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양심이

 한적한 어촌 마을에 모모형님이 한분 계신다. 만나기만 하면 세상사에 대한 기탄없는 야설이 난무하였다. 대화를 하지만 모모형님의 일방적이고 통렬한 말씀이셨다. 정치집단과 타인들의 불의불법에 대해 거침이 없었다. 통쾌함도 있었고 동의도 했었다. 하지만 지나침도 있었다. 사실 모든 말씀은 그 분의 독창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대부분 사회의 통설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어느 날 모모형님 집을 찾았다. 맛난 점식을 먹고 차 한 잔 나누며 한담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굴삭기(Poclain)등의 중장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함께 있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나가보자고 했다. 나가보니, 모모형님네 옆 마당 빈 공터에서 중장비 2~3대가 대공사를 하고 있었다. 덤프트럭에서 쏟아 붓는 물질이 수상했다. 아마 시커먼 것이 불법폐기물 같았다. 작은 어촌마을 왕복 2차선 지방 도로라서 차량통행은 적었고, 바로 도로를 접하고 있기에 공사하기는 좋았다. 그렇지만 대낮 도로변에서 저런 공사를 하다니... 그 대담함에 우리사회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새삼 가슴도 답답해졌다.

                   

                       <매립현장>

 그들은 포클레인으로 구덩이를 깊이 판 후, 덤프트럭에 실린 시커먼 물질을 구덩이에 쏟은 다음, 미리 파낸 흙으로 곧장 덮었다. 매립하는 물질은 건설폐기물로 보였다. 이런 벌건 대낮에 보란 듯이 매립하다니... 아마 대단한 권력의 비호를 받거나, 권력자의 후원이 있지 않을까 짐작된다. 깜짝 놀라 옆에 서 계신 모모형님께 눈을 돌렸다. 하지만 그 분은 의외로 무덤덤하게 서 게셨다. 나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몇 장 촬영했다.

필자: 형님! 바로 옆 마당인데, 저렇게 나둬도 됩니까? 형님과 미리 협의를 하셨나요?
 모모형님께서 내 예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빙그레 웃고만 계셨다. 다시 나는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필자: 신고! 아니 고발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난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사진을 몇 컷 더 찍었다. 모모형님을 다시 보니 평소 대화할 때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부조리한 사회현상과 각계 지도자들의 패륜, 부도덕함을 맹렬히 비판하던 그 모습. 지금 모모형님의 모습은 너무나 평온했다. 오히려 나를 놀리는 듯이 빙그레 웃으면서 쳐다본다.
모모형님: 자네가 한 번 해보게.
 하신다. 순간 당황하였다. ‘어라 이게 무슨 말이야?’ 의아함에 다소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필자: 예~? 뭐라고요?
모모형님: 자네가 신고해보란 말일세.

 말문이 막혔다. 어린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하도 어이없는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모모형님을 바라봤다. 평소 말씀을 비춰볼 때 ‘어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분노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표정으로 덤덤하게 쳐다만 보고 계시다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필자: 형님! 저래도 되는 겁니까? 저들을 가만 두어도 되겠어요?
 대답은 하지 않고 뒷짐을 진 채 먼 산을 쳐다본다. 한참 후에 땅을 내려 보면서 말씀하신다.
모모형님: 음~ 나라고 뭐~ 문제가 없겠는가?
 가슴이 멍해졌다. ‘맞아~ 그래서...’ 생각하면서
필자: 아~ 예~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속으로 난 대뇌였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나도 마찬가지지 뭐. 모두 말이야 그렇게들 하지만, 말 그대로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행일치(言行一致)]를 잘 알고 있지. 그래야 되는 줄도 잘 알아. 하지만 지키기는 참으로 어려워. 아니? 보통사람들에겐 불가하지 않을까? 아~! 우리 주위에 저와 유사한 사태가 얼마나 많겠어? 아마 비일비재 하겠지?’ 그러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비겁함을 느끼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애써 평온한 척 했지만 쓰린 가슴을 어찌 감출 수 있으랴? 자신의 권익을 위해 타인의 불법을 용인하다니... 타당치 않다. 암, 그렇고말고. 하지만 돌아서면서 생각한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자 누구인가?’라며 자신을 방호한다.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안 되는 줄 잘 알고 있다. 그럼 어찌할 것인가? 명확하다. 자신부터 고백하고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칼날은 자신을 향해야 한다.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야 한다. 감내하기 어렵도록 아프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래야 한다. 그게 나와 너,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다. 자신의 그릇된 행태에 눈감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맑고 깨끗해지면 세상도 그리될 것이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그래도 모모형님의 태도에서 수긍되는 게 있다. 그 분께서는 일말의 양심이 있지 않는가? 그 작은 양심이 횃불이 되기를 바래본다. 이 또한 나의 못된 이기심일까? 촬영했던 사진 모두를 지워버렸다.

<자타(自他)>
타인의 언행은 자신의 거울이다.
그를 보고 조소하거나 비난하지 마라.
자신을 돌아보고 고치는 계기로 삼으라.
이를 게을리 하거나 거기서 멈춘다면,
너 또한 동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김태평 주주통신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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