학비'라는 무기를 손에 쥔 순한 남편의 고집을 어찌 꺾겠는가?

이 'Retarded Asian’은 귀환한 후 한 끼에 닭 한 마리를 뚝딱 해치울 정도로 실컷 먹고 게으르게 두 달 정도 뒹굴뒹굴 지냈다. 토플 시험을 준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한국대학 갈 생각이 없는지 토플에 토자도 꺼내보지 않았다. 돈을 벌겠다며 알바를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처음 시작한 일은 대형마트 추석 알바였다. 바구니 정리하는 일과 반품물건을 정리하는 일로 하루에 10시간 씩 약 2주간 일했는데, 이력서에 쓴 내용을 보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자기 소개서를 이렇게 쓴 것이다.

“6살 때 아버지 일로 미국에서 2년 살았습니다. 그 후 한국에 와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2년 동안 미국에서 살다 와서 그런지 처음엔 학교 선생님들이 때리는 게 정말 싫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적응한다 싶었지만. 다시 유학을 가게 되었고 고등학교를 캐나다에서 졸업했습니다. 지금 한국에 온지 2달 되어 가는데 아직도 적응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저의 장점은 우선 힘을 잘 씁니다. 보기엔 이래도 캐나다에서 럭비하면서 상대가 강호동 같이 맷집이 좋아 몇 번 뼈가 부러질 뻔했지만 잘 버텨냈습니다. 또 여기선 쓸모없겠지만 영어권 사람들과 대화가 능통합니다. 단점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좀 얼떨떨하다고 하네요. 직장생활에서 예상되는 어려움은 친구들에게 알바 얘기를 꺼내면 '초짜는 막내라고 막 부려먹는다'고 해서 저도 그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면접관은 아들의 자기 소개서를 읽으면서 쿡쿡!! 하고 웃었다고 했다. 얼떨떨하다고 썼는데도, 아직 적응이 안 되었다고 썼는데도 바로 내일부터 나와서 일하라고 했다. 나는 '이력서에 그렇게 솔직하게 쓰면 어떻게 해~~'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성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듯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집에서 눈치보고 살아야하는 외국생활에서도 솔직함과 순수함을 잃지 않았으니 그저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나는 아무래도 팔불출 엄마인 것 같다.

아들의 프롬파티 참석 사진. 양복을 사라고 돈을 보내주겠다고 했는데도 '하루 입는 건데 비싼 돈 주고 무슨 양복을 사냐고.. 내가 무슨 사장 아들이냐'고 하면서... 조끼와 빨간 넥타이만 사서 입었다. 아들만 진바지에 운동화를 신었다. 그래도 엄마 눈에는 번쩍 번쩍 빛나 보인다.

졸업식 사진이다. 중학교 졸업 전에 유학을 떠나서 고등학교 졸업식에는 참석하려 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 가질 못했다. 아들은 가족도 없이 뻘쭘할 것 같다며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안해서 강요할 수 없어 그냥 좋을 대로 하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유학생 상담선생님께서 아들에게 전화하셔서 "유학생 중에 졸업식에 부모님 오신 경우는 100명 중 1명 정도 된다. 졸업 못하고 돌아가는 아이도 있고, 중간에 쫓겨나는 아이도 있는데.. 졸업하는 것 자체가 자랑스러운 것이다." 라고 설득해주셨다. 그 열렬한 말씀에 가긴 갔는데 좀 억지로 간 듯하다. 다른 아이들은 졸업가운 안에 칼라 달린 셔츠를 반듯하게 입었는데 아들은 그냥 티셔츠 입고 졸업가운을 걸쳤다. 목이 허전하니 쓸쓸해 보인다. 그래도 참석해준 아들에게 고맙고 외국 아이들 틈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해 보이는 아들이 대견하다.

사진까지 찍어주시고 꽃다발까지 마련해서 엄마 대신 참석해주신 유학생 상담선생님. 축하해주러 차로 2시간 걸리는 토론토에서 일부러 와주셨다. 잊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도 참 고마운 분이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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